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봄유정 Jan 03. 2022

박물관에 기증하고 싶은 며느리

두 달 전부터 시작한 취미가 있습니다.

뜨개질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너무 한길만 판다는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뜨개질을 시작했습니다.

가방만 뜹니다. 그것도 친구가 가르쳐준 방식 그대로 한 가지 모양의 가방만요.

다른 것을 떠볼까 고민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옷은 사 입는 게 더 싸고 좋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친구가 모자 뜨는 법을 알려준다고 했지만 모자를 거의 쓰지 않는 저로서는 구미 당기는 아이템이 아니었죠. 결국, 실용성 만점에 뜨는 방법도 간단한 가방만 계속 뜨고 있습니다.


단색 실로만 7개를 뜬 후 조금씩 남은 실을 이어 제 가방을 하나 떴습니다. 단순히 실이 아까워 벌인 일인데 보는 사람마다 "어머~ 이 가방 진짜 이쁘다~" 라며 칭찬을 해주대요?

솔직한 제 친구 순자는 달랐습니다.

"기집애. 지 가방만 저렇게 예쁘게 뜬 것 봐! 나도 하나 더 떠줘!"


반응에 힘입어 이렇게 여러 가지 색을 넣는 것을 저의 시그니처로 삼기로 했습니다.

"엄마. 이제 모든 가방에 그렇게 색을 넣기로 한 거야?"

작은 아이가 물었습니다.

"응. 어디서든 이렇게 생긴 가방은 송유정 표 가방인 걸 알아볼 수 있게. 마치 명품백처럼 말이야. 톰브라운이 우리나라 상갓집 패션이라고 불리는 게 특유의 무늬 때문이잖아. 엄마 가방도 그런 맥락이지. ㅎㅎ "

"가방 밖에 못 뜨잖아."

"가방 밖에 못 뜨는 게 아니라 가방만 뜨는 고집스러운 장인처럼 보이게 하는 거야. ㅎㅎ 상상만 해도 웃기지?"


그렇게 제 가방의 콘셉트가 정해지고 나니 몸이 근질거렸습니다.

가방을 떠야 하는데 선물할 대상이 없었거든요.

"어머니, 가방 하나 떠드릴까?"

친정 엄마는 가방이 탐나기는 하는데 너무 무겁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셨습니다. 사실, 가방은 이미 만들어두었습니다. 작게 만들어서 조금 가볍게 말이죠. 기회를 봐서 안겨드릴 예정입니다.


새해 첫날, 시댁에 인사드리러 가서 어머님께도 여쭸습니다.

"어머니~ 가방 하나 떠드릴까요?"

"무슨 가방?"

얼른 제 가방을 눈앞에 대령했습니다.

"어머나~~ 예쁘다~~ 넌 어쩜 이렇게 재주가 많으냐~~ 이걸 진짜 네가 떴다구?"

"네~~ 제가 떴어요~"

어머님의 칭찬에 어린아이 마냥 기분이 좋아져서 붕붕 뜰 때까지만 해도 몰랐습니다. 제 앞에 어떤 시련이 닥칠지 말이죠.

"그래~ 나도 하나 떠줘라. 스포츠센터 가서 며느리 자랑하게. 내가 맨날 가서 얼마나 며느리 자랑하는지 아니? 박물관에 기증해야 할 며느리라고 말이야. 요즘에 너 같은 며느리 없다고~"

과한 칭찬에 몸 둘 바 몰랐지만 가방을 뜨게 됐다는 설렘에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말이다."

"네?"

과일을 한 입 베어 물며 해맑게 되물은 제가 문제였을까요? 마음의 준비를 하지 않아 충격이 더 컸던 것일까요? 어머님의 주문이 속사포처럼 귀에 꽂혔습니다.


"네 가방에는 자꾸가 없구나? 내 가방에 자꾸 달아줄 수 있니? 안된다고? 그러면 똑딱이 단추라도 달아줘라. 그게 없으면 안에 꺼가 다 쏟아지고 영 못쓸 것 같은데? 손으로 들고만 다니면 너무 불편하니까 기다란 끈도 달아주라. 크로스로 메고 다닐 수 있게. 어떤 거 말하는지 알지? 가방 뜬 거랑 똑같은 실로 간단하게 끈 하나 만들어서 달아주면 돼. 힘든 거 아니지? 할 수 있지? 크기는 너무 작으면 안 돼. 휴대폰이랑 지갑이랑 작은 장바구니에다가 스포츠센터 가서 갈아입을 속옷이 들어갈 정도는 돼야 해. 네 가방보다 약간 작으면 되겠다. 천천히 떠~ 천천히~ 급한 거 아니야~"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은 빵 터졌고, 전 점점 벌어지는 입을 힘주어 닫아야 했습니다.

"참깨 빵 위에 순살 고기 패티 두장 특별한 소 양상추 치즈 피클 양파까지~ 빠라빠빠빠~"

이 노래가 자동 재생될게 뭐랍니까...


"어머니... 그게.... 제가 한 번도 안 해본 디자인이라서... 할 수 있을지... 배운 적도 없고..."

난감해하는 며느리에게 어머니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냥 작은 똑딱이 단추 하나면 돼. 끈은, 그냥 가죽끈 같은 거 하나 사다 달아줘도 되고. 알지? 넌 박물관에 기증해야 하는 며느리야~ 도대체 못하는 게 없어~~~"


그제야 알았습니다.

저는,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던 스물네 살의 며느리는 20여 년의 혹독한 트레이닝을 거쳐 드디어 박물관에 기증하고 싶은 며느리로 거듭났다는 것을요. 원래부터 모든 것을 갖추고 시집 온 며느리도 아니었고, 빼어난 손재주를 타고난 사람도 아니었던 제가 어머님의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에 힘입어 한번 해보고 또 해보고 결국은 해내는 과정을 반복하다가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을 말이죠.


먼 훗날 박물관에서 저를 만나게 된다면 그 옆에는 반드시 가방이 하나 놓여있을 겁니다.

시그니쳐가 된 세줄 디자인에 자석 똑딱이가 달려있고 크로스 끈까지 길게 붙은... 뜨개 가방 말입니다.

 


뜨개 가방 변천사
여기에, 자석 똑딱이를 달고, 어깨끈을 달아야 해요...


매거진의 이전글 자신감이라는 것이 차오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