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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Jan 09. 2022

졸업을 축하합니다~

작은 아이 학교의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아직 제 아이의 졸업식은 1년 남았지만, 학부모회장의 이름으로 참석하게 됐지요.


졸업식 순서는 늘 같습니다. 국민의례, 학사보고, 졸업장 수여, 상장 수여, 학교장 회고사, 운영위원장 축사, 재학생 송사, 졸업생 답사, 교가제창.

내빈으로 참석했던 다섯 번의 졸업식 중 학부모회장이 축사를 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난데없는 축사 부탁을 받았습니다.

거절했죠. 졸업생들이 주인공인 자리에 어른들이 축사랍시고 시간을 빼앗는 것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두 번이나 거절했지만 거절을 거절당했습니다. 짧게라도 좋으니 꼭 한 말씀해달라는 학교의 요청이 이어졌죠.

고심한 끝에 축사를 준비했습니다. 최대한 짧게, 전하고 싶은 말은 최소화하자는 원칙을 갖고요.


브런치를 시작한 이후로 모든 글을 브런치에서 써야 써지는 징크스가 생겼습니다. 축사도 이곳에 쓰게 되었고 작가의 서랍 속에 저장해두었죠. 날려버릴까 하다가 아쉬워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OO고등학교 학부모회장 송유정입니다.
저에게 이 귀한 시간을 내어주신 이유는 아마도 여러분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대신해서 마음을 전해 달라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올해 역시 한 분도 오시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만 여러분의 부모님들이 참석하셨다면 이런 말씀을 여러분들께 하셨을 것입니다.

여러분~
지난 3년 동안, 초등학교부터 12년 동안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지금까지 너무 잘해왔고,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무엇을 하든 잘할 거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은 아직 채굴하지 않은 비트코인이고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하나의 우주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가능성을 믿으면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부모님과 함께 뒤에서 묵묵히, 하지만 누구보다도 열렬히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분.

정확히 1분짜리 글이었습니다. 집에서 수십 번 연습을 한 끝에 원고 없이, 카메라를 보며 이야기했습니다. '지루해질 틈 없이 빠르게 끝내기'를 완수한 것만이 뿌듯했지요. 학생들에게 "와~ 감동적인 축사다~"라는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와~ 저 아줌마 센스 쩐다~ 엄청 빨리 끝냈어~"라는 찬사를 듣고 싶었습니다.


2년 동안 코로나와 함께 고등학교 생활을 한 학생들에게 졸업식은 어떤 의미일까요.

시끌벅적함은 사라진 지 오래고 삼삼오오 모여 사진 찍는 학생들만 더러 보였습니다. 꽃조차 들고 있지 않은 학생들이 많았으며 교문 앞 꽃 파는 분들은 올해도 허탕 쳤다며 철수를 했습니다. '졸업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코로나는 올해도 그들의 시작과 함께 해줄 것이기에 착잡합니다.


졸업식에는 늘 눈물이 납니다. 내 아이의 졸업식이 아니어도 그렇습니다.

아이들은 신나게 즐기는데 저만 청승맞게 눈물을 훔치고 있습니다. 공부에 치어 학창 시절의 낭만도 못 챙기고 졸업하는 것이 딱해서 한 방울, 사회에 나가면 더 힘들 텐데 하는 가여움에 한 방울.

그런데, 이런 신파 역시 꼰대 기질이 아닐까 생각이 들더군요. 생각보다 아이들은 그렇게 재미없고 따분하게 살지 않았습니다. 나름의 재미를 찾으며 신나는 학교 생활을 하더라구요. 졸업해서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어른들의 우려와 걱정과는 달리, 활기차고 씩씩하게 잘 살 겁니다. 쓸데없이 걱정하는 것, 이것도 기성세대의 꼰대짓입니다. 측은지심도 정도껏!


졸업을 축하합니다~ 제가 괜스레 울 필요는 없는 일 같습니다.

그저,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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