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글
Dday가 가까워질수록 피로도가 높아진다.
선택하고 싶지는 않은데 안 하자니 권리 포기 선언이 돼버리고, 하자니 부끄럽다.
세상이 바뀔 거라는 기대와 희망을 과감히 버려야 끝이 날 것 같아 서글프다.
한 달이 채 안 남은 대통령 선거를 향한 심정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치'라는 단어에서 느끼는 거북함과 불편함을 저 역시 느낍니다. 그런데 저의 그것은 조금 다릅니다. 정치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느끼는 부채의식, 그것에 기인한 불편함이기 때문이죠.
4년 동안 정치를 배웠지만 정치를 모르며, 밥상머리에서 정치 이야기를 해도 얼굴 붉히지 않는 같은 과 선배와 살고 있다는 사실만이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해 좋은 점이라고 여깁니다. 심지어 그와 저는 지지하는 정당이 다름에도 말이죠. 사람들이 정치 이야기를 해도 저는 잘 끼지 않습니다. 제대로 모르는데 함부로 말하는 것은 전공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등록금을 내주신 부모님의 얼굴에 먹칠하는 것이기도 하고요.
지금까지는 그것만으로도 만족하며 잘 살아왔습니다. 세상을 알고 싶다는 욕구도 없었고 경황도 없었지요. 그런데 졸업 후 처음으로 답답함과 갈증이 느껴졌습니다. 당장 대통령 선거에서 누구를 뽑아야 할지 답을 내릴 수 없는 이 상황이 답답했고 그 이유를 명확히 서술하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했습니다. 학창 시절 읽었던 책들을 다시 들춰본다면 답을 찾을 수 있을지 궁금해졌고 결국 일을 벌이고 말았습니다.
서른다섯 명의 동기 중 연락이 닿는 이들은 스무 명이었습니다. 그중 저를 비롯한 다섯 명이 함께 공부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전공을 살린 삶을 살고 있지 않으며 삶이 주는 피로감에 정치 따위는 잊고 산지 오래이나 가슴속에 남아있는 정치학도로서의 정체성을 조금은 끄집어내고 싶은 이들일 것이다.'라고 저 나름의 해석을 내렸습니다. 거기에 두 명의 후배까지 합류해 총 7명이 한 달에 한 권씩 정치와 관련된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기로 의견을 모았지요. 그렇다고 엄청 거창하고 무게감 있는 모임은 아닙니다. 우리의 모임을 세력화해서 정치사에 큰 획을 그어보자는 움직임은 더더욱 아닙니다.
대한민국에서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쁜 사람들이지만 '시민'이라는 책무를 다하기 위해 혹은, 도대체 세상이 왜 자꾸 마음에 안 드는지에 대한 이유를 찾아보기 위한 걸음입니다. 어쩌면 단순히 동기와의 의리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함께해주었을 수도 있겠지만, 일단 시작해보면 친구들도 각자의 의미를 찾으리라 믿어봅니다.
서른다섯 명의 동기 중에는 외교관을 꿈꿨던 이도 있고 사회부 기자가 되겠노라 넌지시 포부를 밝혔던 이도 있습니다. 시위대에 합류해 오른 주먹을 불끈 쥐고 '투쟁'을 외치기도 했으며 대낮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술자리에서는 무엇이 그리 괴로웠던지 쓴 소주를 강냉이 하나로 감당했습니다.
당시의 우리는 어디로 갔을까요.
붉은 페인트를 적신 두꺼운 붓으로 현수막에 글귀를 휘갈기던 당시의 저에게 시대 의식이라는 것이 있기는 했나 궁금합니다. 지금의 제게 정치는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어떤 고민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먹고 사는 걸 해결해주겠다는 정치인을 쫓는 것이 진짜 개돼지같은 발상인지, 아니면 그것을 해결하는 게 결국 정치인지, 뭐가 이리도 복잡하고 시끄러운지, 원인을 알아야 해결할 텐데 명확한 원인이 있기는 한 건지...
제가 너무 무지해서 답을 모른다는 생각에 공부를 시작합니다. 천천히 길게... 함께.
친구들과의 이야기를 이곳에 정리하렵니다. 한때는 정치학도였던 우리의 이야기.
여러분에게 정치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