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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Feb 13. 2022

< 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 > - 3부 정당

"혹시, 정치할 생각 있으세요?"

학부모회장과 학교운영위원을 하고 있다고 말하면 받는 질문입니다.

"시의원 나가보세요~"

교육자원봉사를 하고 있다고 말하면 듣는 말입니다.

"그렇게 봉사하다가 별정직 공무원으로 채용되면 좋겠네요. 그러려면 지금부터 정당일을 좀 하셔야 하는데."

기, 승, 전, 정치입니다.


그럴 때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손사래를 칩니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볼드모트'처럼 이름 자체가 공포였던 걸까요? 정치는 그렇게 제 삶에서도 금기어가 되다시피 했습니다. 무서워서라기보다는 더러워서 피한다는 표현이 더 맞겠지만요. 어쨌든, 상대가 흘리는 농담을 주머니에 주워 담아 집에 와서는 몰래 펴보곤 했습니다. 내가 정치를? 내가 시의원을? 상상을 하다 보면 절로 몸서리가 쳐졌습니다. 깜냥이 안 되는 건 둘째치고 정치라는 더러운 투전판에 몸을 던진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죠. 정치는 그렇게 더러운 것이라는 생각이 박혔네요.


넓은 의미에서 인류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 게 정치라고 정의 내린다면, 더럽거나 두렵더라도 끌어안고 가야 하는 게 정치라는 생각과 함께, < 한국 정치의 결정적 순간들 -3부>를 소개합니다.


3부 정당, 정치의 역사를 쓰다

정당이란,
선거에서 공직을 얻음으로써 통치기구를 통제하려는 사람들의 모임(p193)

모두가 동의하는 특정의 원칙에 입각해 공동의 노력으로 국가적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결합된 사람들의 단체이며, 집권 후 어떠한 형태의 정치를 펼치겠다는 이데올로기가 전제되어 있다. (p194, 영국 철학자 에드먼드 버크)


정치를 혐오하는 이유 중 하나는 정당이 제대로 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회란 원래 불일치나 다양성으로 구성되며 합의는 만들어지는 것(p198)인데, 정당이 바로 그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한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대화, 토론, 타협, 양보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함은 물론이고요.

공동의 이익이 아니라 제한된 소수의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 파벌과 동일시했던 집단(p197)이 정당에 대한 인식이었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과거형으로 말하죠. 민주화와 함께 정당은 다원화된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전달해주는 존재로 받아들여졌다고 말합니다. 최소한 영국에서는요.


우리나라의 정당은 여전히 과거에 갇혀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화, 토론, 타협, 양보, 합의, 이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이념과 철학이 없는 껍데기뿐이다 보니 대의 민주주의에서 정당이 해야 할 몫을 찾지 못합니다. 곳곳에서 사회 갈등이 드러나고 있지만 어느 정당도 제대로 된 대변 못하고 합의는 더더욱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죠. 그런데 선거에서 이기기는 해야겠고 민심을 사로잡을 방법은 모르겠나 봅니다. 점점 자극적인 언론에 기대고 상대를 밟아 반사이익을 얻으려 하지요. 정치인들이 광장 민주주의에 직접 참여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정치적 이슈가 생겼을 때 정당은 직접 거리로 나갈 것이 아니라 제도권 내에서 차분하고 합리적인 토론과 논리로 해결하고자 해야 한다(p248)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국가의 영역과 시민사회의 영역 사이에서 매개체 역할을 하고 '역량 있는 사람들이 공공 책무를 담당하도록 훈련'시키는 역할까지 해야 한다(p201~204)고 조언하지요.

저자는, 의원 중심보다는 당원이나 지지자 중심의 정당이 되어야 하고 조직으로서의 정당을 이끌어나갈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p245) 정당의 약화, 리더십의 약화, 기존 정치에 대한 불신 때문에 생긴 현상으로 '정치적 경험이 일천하거나 아예 없는 사람이 대중매체의 출현이나 다른 비정치적 활동을 통해 인기를 높이고 그러한 인기가 여론조사에 반영되면서 일약 유력한 정치 지도자군으로 떠오르는 일'을 언급합니다. 음... 2019년에 2022년 대선판을 예언하셨네요.


전문적인 역량을 가져야 하는 정치에서 경험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참신함으로 평가받는 것은 옳지 않다. 정치적 혐오나 불신에 기반하여 기존의 정당이나 정치인들은 모두 나쁘고 거기에 참여하지 않았던 이들은 선하다는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는 오히려 무책임하고 나쁜 정치를 불로 올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p248)

이 부분은 고민해볼 일입니다. 왜 정치신인에게 나라를 맡기고자 하는 여론이 들끓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왜 그 신인에게 절대 맡기면 안 된다는 여론이 들끓는지도 고민해봐야 합니다. 일단 시켜봐야 잘할지 못할지 알 수 있는 일을 지레 겁먹지 말자는 주장과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아냐는 주장 사이에서 '그놈이 그놈'이라며 좌절하는 지금. 당장 누가 답을 줬으면 좋겠네요.


저자는 이러한 정당정치의 폐단을 없앨 수 있는 방법으로 2장에서 말한 선거법 개정을 이야기합니다. 선거법 개정을 통한 다당적 구도로의 전환말이지요. "폐쇄적이고 독점적인 정당체제에서 벗어나 정치적 경쟁성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조금 더 나은 정치를 기대할 수 있는 방법이다."(p251)

그럼에도, 허경영을 뽑을 수는 없는 일이니 걱정입니다...

앗.... 혹시 허경영 후보의 지지자가 계시다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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