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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Feb 16. 2022

[동화] 악마 새


"그 얘기 들었어?"

"무슨 얘기?"

"저기 저 바닷가에 있는 새 얘기 말이야~"

"아. 그 무너진 성 안에 살고 있다는 새? 그 새가 뭐? 왜?"

"내가 며칠 전 슈퍼에 갔다가 들었는데 말이야?"


얼마 전부터 마을 사람들은 모이기만 하면 새 이야기를 했습니다. 바닷가에 무너진 성 안에 나타난 새 한 마리에 관한 이야기였죠.

갈매기만 잔뜩 있는 이 마을에 낯선 새 한 마리가 나타난 것은 일주일 전이었습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 혼자 왔는지 무리가 있는지, 아는 이가 전혀 없었습니다. 어떤 이는 비둘기인 것 같다고 했고 어떤 이는 흰뺨검둥오리 같다고 했지요. 

"에이, 어딜 봐서 비둘기여~~ 딱 봐도 기러기 같구먼."

"아, 이 사람아. 혼자 외롭게 다니는 기러기가 어디 있나? 게다가 지금은 여름이야. 기러기는 겨울에 우리나라로 온다고~"

"그런가? 그런데, 비둘기가 바닷가에도 사는가? 도시에서 사는 거 아니여?"

"거참 답답한 소리 허네~~ 날개 달린 놈이 어디는 못 가는가?"

"비둘기도 혼자서는 못살지 않어?"

"몰러~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는 가던 길이나 가세."

그물을 짊어진 어부 두 명이 한참 동안 새를 보며 떠들다가 가던 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새는 오래전 무너져 형체만 겨우 남아있는 성벽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있었어요. 바다를 향해 난 문으로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가 한눈에 보였지요.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모를 낡은 의자 위에 앉은 새는 바다도 보지 않고 웅성거리는 사람도 외면한 채 매일 같은 자세로 앉아만 있었어요. 살아는 있는데 도통 움직일 생각을 안 했습니다. 새가 움직이는 걸 보고 싶었던 동네 꼬마들이 돌도 던져보고 먹이로 유인도 해봤지만 소용없었어요. 그러자 사람들은 이 새가 더 궁금해졌지요.


"순자 엄마~ 그 얘기 들었어? 바닷가에 있는 새 말이야, 새끼가 죽어 슬퍼서 저러고 있는 거람서?"

"뭐? 새끼가? 어디서? 어쩌다가?"

"그거야 뭐. 잡아 먹혔거나 병에 걸려 죽었겄지. 어쨌든 그래서 저러고 있는 거랴~"

"정이 엄마는 그걸 어떻게 알았댜? 누가 봤댜?"

"저~기 슈퍼 할매가 그러더라고. 모르는 게 없는 할매잖여~"

"어쩐지... 처음 봤을 때부터 새 눈이 슬퍼 보이더라고~"

"그것도 어미인데 새끼 죽고 을매나 맴이 미어질까나..."

뻘에서 꼬막을 캐던 순자 엄마와 정이 엄마는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모든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곳은 할매가 운영하는 작은 슈퍼였습니다. 옛날에는 마을유일한 슈퍼여서 제법 벌이가 괜찮았는데 읍내에 큰 마트가 들어선 이후로는 사정이 달라졌어요. 물건의 종류다양하지 않고 값도 싸지 않으니 찾는 이가 뜸해졌지요. 동네 술꾼들이 가끔 가게 앞 평상에 앉아 과자 한 봉지를 가운데 두고 밤새 술이나 마시는 곳이었어요.

그런데 새 한 마리가 나타난 후로 사정이 달라졌죠. 새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한 마을 사람들이 할매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나둘 모여들었어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듣고 나면 그냥 가기 미안하니 빨래 비누라도 하나 사거나 과자 몇 봉지라도 들고 갔죠.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벌이가 늘어나자 할매는 신이 났어요. 그래서 조금씩 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했어요.


"할매~ 아무래도 좀 이상하지 않아요? 가끔 고개를 흔드는 것 보면 살아있는 게 분명한데 어떻게 저렇게 꼼짝도 않고 있을 수 있지요?"

"그러게나 말이에요. 벌써 열흘째예요. 굶어 죽어도 벌써 굶어 죽었을 것 같은데..."

"알을 품고 있는 걸까요?"

사람들이 질문을 쏟아내면 할매는 구부러진 허리를 쭉 피며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어요.

"밤이 되면 마을을 날아다니며 이 집 저 집 들다는 소문이 있어."

"뭐라고요? 그렇다면 마당에 말리려고 널어놓은 생선을 헤집어 놓은 것도 저 놈일까요?"

"죽은 생선만 먹으면 다행이게? 저~기 철민이네는 갓 태어난 새끼 고양이가 없어졌댜~"

"설마~ 새가 어떻게... 에이~ 그럴 수가 있나요?"

"모를 일이지~ 자식 잃은 어미 마음에 한이 맺히면 무슨 짓이든 못할까? 아마도 고양이 놈한테 새끼를 잃었나 보지."


새에 대한 흉흉한 소문은 거침없이 커졌어요. 커지는 소문만큼 할매네 슈퍼는 손님이 끊이질 않았지요.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새는 '밤마다 온 동네를 날아다니며 산 것 죽은 것 가리지 않고 배불리 잡아먹 마을에 불길한 기운을 가져오는 악마'가 되어있었어요. 모두 할매가 만들어낸 이야기인 줄도 모르고요. 마을 사람들은 흉측한 소문이 가득한 새가 마을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게 못마땅했어요. 어쩐지 생긴 것도 섬뜩해 보이고 가만 두었다가는 뱃일로 먹고사는 동네에 큰 사단이 날 것 같았죠. 결국 사람들은 곧 있을 용왕제에 새를 제물로 바치기로 했어요.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새는 그 자리에 꿈쩍도 않고 앉아 있었죠.

"아이고, 저 딱한 것. 제 제삿날이 오는 걸 아는가 모르는가. 처량 맞게도 앉아있네..."

결국 새는 제물이 되었어요. 흉흉했던 소문도 새의 죽음과 함께 수그러 들었고요.



추운 겨울이 되자 북쪽에 있던 기러기들이 바닷가 마을로 돌아왔습니다. 마을로 돌아오자마자 혼자 남겨졌던 '새'를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지요. 갈매기들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는 끔찍했습니다.

"말도 마~ 사람들이 얼마나 없는 소리를 만들어내는지 우리가 다 답답해 죽는 줄 알았다니까? 걔는 끝까지 도망도 안 가더라니까? 걔도 참 어지간해야 말이지..."

"에휴... 결국 그렇게 됐구나. 그렇게 움직이는 걸 귀찮아하더니... 북쪽으로 날아가는 것도 귀찮아 여기 남아있겠다고 했으니 말 다했지. 사람들 참 못됐다. 가만히 있는 애를 무시무시한 악마로 만들건 또 뭐야? 아무 해도 안 끼치는데?"

단지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을  뿐이었던 새는, 두고두고 악마새가 되어 회자되었습니다.



한국 언론진흥재단은 가짜 뉴스를 '정치·경제적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언론 보도의 형식을 하고 유포된 거짓 정보'로 정의했습니다. 가짜 뉴스는 인류의 등장과 함께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상대를 모함, 비방하여 개인의 이익을 취하는 일은 생존 자체가 목적이었던 과거에도 유효한 전략이었을 테니까요.

가짜 뉴스를 만들고 확대 재생산하는 세태를 비판하고 싶었습니다. 실상은 그게 아닌데 자신이 보고 싶은 관점에서만 상황을 해석하는 편협함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싶었고요. 그저 아무것도 안 하고 싶었던 귀차니즘 새 한 마리였을 뿐인데 말입니다...



매거진의 이전 글, 최형식 작가님의 동화 <나무 기러기>입니다.


5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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