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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Feb 24. 2022

네 도시락에는 어떤 추억이 담겼니?

추억의 도시락을 펼치며...

"멸치, 볶은 김치, 진미채, 분홍 소시지? 딱 추억의 도시락 재료네?"

"그러네. 추억의 도시락 만들어줄까?"

"응응~~~"

식사를 차리려고 반찬을 꺼내 놓으니 공교롭게도 그랬다. 죄다 추억의 도시락 재료. 아이처럼 좋아하는 다 큰 아들 녀석의 코맹맹이 소리에 얼른 가스불을 켜고 달걀을 부쳤다. 양은 도시락은 없으니 동그란 스텐 도시락을 꺼냈다. 나무주걱 한가득 밥을 퍼 도시락으로 가져갔다가 거두었다. 열아홉 살 청소년이 먹기엔 도시락이 너무 작다. 이렇게 커도 되나 싶은, 유리로 된 찬통을 꺼냈다. 뚜껑을 닫고 흔들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찬통이 워낙 크니 밥을 세 주걱이나 퍼넣었는데도 통의 3분의 1밖에 안찼다. 그 위에 진미채 무침 조금, 멸치볶음 조금, 볶은 김치 조금을 넣고 분홍 소시지도 보기 좋게 차곡차곡 얹었다. 마지막으로 계란 프라이를 얹으니 제법 '추억의 도시락' 꼴이 났다.


도시락을 받아 든 아이는 바텐더라도 된 것처럼 사정없이 흔들어댔다. 뚜껑을 염과 동시에 아이의 입에서 "와~~~"하는 외마디 탄성이 쏟아졌다. 큼지막한 통이라 내부에 공간이 많아 그랬는지 숟가락으로 비빈 것보다 훨씬 골고루 비벼졌다. 비주얼은 참 거시기하지만 아이는 고인 침을 삼켜가며 크게 한 숟갈을 떴다.

"음~~ 이 맛이야~"라며 다음 한 숟가락 안에 온갖 재료를 다 담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지켜보던 나도 침을 꼴깍 삼키며 "엄마 한입만!"을 외쳤다.

"그런데, 추억의 도시락을 찾을만한 추억이 너에게도 있니?"

"엄마가 해줬잖아."

아... 그랬다. 우리 집 아이들에게 추억의 도시락이란 엄마가 집에서 일부러 만들어주던 집밥 메뉴 중 하나였다. 추억의 도시락 유래와는 하등 상관없는 기억인 셈이다.


자고로 추억의 도시락이란, 양은 도시락이 기본이다. 밀폐력이라고는 1도 없는 통인지라 가능한 한 국물이 없는 반찬들만 간택된다. 멸치볶음, 콩자반, 어묵볶음, 진미채 무침 등의 마른반찬이 주재료인 이유다. 김치도 그냥 넣으면 물이 생기니 볶은 김치로 넣어야 한다. 반찬통을 따로 들고 다닐 필요 없이 밥과 반찬을 얌전히 넣어주고 계란 프라이 하나 부쳐 이불처럼 덮어준다. 뚜껑을 덮고 손수건으로 단단히 동여맨다. 행여나 샐지도 모르니 가방 가장 밑바닥에 그대로 넣고 그 위에 책이며 필통을 넣어야 한다. 철 모르고 신이 난 아이의 등위에서 몇 분을 버틸지는 모른다. 월미도 디스코팡팡 위에 올라탄 것처럼 사정없이 퉁퉁 떠를게다. 지그시 누르고 있는 프라이 덕에 짓궂은 아이의 등굣길에도 도시락 내부가 크게 흐트러지지 않을 것이라는 엄마의 믿음은 대문 밖 한걸음에 처참히 무너질지도 모른다.


속사정이야 어떻건, 학교에 도착한 도시락은 가방 속부터 수업 듣는 아이의 코끝까지 냄새를 폴폴 풍기며 한 2교시까지 버티다가 3교시쯤 선생님에게 강제 수거됐다. 다른 계절에야 차가운 도시락을 먹어도 상관없지만 추운 날씨가 시작되고 교실에 갈탄 난로가 화력을 뽐내기 시작하면 선생님의 잡무가 하나 더 늘었다. 아이들의 도시락을 모아 난로 위에 쌓아두고 수시로 위아래를 바꿔가며 뜨끈하게 데워주는 것. 선생님 머릿속에는 도시락 위치 변경까지 수업 계획에 들어있다는 듯 흐트러짐이 없었다. 국어시간에는 몇 쪽에서 몇 쪽까지 큰소리로 읽어보라고 했고 산수 시간에는 "오늘 며칠이지? 5일? 5번 15번 25번 35번 45번 55번 65번 나와!"라고 하시고는 칠판에 적어놓은 문제풀이를 시켰다. 선생님은 그 시간을 틈타 도시락 골고루 데우기에 집중하셨다. 이건 내가 최고라는 어떤 자부심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덕분에 따뜻한, 때로는 바닥이 맛있게 눌은 도시락을 먹었던 추억! 마! 이게 추억의 도시락이다.


사실 내 기억 속 도시락에는 지금 우리 아이가 먹고 있는 도시락만큼의 반찬이 들어가지 않았다. 섞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콩자반에 무말랭이, 콩자반에 깍두기, 콩자반에 계란 프라이... 꼭 잡고 흔들어봐야 매번 콩자반 맛이었다. 지금은 꽤 비싼 국산 검은콩이 그 시절엔 쌌던가보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삼시세끼 콩자반이 올라왔다. 분홍 소시지도 배불리 먹었던 기억은 없다. 그러니 내가 만들고 있는 '추억의 도시락'이라는 것상당히 왜곡되고 변질된, 혹은 조작된 '추억'에 의한 도시락이다.



십여 년 전 용인시에서 '레인보우 클러스터'라는 사업을 벌인적이 있었다. 우리가 사는 용인의 명소를 여행 다니며 애향심을 높이자는 취지였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어디 다른 지역 다니면서 밥 사먹고 기름 넣지 말고 용인에서 돈 쓰라는 취지가 숨어있다는 것을 말이다. 인증을 많이 한 학생들은 학교에서 상을 받기도 했던 터라 아이들은 주말마다 경쟁적으로 돌아다녔다. MBC 드라미아, 와우정사, 한택 식물원, 에버랜드, 민속촌, 농촌테마파크, 어린이박물관, 백남준아트센터, 등잔박물관, 포은 정몽주 선생 묘, 자연휴양림, 문화유적전시관... 다닐 만큼 다니고 쓸 만큼 써서 아이들에게도, 용인에도 최선을 다했던 한 해였다.

매번 밥을 사 먹기는 부담되고 거한 도시락을 싸기는 더 부담될 때, 추억의 도시락을 싸갔다. 무더웠던 어느 날, 한택 식물원 매점 앞 테이블이 떠오른다. 땀은 줄줄 흐르고 얼굴은 벌게졌지만 도시락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깔깔거리며 웃던 아이들의 해맑은 표정이 선하다. 그날의 온도, 그날의 바람, 그날의 도시락, 그날의 아이들. 이 모두가 조작된 추억의 편린은 아니겠지. 그 옛날 내가 알고 있던 추억의 도시락이 지금의 그것과는 다른 것처럼, 내가 기억하는 그날의 기억이 아이들의 그것과 다른 것은 아니겠지.


우리 아이들에게 추억의 도시락이란 이렇게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언제?

우리가 가장 맑고 귀여웠으며 엄마 아빠가 가장 젊고 아름다웠던 시절에

어디에서?

우리가 가장 행복한 시절을 보냈던 용인에서

누가?

이 세상에서 서로를 가장 사랑하는 우리 가족이

왜?

레인보우 클러스터를 핑계로 주말마다 여행하면서

무엇을?

도시락 하나에 좋아하는 반찬 여러 가지를 담아

어떻게?

세상에서 가장 맛있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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