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스러운 침묵

by 늘봄유정

고3 첫 모의고사를 앞둔 작은 아이가 확진이 되었습니다.

아이는 며칠 동안 목이 답답하고 으슬으슬 추웠지만 참았나 봅니다. 확진되어서 학교를 빠지는 일은 피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열로 달아오른 얼굴을 엄마에게 들키고 귀를 빠져나온 체온계가 37도 몇의 숫자를 보이면서 체념해야 했습니다. 차라리 며칠 전에 확진이 되었다면 모의고사를 학교에서 제대로 쳤을 텐데 타이밍 조절에도 실패했죠. 그렇게 고3 첫 모의고사를 집에서 쳐야 했고, 성적표도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재택 응시자들은 연합학력평가 온라인 시스템을 통해 시험지를 다운로드하여 시험을 칠 수 있었습니다. 모의고사를 '모의(模擬)'하는 꼴이 된 것이죠. 전날 시험지 탑재 시간을 확인하고 시험날 아침을 맞이했습니다. 명색이 첫 모의고사이니 시간이라도 잘 맞춰 보자는 것이었죠. 그런데 웬걸. 접속자 폭주로 서버가 마비, 다운, 폭발... 뭐 그런 상황이 생겨버린 겁니다. 어디에 문의하거나 하소연할 수도 없고, 시험에 임하던 긴장 따위는 없어진 지 오래고, 새로고침만 반복하는 상황.

답답했던지 아이가 불쑥 한마디를 던졌습니다.


"여기도 비리가 있나 보구먼."

"뭔 비리?"

"재택 응시자가 많을 걸 뻔히 예상했을 텐데 서버 확충을 안 해놓은 거 보니까 누가 또 거기에 쓸 예산 빼돌린 거지."

"푸하하하. 또 의심하는 거야?"

아이가 가진 세상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은 이번에도 터져 나왔습니다. 나름 기대와 긴장을 갖고 마주한 첫 모의고사일 테니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고 싶었겠지요.


1교시 국어시간을 훌쩍 넘기고 2교시 수학 시간까지 넘겼을 때야 비로소 시험지 출력이 가능해졌습니다. 아이는 타이머를 설정해놓고 제법 진지하게 문제를 풀었습니다. 3교시 영어시간 듣기 평가를 위해 저는 파일을 다운로드하여 방문 앞에서 노트북으로 틀어주었습니다. 제법 학교에서 시험 보는 분위기를 내주려고 했지요.


과학탐구과목까지 모두 끝낸 아이는 서둘러 채점을 했습니다. 요란스럽던 돌방상황에도 불구하고 동요하지 않던 아이, 대체로 만족스러운 결과라며 안도하는 아이를 봤을 때는 별 감흥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채점한 성적을 들고 몇 시간씩 인터넷을 떠돌며 예상 등급컷을 확인하고 다니는 저를 보니 '아, 드디어 입시가 시작됐구나...'하고 실감이 되데요? 유명 학원이나 컨설팅회사의 등급컷이 무슨 그런 큰 의미가 있겠습니까마는,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등급컷과 아이의 점수를 대조하느라 저녁 시간내내 컴퓨터 앞에 앉은 저는 본격적으로 수험생 학부모가 되어있었습니다.


불안, 초조, 흥분, 전전긍긍...

요란스러운 침묵을 아이에게 들키지 않고 올 한 해 잘 지내야겠습니다.

첫 모의고사를 치른 브런치 작가님들의 자녀분 역시, 모두 씩씩하게 올 한 해 지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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