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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Apr 05. 2022

끌브그슳드

"키햐~ OOO은 왜 그렇게 똑똑할까?"

"OOO 같은 사람이 우리 지역구 국회의원이면 얼마나 좋을까?"

"OOO 같은 정치인이 많아져야 하는데."

"OOO처럼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정치인을 못 봤어."

"정치하는 사람이라면 응당 이래야지. 자기 지역구를 위해 국회의원이 되고 싶다는 소신이 있어야지."


출근 준비를 마치고 방에서 나오는 남편, 아주 신이 났습니다. 남편이 매일 듣는 아침 뉴스쇼에 좋아하는 정치인이 나왔던 것입니다. 남편은 그가 하는 모든 발언에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저 들으라는 듯 과장된 목소리로 느껴졌지요.

남편의 흡족한 표정이 못마땅했습니다. 전복구이를 씹는 소리도 듣기 싫었습니다. 설거지하는 제 옆에서 알짱거리는 움직임에도 짜증이 났지요. 

하필, 제가 가장 싫어하는 정치인이 남편의 최애 정치인이라니... 

 

그럼에도 경청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을 합니다. 이해해보려고 합니다. 

남편은 저의 뮤즈이기 때문입니다. 

편향될 수 있는 사고의 중심을 잡아주는 사람이며 흘러가버리는 시간을 잡아 글로 남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지요. 정치에 있어서도 그렇습니다. 저와는 완전 반대의 지점에 서서 날 선 비판을 던지는 사람입니다. 듣기 싫더라도 도망치지 않고 똑똑히 듣게 하는 힘이 있지요. 그의 주장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듣고 나면 생각이 많아집니다. 그래서 그와의 대화가 즐겁고 기대됩니다. 


그런데 오늘은 실컷 삐딱해지고 싶습니다. 출근하는 이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다녀오라는 인사를 하는 것이 고작 제 반항의 표현입니다. 분이 풀리지 않은 저는 오늘 일정을 준비해야 하는데 이러고 앉아 만천하에 성질을 내고 있습니다. 


논리적, 합리적이라는 것은 반드시 정의로운 것인가.

모든 논리는 옳은가.

모든 비논리적인 것들에 귀를 닫는 것은 바람직한가. 

그전에, 인간은 이성적인가.

논리라는 허울 덕에 본디 감성적인 인간이 이성적인 것처럼 포장되는 것은 아닌가.

감성적이라는 것이 나쁜가. 무시되어도 되는 것인가. 


어쩌면,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다'라는 것이 새로운 성역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닐까 합니다. 

그 말 한마디면 상대가 느낀 모든 부조리와 부당함이 부정됩니다. 하소연할 곳을 찾지 못하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줄 이를 찾지 못해 다시 심연으로 빠져버립니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이들의 주장에 비논리적이고 감정이 앞서는 사람들의 슬픔과 아픔은 가려졌습니다. 

결국, 누군가의 절망과 좌절이 누군가에게는 논리의 승리로 미화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저는 오늘, 그 정치인과 남편이 참... 꼴 보기 싫었습니다. 

제 꼴 보기 싫음에는 어떤 논리도 없습니다.

그저 입에서 이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끌브그슳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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