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이 넘은 시어머님은 살림을 하나하나 정리중이십니다. 오래 손때 묻어 버리기 아까운 것들을 하나뿐인 며느리에게 입양 보내고 계시지요. 저희 집으로 온 아이들 중 골동품은 남겨두고 살림살이는 이웃과 나누거나 중고시장에 팔았습니다. 어머님이 사용하시던 스텐 양푼이나 소쿠리, 오래된 그릇 등은 꽤 쏠쏠한 수입이 됐지요. 최근에는 4박스나 되는 크리스털 그릇을 남편 손에 들려 보내오셨습니다. 그리고는 전화를 하셔서 제게 몇 번이고 이르셨지요.
"애미야. 볕 좋은 날, 마루에 잔뜩 펼쳐놓고는 양다리 쭉 펼치고 앉아서 하나하나 닦아봐라. 새것 같을 거야. 내가 어디 그런 그릇 쓰고 살기나 했겠니? 쓸만한 것은 네가 쓰든지 이웃이랑 나누든지 버리든지. 네가 알아서 해라. 도저히 내 손으로는 못 버리겠어서 그래. 알았지? 꼭 볕 좋은 날 해야 한다~"
'왜 볕 좋은 날 거실에 양다리 쭉 펼치고 앉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님이 하라는 대로 했습니다. 당신의 손때 묻은 물건과 작별하는 나름의 의식, 살면서 움켜쥐고 있던 당신 욕심을 내려놓는 일을 제게 대신 부탁하신 거라 생각했죠. 귀해 보이거나 제 맘에 드는 것을 남겨 다락방에 올려두었습니다. 사진을 찍어 동생에게 보냈고 필요하다는 것을 따로 싸 두었습니다. 나머지는 지인들을 불러 나누고 또 나머지는 당근에 팔았지요. 그렇게 거실 한편에 늘어져있던 그릇들을 모두 처리했습니다.
동생이 필요하다던 그릇 몇 개에 제가 주고 싶던 예쁜 볼 두 개를 더 챙겨 넣었습니다. 초콜릿을 넣어두니 제법 예쁜 것이, 아이들이 있는 동생에게 주면 참 좋겠다 생각했죠. 친정 옆에 사는 동생은 엄마 집에 가져다 놓으면 찾아가겠노라 했습니다. 그게 사건의 발단입니다...
호기심 많고 매사에 적극적인 친정어머니는 박스에 쌓인 크리스털 그릇을 그냥 두지 않았습니다. 하나하나 다 풀어보고 요리조리 살펴보셨지요. 그러더니...
"너는 왜 엄마한테는 뭐 갖고 싶은 거 없냐고 안 물어봤어? 왜 사진 안 보냈니? 하긴, 엄마는 지는 해인걸 뭐..."
"에이... 무슨 그런 말씀을... 지는 해라니... 있는 그릇도 처치곤란이라면서요. 평소 살림 늘리는 것 싫다고 했으니 드릴 생각도 못했죠."
"그런데 어머~ 이 크리스털 볼 진짜 예쁘다. TV 밑 서랍장 위에 장식하면 딱이네~ 나 이거 가져도 될까?"
엄마는 섭섭함도 잠시, 동생 것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습니다.
"크리스털 볼? 새봄이 주려고 가져온 건데... 전화해서 물어볼까?"
욕심 없고 순하기로 유명한 동생은 웬일인지 펄쩍 뛰었습니다.
"언니! 엄마한테 이 말 꼭 전해! 엄마는 완전 욕심쟁이라고!"
농담 섞인 말이었지만 서운함이 스며있었죠. 하지만 친정어머니는 아랑곳 않고 서랍장 위에 볼 두 개를 나란히 두고는 흐뭇해했습니다. 친정어머니와 동생 사이에서 난감해진 저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다락방으로 올라가서 잘 싸 두었던 박스를 들고 내려왔고 이튿날 다시 친정으로 갔지요. 삐진 동생을 달래주고 사태를 수습하려고요. 저에게도 아껴두고 싶던 것들이었지만 당장 쓸 물건이 아니었으니 순순히 내어주었습니다.
"그래~ 우리 재옥이 하고 싶은 거 다해~ 새거 사주지도 못하면서 괜히 유세 떨었네. 갖고 싶은 거 다 가져~ 알았지? 응?"
엄마는 자식의 무례한 반말에도 아랑곳 않고 그저 크리스털 그릇을 잔뜩 싸서는 총총총 부엌으로 사라졌습니다.
...
우리의 대화가 거기까지였더라면 참 재밌는 에피소드였을텐데, 엄마의 욕심이 크리스털 그릇까지만이었다면 '귀여운 할머니'라고 넘어갔을 텐데... 친정어머니는 기어이 '말'에도 욕심을 가득 담았습니다.
"사람들이 다 그래. 너 참 똑똑한데 왜 아무것도 안 하고 사냐고. 참 아깝다고."
"(가진 것 하나 없이) 통만 큰 거, 너 스스로도 알고 있니?"
"기름 값도 올랐는데 너도 (봉사 같은) 쓸데없는 데 다니는 것 좀 줄여야겠다."
당신의 욕심대로 살지 못하는 딸에 대한 아쉬움을 가득 담은 말, 매번 들어도 적응 안 되는 말, 자존감을 확 꺾는 말을 친정어머니는 당신 욕심껏 내뱉어버렸습니다.
잔뜩 상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오는 길, "진짜 욕심쟁이야."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왔습니다.
팔순이 넘은 시어머니는 욕심과 함께 물건에 대한 집착까지 내려놓는 연습을 하시는 중입니다. 수십 년 함께 했던 물건을 내어놓으실 때마다 안타깝습니다. 하고 싶은 말씀을 꾹 참으시는 듯 느껴질 때는 속이 상하기도 합니다.
그에 반해 칠순을 넘긴 친정어머니는 말로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여전히 남에게 자랑할 거리를 자식에게 갈구합니다. 누구네 집 자식보다 잘 살았으면 좋겠고, 남이 알아주는 일을 했으면 하는 거죠. 욕심에서 자유롭지 못한 어머니의 모습이 안타깝고 그 말들에 짓눌린 저는 속이 상합니다.
늙어간다는 것이 자신의 모든 욕망을 하나하나 도려내는 것이라고 본다면, 어쩌면 저는 친정어머니에게 장난삼아했던 말을 다시 꺼내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가 온갖 욕심을 부리도록 놔두는 편이 낫겠습니다. 욕심이 사라진 엄마의 노년은 더 서글플 것 같기 때문입니다. 상처는 어차피 제 몫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