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다섯 번이나 부르며 시작하는 버스커버스커의 '벚꽃 엔딩'이라는 곡은 2012년 발표된 이후 줄곧 봄만 되면 살아나는 곡이다. '벚꽃 좀비'라고 불리는 이유다. 장범준은 이 곡으로 매년 10억 원의 저작권료를 받는다고 하니 '벚꽃 연금'이라고 불릴 만도 하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살랑살랑 거리는 볕 좋은 봄날, 벚꽃 흩날리는 거리를 걷노라면 자연스레 이 노래가 생각난다. 이유도 근거도 없이 행복한 기운이 샘솟는다. 노랫말의 주인공이 된 듯, 내가 벚꽃이 된 듯 마음이 두둥실 떠다니게 된다.
몇 년 전 봄, 집 근처 삼겹살 집에서 점심을 먹고 집으로 향하던 우리 가족 앞에 풍성하게 핀 벚꽃들이 흩날리는 풍경이 펼쳐졌더랬다.
따뜻하고 기분 좋은 봄바람.
적당히 따가운 봄볕.
미세먼지와는 다른, 봄에만 볼 수 있는 약간은 뿌연 시야.
중3, 초6이라 한창 무뚝뚝하던 시절의 아들들은 벚꽃으로 마법이 풀린듯했다. 그러지 말라는 엄마의 만류에도 나무를 슬쩍슬쩍 흔들어 꽃비를 갈망했다. 한놈이 흔들면 한놈은 그 밑에 서서 꽃을 맞았다. 떨어지는 벚꽃잎을 손으로 잡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며 빙글빙글 돌고 이리저리 뛰어다니기도 했다. 영락없는 강아지였다. 잡히지 않는 제 꼬리를 잡으려고 빙그르르 끝도 없이 도는 똥강아지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아~~ 행복하다'라는 마음속 외침을 들었다. '이런 게 행복하다는 느낌이구나. 그려지지 않는 추상적인 단어가 아니었구나' 싶었다.
"이런 거 행복 아니다~~~!"
하늘거리며 떠다니던 벚꽃잎을 땅바닥에 털썩 붙어버리게 만든 짓궂은 소나기 같은 멘트였다.
자나 깨나 돈 때문에 한 걱정하는 남편이 내 귀에 대고 나지막이 속삭인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행복의 총량을 이깟 찰나의 감정으로 소비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로또 1등의 대박 행운, 그 정도는 될만한 극강의 행복을 위해 지금의 사소한 행복을 못 본 척 하자는 것이었다.
거짓말쟁이.
남편 역시 나와 같은 것을 느꼈기에 나온 말임을 안다. 너무 행복한 나머지 행복했다는 기억만 남고 모든 행운이 끝나버릴까 봐 조바심이 났을 테다. 인생에서 조금은 손에 잡히는 행복도 누려보고 싶다는 절박한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행복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행복을 관장하는 신이 나타나 "응, 그래~ 넌 충분히 행복하구나?" 하면서 스쳐 지나가 버릴까 봐 겁이 났던 것이다.
그래서 그의 "이런 거 행복 아니다~~~!"라는말은 나의 '아~ 행복하다~'라는 말보다 어쩌면 더 강렬한 행복의 표현일지 모른다.
그때 그 따스했던 길도 늦가을이 되면 스산하다. 어딜 가도 11월 말이면 춥고 쓸쓸하기가 마찬가지이지만 아는 길이 주는 냉정함은 더 크다. 벚꽃을 앞세워 공기, 온도, 색깔 모든 것이 따뜻했던 4월의 풍경은 오간데 없다. 10월 초의 나뭇잎들은 이제 막 단풍의 옷을 입어 그런지 때깔이 곱던데 11월 말의 단풍들은 곧 떨어질 것을 예감한 듯 파리하다.
처량 맞은 나무를 보고 스산한 바람에 더 움츠러드는 나를 봄날 벚꽃길을 걷던 그날의 행복했던 기억이 달래준다.
수염이 거뭇거뭇 나기 시작한 아이들이 꽃잎을 잡으려고 폴짝거리는 모습을 지켜보던,
두 손 꼭 잡은 그와 나.
적당히 따뜻하고,
적당히 시원했으며,
적당히 눈부시고,
적당히 뿌옇던...
어느 계절 어느 날이든 마음이 쓸쓸해지면 그 행복했던 날의 기억을 꺼내 열어본다. 그러면 이내 마음이 노골노골해진다. 마음에 훈기가 돌고 나면 다시 소중히 접어 넣어둔다. 내년 가을이나 이르면 올 겨울, 아니 마음이 다시 스산해질 때마다 꺼내보아야 하니 말이다.
5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다양한 글을 각각의 색으로 소개합니다. 월, 화, 수, 목, 금, 토, 일... 매일 한 편씩 소개됩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작가님들은 매주 일요일 주제가 나간 이후, 댓글로 [제안]해주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