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이어달리기
꽃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2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책을 좋아해 읽는 독서광, 음악을 자주 감상하는 음악 애호가처럼 꽃을 자신이 머무는 곳에 두고 자주 들여다보며 아름다움을 음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그 대상이 스며들도록 시간을 들이며 감상자의 입장에서 꽃을 가까이하는 ' 관조하는 감상자 유형'의 사람들입니다.
또 한 종류의 사람들은 마치 치열하게 글을 쓰는 작가처럼, 또는 작곡이나 편곡을 하며 전체 방송의 조화로움을 생각해야하는 음악감독처럼 꽃을 가까이합니다. 그들은 처음에는 화병에 꽃은 꽃이 너무 빨리 시들어 작은 화분의 꽃들을 돌보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다른 꽃들을 알게 되면서 조금씩 다음번에 피울 꽃 화분을 들입니다. 지금 꽃이 아닌 앞으로 꽃을 피울 식물을 미리 곁에 두기로 하는 것이지요. 그러다 하나둘씩 모인 화분들의 분갈이에도 익숙해져 점점 베란다 정원 혹은 정글이 만들어집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땅 위에 정원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마음을 먹습니다. 이것저것 심어보고 실험하고 기다리고 실패하고 성공을 반복합니다. 정원의 꽃의 위치를 구상하고 변화시켜 꽃이 피고 지고 4계절을 그곳에서 함께 보내며 꿈꾸는 '감독하는 창조자 유형'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사람들은 꽃을 좋아한다면서 바쁘게 움직이느라 감상자들처럼 한가하게 꽃을 지켜보고 음미할 시간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팔다리를 계절의 리듬에 맞게 척척 움직이는 그 모든 순간, 그들은 눈과 손과 코, 아니 온몸으로 꽃의 탄생과 죽음을 돌봅니다. 꽃을 음미한다는 것은 그들에게 단지 아름다운 절정의 순간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장마나 태풍으로 초토화된 정원을 치우며 자연 앞에 화를 내거나 무력감을 느끼고, 가을의 낙엽을 치우고 퇴비를 미리 준비하는 고된 작업들을 거치면서 '내가 힘들게 왜 이러고 있나' 수없이 자문합니다. 겨울을 지나 다시 솟아날 꽃들을 위해 추위를 걱정하며 엄마처럼 이불을 덮어주며 그들을 돌봅니다. 힘들지 말라고 가지를 정리해 주었던 시간 속에서 보이지 않는 꽃의 존재를 이미 믿고 또 음미하고 있었던 사람들이 그들입니다.
손톱 밑이 새까만 농부가 봄꽃을 음미하는 시간은 따로 있지 않았습니다.
농부의 시간이 쌓이고 땅 위에는 그의 땀과 발자국들이 다정한 흔적을 남깁니다. 환희의 순간과 한숨도 그 땅에 쌓여갑니다. 그러다 어느 날 봄, 허리를 펴고 농부가 일어섰습니다. 그가 뒤돌아 보았을 때 바람이 불고 하늘에서 자신만을 위한 꽃가루가 한가득 떨어졌습니다.
진정 자신이 도운 것인지 스스로도 알지 못한 채 눈앞에 펼쳐지는 봄꽃들의 축제에 그가 초대되었습니다. 농부는 영광의 시상식장 한가운데 땅을 밟고 서있습니다. 손에는 트로피 대신 손 모양에 맞춰 딱 적당히 휘어진 호미를 들고, 목에는 금메달 목걸이 대신 땀에 쩔은 목수건이 걸려 있습니다. 뭘 했길래 금메달이냐고요?
운동회에서 보이는 선수들 뒤의 보이지 않는 '농부 감독'이 받는 상입니다. 꽃들의 이어달리기를 계획하고 감독한 농부에게 금메달 시상식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봄꽃'이 너무 빨리 떨어져 아쉬워하는 농부 감독은 이어달리기를 위해 바로 다음에 필 꽃들을 계획해두었습니다. 3월 매화와 앵두꽃, 모과꽃이 지고 나면 4월 튤립을 맞습니다. 5월 모란(목단) 꽃의 개화를 기다리다 보면 어느덧 그 옆의 작약도 필 준 준비를 합니다. 거대 막대 사탕같은 알리움이 피고 오월의 울타리 장미들에 있는 진딧물을 떼어주는 동안 차곡차곡 입을 채워 올라가던 글라디올러스도 분홍 꽃 몽우리를 드러내며 수국과 여름을 시작합니다. 그렇게 여름꽃들로 계속 이어지는 꽃의 릴레이 축제가 시작됩니다. (모두 어설픈 손길로 만들어온 저의 마당의 감사한 꽃들입니다)
봄꽃들은 '준비! 탕!' 하는 시끄러운 총소리 없이도 봄 햇살 하나만으로 팡! 하고 터지며 달리기 시작합니다. 저 아래 남쪽 지방에서 시작한 릴레이는 엄청난 속도록 위로 달려옵니다. 봄꽃은 이어달리기의 첫 주자답게 우리 모두를 설레게 하는 꽃놀이 도시락을 싸게 만듭니다. 아이도 어른도 봄꽃의 가로수길에 멈춰 정신없이 하늘과 꽃을 보게 만들다가 눈 깜짝할 사이 두 번째 주자에게 바통을 얹어주고 빠집니다.
언제가 봄의 끝인지 정신을 차릴 수 없이 숨 가쁘게 한 바퀴가 끝나버립니다.
하지만 꽃들의 이어달리기는 아시다시피 끝나는 것이 아니지요. 이어달리기 주자가 바뀌더라도, 두 번째 세 번째 다음 주자가 경험시켜줄 다른 생명력에 우리는 손뼉을 치기도 하며 함께 팔을 휘저을 것입니다. 타들어갈 듯한 뜨거운 푸르름과 스르르 부서지는 오색 단풍 낙엽을 지나 결국 하얗게 안기며 끝나는 3명의 주자는 또다시 1번 주자에게 바통을 넘길 것입니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계절의 순환에도
봄의 꽃은 영원한 시작의 1번 주자입니다.
혹독한 겨울을 참고 가장 힘들게 꽃망울을 터트리며
우리에게 보란 듯이 자신을 따라 뛰어보라고 하늘하늘한 속력을 냅니다.
운동회의 꽃이 이어달리기인 것처럼
봄꽃은 설렘의 시작, 축제의 시작입니다.
농부 감독은 이어달리기 선수들이 힘이 빠지지 않게 도우며 그들 곁에서 함께 달립니다. 농부 감독은 1번 주자에 대한 믿음과 기대가 가장 큽니다. 그리고 감독의 일을 그와 같이 시작하는게 행복합니다.
손과 발이 바빠지고 부지런히 움직여 힘 있을 때 많이 달려놓아야 그 후 다음 주자의 아름다운 이어달리기를 감상할 자격이 생기는 것이지요. 벌써 봄 꽃잎이 한잎 두잎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힘껏 속력을 내다 사라질 것입니다.
올해 농부 감독은 마음껏 허리를 펴고 하늘을 보면 좋겠습니다.
창조를 도운 즐거움을 마음껏 느끼면서 손발을 움직이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도 봄꽃과 함께 나만의 새로운 창조를 돕기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요?
자연의 위대한 걸작을 마치 신의 창조물처럼 함께 도와 만들어내는 정원사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김해 진영 <농부가 그린 정원>의 농부님은 바로 두번째 종류의 사람이지요. 작가이자 화가이자 조각가 사진작가를 동시에 하고 계시는 창조적 예술가인 사람, 제 막내 외삼촌을 생각하며 글을 썼습니다.
어제 4월 7일 정원의 창조자로 사신지 벌써 15주년이 되었더군요.
외삼촌이 올려두신 다음 카페의 이전 글들을 거슬러 올라가 농부의 집이 처음 만들어지고 꽃들이 전시되었던 사진을 발견하고 그리움이 밀려왔습니다. 제가 결혼했던 그해 처음 예비 신랑이었던 남편과 인사드리러 가본 이후로 자주는 가보지 못해 지금이 정원이 너무 궁금한 마음도 무척 큽니다.
혼자 그 넓은 곳을 다 일구는 우리 농부님의 건강은 어떨지 그 꽃들과 동물들은 지금 어떻게 변해있을지 올 봄에는 꼭 가서 사진으로 남겨두고 오고싶습니다.
4월 1주 (4.4~4.9)
봄 시리즈 네번째 주제 "봄꽃"
*매거진의 이전 글 늘봄 유정 작가님의 <벚꽃 연금>
*매거진의 이전 글 보리 작가님의 <어머니, 콩 농사짓는 농부가 되고 싶습니다> 입니다.
5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다양한 글을 각각의 색으로 소개합니다. 주제는 그림책을 매개로 하여 선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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