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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May 17. 2022

내 생애 최고의 사치

교육자원봉사센터 워크숍이 있었습니다. 2019년 12월 연말 모임을 끝으로 전체 교육자원봉사자가 함께하는 자리는 요원한 일이 되었는데, 이런 날이 오긴 왔네요. 자연휴양림 내 회의실과 야외에서 진행된 워크숍에는 40명 정도가 참여했습니다. 백 명 가까이 모였던 2019년에 비하면 적은 인원이지만 코로나 이후 이 정도의 인원이 대면으로 모인 것은 처음이었으니, 들뜨고 설렜습니다.


회복적 정의팀에서 준비한 공동체 놀이, 미션을 따라 자연휴양림을 돌아보는 에코 티어링 활동을 매개로 함께 봉사하는 선생님들을 만나 웃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휴양림 내에 있는 산을 오를 때 "워크숍의 꽃은 결국 등산이냐!"며 투덜거리기도 했지만, 자연 앞에서 무장해제된 사람들만이 나눌 수 있는 진솔한 대화가 기억에 남습니다.


처음 뵙는 봉사자들과 하루 종일 나눈 대화 중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호시탐탐 나갈 기회만 노리고 있는데 그게 잘 안된다. 도대체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무엇이 나를 여기에 남게 하는지 모르겠다."였습니다. 정색하고 쏟아내는 불만이 아니라 호기심과 의아함, 장난기 가득한 의문이었죠. 그렇게 말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맞아요~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었구나?"라며 맞장구를 쳤죠.  


워크숍은, 개개인이 교육자원봉사에 대해 갖고 있는 내면의 갈등과 번뇌, 기쁨과 보람을 수면으로 끌어내 함께 공유하고 공감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 지인의 소개, 우연한 기회 등 다양한 경로로 봉사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시작을 했습니다. 하지만 분명 교육자원봉사가 교육현장에서 쓰임이 있다는 생각이 조금씩 자라납니다.

- 봉사라는 일이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어서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길을 함께 가는 이들 때문에, 혹은 나를 기다리는 아이들 때문에, 뭔지 모를 책임감 때문에 그만두지 못합니다.

- 올해까지만 하고 그만해야지, 할 만큼 했다는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내년에 또 신청하는 학교가 있다면 냉정하게 내치지 못할 겁니다.

- 봉사는 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꽤 괜찮은 사회참여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함께 하자고 섣불리 권하지를 못합니다. 준비과정도 길고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이 가진 부담감이 크기 때문입니다.


공동체 놀이가 끝날 즈음 사회자 선생님이 눈을 감으라고 했고 모두의 손가락에 큼지막한 보석반지 하나씩을 끼워주었습니다. 그저 빨아먹으면 그만인 보석반지 사탕을 받아 들고 봉사자 모두는 어찌나 기뻐하던지요. 인증샷을 찍고 서로에게 자기 반지가 더 예쁘다고 자랑을 하기도 했습니다. 올 한 해 열심히 봉사할 수 있는 힘을 얻은 시간이 됐지요.


제 손에 끼워진 보석반지를 바라보며 얼마 전 센터장 선생님이 전해준 윤여정 배우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리라. 그게 나의 최고의 사치 이리라. 그래서 난 지금 사치를 하고 있는 거예요.”


나의 삶이 이렇게 사치스러울 수가 있나 싶습니다.

팍팍한 살림을 걱정하면서도 당장 일터로 나가 한 푼이라도 더 버는 대신 봉사를 선택한 나.

종교인들이 십일조를 내듯 사회에 십일조 내는 마음으로 봉사를 하는 나.

어느 날씨 좋은 봄날에 휴양림 한가운데 앉아 보석반지 끼고 한가로이 바람을 느끼는 나...


나의 삶이 이렇게 사치스러워서 다행입니다.

강의로 돈을 버는 시간만큼의 봉사를 하게 된 나.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일을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는 나.

몇 캐럿짜리 다이아몬드 반지가 아니라 보석반지 사탕 하나에도 감동받는 나.

앞으로도 한동안은 이 사치를 누리고 싶은 나.


지난 헌혈 이후 두 달이 지난 남편은 오늘 또 헌혈을 했다며 인증샷을 보내왔습니다.

"돈만 많았어봐. 피 말고 돈으로 기증했겠지."

"내 피는 코로나 슈퍼 면역 피라 전 세계 사람들에게 나눠줘야 해."

아내는 봉사로 사회에 기부하고 남편은 피를 나누고 있습니다.  

우리 부부, 이렇게 사치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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