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의와 토론에 대해서는 아이들도 정확하게 알고 있지요. '토의는 어떤 문제에 대하여 각자의 의견을 내고 협의하여 의견을 일치시키거나 결정을 하는 활동, 토론은 찬반으로 나뉘는 주제에 대하여 각자의 의견을 내세워 그것의 정당함을 논하되 의견의 일치나 결정은 하지 않는 활동'이라는 사전적 정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대답을 합니다. 의견을 나누는 과정인 토의와 상대를 설득하는 과정인 토론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어울려 대화를 완성한다고 이야기해줍니다.
디베이트에 대해서는 아는 학생들이 별로 없습니다.
토론보다는 순서와 형식을 좀 더 갖추고 각자의 역할이 정해진다고 설명해줍니다. 시간이 제한되어 있으니 주저리주저리 정돈되지 않은 말보다는 핵심적인 말만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근거를 들어 말하라고 하지요.
토론과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찬성, 반대의 입장을 자신의 신념대로 선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동전 던지기나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 팀은 '찬성/반대'와 '먼저 발언/나중 발언' 중 한 가지를 먼저 정할 수 있습니다. 진 팀은 나머지 하나에 대한 선택권을 받게 되지요. 예를 들어 이긴 팀이 찬성을 선택하면 진 팀은 자연스럽게 반대의 입장을 취해야 합니다. 대신 진 팀은 먼저 말할지 나중 말할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동전 던지기나 가위바위보에서 이겼던 팀은 진 팀이 선택하지 않은 발언 순서를 따르게 되지요.
'찬성, 반대의 입장을 자신의 신념대로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다소 충격적인 상황입니다. 평소 갖고 있던 신념을 버려야 하는 일이니까요. 어려운 주제라면 찬성이든 반대든 어차피 다 모른다며 상관없어 하지만 생활 밀착형 주제의 경우, 격렬히 저항하기도 합니다. 끝까지 입안문을 안 쓰고 버티는 아이도 있지요.
"선생님~ 찬성 측에도 반대 측으로 넘어오고 싶은 아이가 있는데요, 저랑 맞교환하면 안 되나요? 그러면 양 팀의 인원수가 맞잖아요."
이렇게까지 합리적인 방안을 제시하는 아이가 있으면 살짝 마음이 흔들립니다. '이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찬반 입장 하나도 못 정하게 한단 말인가. 어떻게 보면 이것도 폭력 아닐까?'라고 고민하다가 마음을 단단히 먹습니다. 그렇게 한 명의 소원을 들어주다 보면, 손가락 하나로 겨우 막고 있던 둑이 무너져 버리는 것은 순식간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저기서 '저도 바꿔주세요, 저도요~'라며 아우성을 치겠죠. 그러니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합니다.
"힘들죠? 자신의 마음과 다른 입장에서 말한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에요. 어떤 친구는 '내 마음의 반역'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렇게 찬반의 입장을 자신이 지지하는 입장이 아니라 정해진 입장에서 주장하도록 만은 이유가 뭘까요? '어디 한 번 힘들어봐라'라고 생각하며 여러분을 골탕 먹이려고 그러는 건 아니거든요. 왜 그런 장치를 해 놓았을까요?"
이렇게 물으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답을 이야기합니다.
"상대팀의 입장에서도 생각해보라고요~"
"그걸 4자 성어로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초성 힌트를 주자면 ㅇㅈㅅㅈ!"
"역지사지요~"
이렇게 모범적인, 답정너 대화가 이어집니다.
그런데 며칠 전, 4학년 교실에서 만난 아이는 생각지도 못한 답을 내놓았습니다.
"찬반의 입장을 자신이 지지하는 입장이 아니라 정해진 입장에서 주장하도록 만든 이유가 뭘까요?"라는 질문에 아이는 말했습니다.
"세상이 그렇게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요~"
"아... 그렇게 생각했군요? 그럴 수도 있겠어요. 하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요~ 각자 자기 마음대로 주장하다 보니 갈등이 생기는 거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 토의, 토론, 디베이트가 필요한 거지요."
"그 애가 우리보다 낫네. 벌써 세상 이치에 통달했다니."
세상은 정말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게 없는 걸까요?
세상은 생각보다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을까요?
많은 고민을 던져준 4학년 아이가, 그날의 스승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