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9시부터 12시 10분까지 이틀 연속 수업을 하니 목은 맛이 가고 피로가 몰려왔지만 마음은 가득해졌습니다. 학교의 냄새를 맡았다는 것도 좋았지만 아이들을 만났다는 것, 그들에게 또 한 수 배웠다는 것이 즐거웠지요.
올해 준비한 12개의 주제 중에는 학교에서 요구한 도서도 몇 권 포함돼 있습니다. 그중 < 수상한 아이가 전학 왔다 >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동화가 한 권 있습니다.
방한모를 쓰고 등장한 전학생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는 4학년 2반 아이들의 일주일을 그린 이야기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방한모를 벗지 않는 아이를 향한 호기심을 차별, 따돌림으로 연결하지 않은 반 아이들의 따뜻함을 엿볼 수 있었죠.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반 아이들 모두가 방한모를 쓰고 등교하는 장면은 뇌종양을 앓고 있는 친구를 위해 반 아이들 모두가 삭발을 했다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다름을 이해하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책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여러 질문을 던졌습니다.
"4학년 2반 아이들은 왜 모두 방한모를 쓰고 등교했나요?"는 이 책의 중심가치를 알리기 위한 핵심 질문이었죠.
- 방한모를 쓰고 등교하는 토미가 더 이상 외롭게 느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 있는 그대로의 토미를 받아들이고 평등한 관계가 되기 위해서
등등의 모범 답안을 정해놓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습니다.
"4학년 2반 학생들이 모두 방한모를 쓰고 등교한 이유는 토미를 위해서가 아니에요. 결국 토미의 방한모를 벗기기 위한 마지막 방법이었던 것 같아요."
한 학생이 발표한 의외의 답변에 당황한 저는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다시 물었습니다.
"이솝우화 중에 '해님과 바람'이야기가 생각났어요. 바람은 나그네의 옷을 벗기지 못했지만 따뜻함을 전한 해님이 결국 나그네의 옷을 벗기잖아요. 이 동화 속 아이들도 마찬가지 같아요. 자신들이 모두 방한모를 써서 토미와 친해지면 토미가 안심하고 결국 방한모를 벗을 거라고 생각한 거죠."
누군가의 행동에는 우리가 모르는 다양한 이유와 맥락이 존재할 수 있다는 깨달음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습니다. '얘네들 뭐지? 어떻게 저런 기발한 생각을 할 수가 있지?' 하며 감탄을 했고 아이들을 향한 찬사를 입 밖으로 쏟아냈습니다.
이와 비슷한 경험은 또 있었습니다.
논리적인 말하기, 글쓰기를 하기 위해서는 주장과 근거를 잘 파악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쉬운 예를 하나 들어주었을 때였죠.
"저 음식점은 맛이 아주 좋은가 봐. 늘 손님이 저렇게 줄을 서 있잖아."라고 말했을 때, 주장은 무엇이고 근거는 무엇인가요? - 주장 : 저 음식점은 맛이 아주 좋다. - 근거 : 늘 손님이 줄을 서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오래 이야기를 할 내용이 아니라고 생각했지요. '일상의 대화에서도 주장과 근거를 파악하자'는 정도만 전하고 넘어가려고 했습니다. 그때 한 아이가 말했습니다.
"꼭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새로 생긴 음식점이어서 사람이 많을 수도 있잖아요."
그러자 아이들이 줄줄이 이어 말했습니다.
"TV에 나온 집일 수도 있어요."
"주변에 식당이 저기밖에 없을 수도 있어요."
"값이 싸서 그럴지도 모르지요."
디베이트를 하게 되면 비판적 사고를 함양할 수 있다고 떠든 저에게 아이들은 '이런 게 비판적 사고죠?'라며 직접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수동적으로 앉아 수업을 듣는 게 아니라, 수업의 주인이 되어 제게 방향을 잡아준 것입니다.
이후에 들어간 다른 반 수업부터 저는 아예 이 화면에서 한참을 머물러 있었습니다. 예시로 든 주장과 근거의 문제점을 파악해보라고, 비판적 사고를 해보라고 주문을 한 것이죠. 제 수업은 아이들 덕분에 생물처럼 진화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교육자원봉사로 혹은 교과시간에 토론 수업을 하러 학교에 갑니다. 다양한 주제를 들고 아이들을 만나 토론을 가르치고, 나와 세상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비판적 사고를 가질 것을 전합니다.
동시에, 반짝이고 말랑말랑하며 무궁무진한 가능성으로 가득한 아이들의 생각을 배우러 갑니다. 얼어붙은 제 생각을 내리치는 도끼와 같은 아이들이, 제 선생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