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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Aug 01. 2023

어그로가 없는 글

"당신 글에는 어그로가 없어. 어그로를 끌어야 화제가 되고 인기가 많아지는 것 아냐?"

남편이 종종 하는 말입니다.  저의 글엔 삶의 지축을 흔드는 파격적인 사건, 사고가 없다는 것입니다. 저의 일상은 너무 평범해서, 다른 사람들의 그것과 다를 것이 너무 없어서 화제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죠. 침체된 저의 브런치 글쓰기 생활을 걱정하는 마음에서 나온 말임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괜한 반감이 일곤 합니다.


영어 단어 aggravation에서 왔다는 어그로라는 말은 게임 용어입니다. 상대를 도발하거나 약 올린다는 뜻인데, 대부분의 신조어가 그러하듯 이 단어에도 다양한 용례가 있습니다.

- 다른 팀원들이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적군을 약 올려 자신에게 공격력이 몰리게 함. 일명 희생 플레이.

- 부정적인 이슈로 관심을 모으는 것. 일명 관종짓.

- 소비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거짓, 과장된 내용을 내세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과장되고 자극적인 내용만큼 신속하고 효과적인 것은 없습니다. 일단 관심을 받아야 전하고자 하는 말도 전할 수 있고 뜻한 바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유튜브 썸네일과 제목이 실제 영상 내용과 다른 이유입니다.



브런치 작가들은 어떨까요? 어그로를 끌려고 안달이 나 있을까요?

브런치 메인에 올라오는 '요즘 뜨는 브런치북'이나 다음 피드를 타고 인기를 끄는 글 대부분이 이혼, 시댁, 퇴사, 아내, 편, 음식 관련 글이라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들리고는 합니다. 하지만 그건 어그로를 끌려는 것이 아님을 압니다. 브런치는 누군가의 관심을 끌기 위해 글을 쓰는 곳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아니, 누군가의 관심을 끌어 이익을 도모하고 싶다면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선택할 이유가 없습니다. 많은 이들이 읽어주면 감사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글을 더 이상 쓰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브런치는 결핍을 노래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혼, 시댁, 퇴사, 음식 이야기가 넘쳐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입니다.

자신이 겪었던 아픔, 슬픔, 외로움, 괴로움을 글에 담습니다. 자기 눈에 보이는 타인의 그것들도 글에 담습니다. 기쁘고 행복한 순간들도 글에 담아 나누지만 자신이 가진 그늘도 글에 담습니다. 아닌 척 해도 글에서 다 드러나고 서로 알아봐 줍니다. 결핍 공동체. 글로 결핍을 해소하기로 결정한 사람들의 집합.


그러니 브런치에서는 어그로를 끌 필요가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귀신같이 알아보니까. 내가 쓴 글이 어느 누군가 한 명에게만 가 닿아도 만족하는 사람들이 모였으니까.

제목이 없어도, 대문 사진이 없어도, 글이 짧아도, 혹은 길어도 상관없습니다. 그저 쓰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사람들이 모였으니까...


그러니 남편의 말에 흔들리지 말고 그저, 다시, 계속...

써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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