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글은, 팔불출 같은 자식 자랑이 상당 부분 포함되어있습니다. 아니, 전부입니다. 벌써부터 불편하신 분은 읽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고3이 된 아이 담임선생님과의 상담이 있었습니다. 코로나 이후 처음으로 갖는 대면상담, 본격적인 입시 시작을 알리는 자리였지요. 자주 가던 학교가 생경하게 느껴진 이유입니다.
반갑게 맞아주시던 선생님의 첫마디는 "어머님은 고민하실 게 하나도 없습니다."였습니다.
선생님들 사이에서 OO 이는 '본인은 가만히 있는데 유명한 아이'로 불린다고 했습니다.
1교시부터 마지막 교시까지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수업을 듣는다고 했지요. 분명히 다 아는 내용일 텐데 처음 듣는 아이처럼 선생님과 칠판을 뚫어지게 쳐다본다고 했습니다. 교무실에 모인 선생님들은 아이를, '수업을 열심히 들어주는, 요즘 보기 드문 고마운 학생'이라며 칭찬했다고 합니다.
"어머니, OO 이는 몇 시에 자요?"
"OO 이는 거의 매일 12시 전에는 꼭 자요. 하루에 7,8시간을 자야 학교에서 졸리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수행 준비 같은 건 언제 해요?"
"학원 가지 않는 날 미리 해두기도 하고 다 못한 날은 조금 늦게 자기도 하지만 거의 11시 반에 자서 7시 반에 일어나요."
"수업시간에 집중할 수 있는 비결이군요? 그렇게 막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그에 비해 성적은 잘 나와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수업시간에 잘 들어서 그런가 보네요."
"요즘 OO이 친한 친구들을 비롯해서, 정시 준비하는 아이들은 가정학습 내고 등교를 안 하는 분위기예요. 그래서 OO 이를 걱정했지요. 동요할까 봐요."
"네~ 얘기하더라고요. 자기는 2학기 때도 수능 전까지 등교할 거래요. 아침 일찍 학교에 가서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루틴을 지킬 거라고요."
"와. 진짜요? 2학기 때는 학교 오는 애들 별로 없는데. 특히 OO 이처럼 수시 준비하는 학생들은 수능 최저만 맞추면 된다고 생각해서 더 그렇거든요."
담임선생님은 OO 이를 '아무것도 안 하는 줄 알았던 아이'라고 했습니다.
올 초 아이와 했던 첫 상담 때 목표 대학을 들으실 때만 해도 고개를 갸우뚱하셨다고 하더군요. '성적은 그렇다 쳐도 별다른 비교과 활동은 안 했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하셨답니다. 워낙 조용하고 소극적으로 보였다고 말이죠. 그러다 생기부를 열람하고는 깜짝 놀랐다고 했습니다. 대회 수상도 제법 있고 과목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도 꼼꼼하게 잘 채워져 있다고 말이죠.
"어머니. 사실 OO 이는 수업시간에 적극적으로 질문하거나 나서지는 않아요. 그런데 친구들이 아무도 대답을 안 하면 그제야 한마디 거들더라고요."
"맞아요, 선생님. OO 이는 먼저 나서는 걸 끔찍이 싫어해요. 나댄다고 생각하고, 속된 말로 가와가 안 선다고 여기더라고요."
"그 표현이 딱 맞아요. 애들 중에는 선생님에게 잘 보이려고 눈에 띄게 나서는 애들이 있거든요. 과목별 선생님에게 세특을 잘 받아야 하니까요. 그런데 OO 이는 너무 가만히 있어서 속상할 때도 있어요. 그런데 생기부를 보고 깜짝 놀랐죠. 과목마다 잘 써져있더라고요. 참 신기한 애예요"
"집에서도 늘 누워있고 공부도 가끔 해요. 인강도 누워서 들어요."
"상위권 애들 보면 쉬는 시간에 무섭게 공부하거든요. 그런 걸 보고 자극을 좀 받았으면 좋겠는데, OO 이는 맨날 다른 반 가서 수다 떨고 있어요. 성적이랑 행동이 매칭이 안 되는 애예요."
"그것도 비슷한 맥락 같아요, 선생님. 막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멋지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슬렁슬렁하는데도 이 정도라는 걸 보여주고 싶달까요? 독특하죠?"
선생님은, '청소를 그렇게 열심히 하는 고3'은 처음 보신다고 했습니다.
학교 청소를 해주는 분들이 따로 계시기 때문에 학생들의 청소는 형식적인 것인데도 불구하고, '뭘 저렇게까지...'라고 생각할 정도로 박박 걸레질을 하더랍니다.
"사실, 대충 해도 되거든요? 다른 애들은 학원 시간 늦는다고 후딱 하고 가는데 OO 이는 헉헉거리면서 대걸레질을 얼마나 열심히 하던지..."
"약간, FM인 성향이 있지요. 고지식하고..."
"그런데 또 가끔 그런 것 같지도 않아요. 이번에 졸업앨범 촬영할 때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하고 나타나서 너무 웃겼거든요."
"어렸을 때는 춤도 잘 추고 애교도 많았는데 자라면서 바뀌더라고요. 그런데 아직 끼가 남아있나 봐요. 하하. 주목받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상담이 끝날 때 선생님께서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은, 'OO이의 입시결과를 만족스럽게 내고 싶다는 부담감이 생겨요.'였습니다. '부모로서 더 이상 무엇을 바랄 수 있나' 하는 뿌듯한 마음이 가득 찼습니다. 성적보다 아이 자체를 봐준 선생님들이 많다는 것, 성실한 자에게 그만큼의 보상이 따랐으면 좋겠다는 선생님의 마음이 참 감사했습니다. 성적이 우수하다는 것보다 성실하다는 것이 이렇게 감동을 주는 일이구나...
등급이 나오지 않는 음악, 미술, 체육 시간에도 열심히 수업을 듣고 하루 종일 절대 졸지 않는 것으로 선생님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차리는 학생에게는 진심으로 그의 성공을 기원하는 선생님들이 계셨습니다.
우직하게 성실한 아이와 그 아이의 진심을 알아주시는 선생님들의 행복한 콜라보.
올 한 해가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