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만 참아... 곧 끝나...

by 늘봄유정

"이젠 토 나올 것 같아. 아이디어도 전혀 안 떠올라. 머리가 멈췄어. 이제 정말 그만하고 싶어."

물리과목 발표 준비를 하느라 컴퓨터 앞에 세 시간 넘게 앉아 있던 작은아이가 탈출하듯 방 밖으로 나와 쏟아낸 말입니다. 과목마다 쏟아지는 수행평가와 발표를 준비하느라 학원도 빠진 날이었죠. 대입에 반영되는 3학년 1학기 성적과 생기부 세특(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을 위해 기말고사를 앞두고 마지막 전투가 시작된 것이었습니다.


아이는, 수능 성적으로 대학을 가는 정시 대신 내신성적을 기본으로 지원하는 수시를 선택했습니다. 그러니 수업시간에 행해지는 크고 작은 수행에도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고 등급에 연연할 수밖에 없죠. 그렇다고 수능이라는 카드를 버릴 수도 없습니다. 수시 전형 중에는 대학에서 정한 수능 최저등급을 맞춰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죠. 게다가 수시에 불합격하면 마지막 남은 카드는 정시. 그러니 지난 6월 9일에 실시된 모의고사 점수에 흔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의고사 당일 아침, 아이는 "시험 끝나고 친구들이랑 밥 먹기로 해서 늦어요~"라며 신나게 집을 나섰습니다. 누가 보면 소풍날인 줄 알듯 말이죠. 당연히 늦게 귀가할 줄 알았던 아이는 시험이 끝나고 바로 귀가했고 그 길로 침대에 누워 꼼짝도 안 했습니다. 보통 모의고사가 끝난 날은 집에 오자마자 채점을 하고 입시기관마다 내놓는 예상 등급컷을 보며 들뜨곤 했는데, 이번에는 국어, 수학, 영어까지만 채점을 하고 탐구과목과 한국사 시험지는 아무렇게나 던져놓았더군요.


"밤새 모기에 시달리느라 잠을 설쳐서 그랬나 봐. 나쁜 모기 새끼."

"하필 오늘 손목시계 약이 떨어질 게 뭐야! 에잇!"

남편은 탐탁지 않은 모의고사 점수가 절대 작은아이 때문이 아니라는 듯이 비난의 대상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 속상한 마음을 아이 몰래, 제 귀에만 대고 투덜거렸죠.

모의고사 하나에 온 식구의 마음이 착잡해지는, 수험 생활이 본격화됐음을 실감했습니다.



"급똥 마려울 때 집이 가까워질수록 더 참기 힘들어지는 거랑 같은 걸까? 히히"

수행 때문에 토 나올 것 같다며 제 앞에 엎어진 아이에게 농담을 던졌습니다. 이내 아이는 "그런 거지~ 2학년 때까지는 괜찮았는데 이제는 한계치에 임박한 거지."라며 낄낄거립니다.

휴대폰 바탕화면의 달력을 보여주며 날짜를 세어주었습니다.

"이제 기말고사까지 딱 18일 남았네. 3주만 버티자. 곧 끝나... 입시가 완전히 끝난다고는 말 못 하지만..."


'3주만 있으면 끝납니다. 집이 저 앞에 보입니다. 적당한 온기를 품고 비데까지 설치된 변기가 기다립니다. 괄약근에 조금만 더 힘을 주고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가기를...
한순간이라도 긴장을 늦추는 순간 돌이킬 수 없는 참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유념하기를...'

차마 작은 아이에게는 전하지 못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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