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집안에 버터향이 가득합니다.
오븐과 에어 프라이어, 두 곳에서 쿠기가 구워지고 있기 때문이죠.
땀이 줄줄 흐르지만 쿠키 굽기를 그만둘 수 없습니다. 극강의 단맛을 찾는 고3 아들을 위한 일이니까요.
얼마 전부터 작은 아들은 어린아이 손바닥만 한 쿠키를 하루에 4,5개씩 먹기 시작했습니다. 코스트코, 트레이더스 박스 쿠키 두 통이 비어갈 무렵, 직접 구워주어야겠다고 결심했죠. 어차피 먹을 거라면 첨가물 가득한 쿠키보다는 엄마표 수제쿠키가 낫지 않겠나 싶어서였죠. 인터넷에서 가장 간단하게 만드는 레시피를 찾아 만들기를 수차례. 처음엔 계량을 잘 못해 짭짤한 쿠키가, 그다음엔 계란을 깜빡해서 딱딱한 쿠키가 탄생했고 결국 세 번 만에 성공을 했지요. 뇌에 좋은 견과류와 달달한 초콜릿 칩 잔뜩 넣은, 아이가 좋아하는 쫀득한 쿠키를 완성했습니다. 아이는 아침에 눈뜨자마자 하나, 오며 가며 수시로, 잠들기 전에 하나, 맛있게 먹어주고 있습니다.
수험생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따뜻하고 영양가 높은 끼니를 챙겨주는 것과 스트레스 받지 않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 스트레스 받더라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마음밭을 다져주는 것, 이 정도죠. 공부를 대신해줄 수도 없고 자소서를 대신 써줄 수도 없습니다. 하루 종일 한 줄도 못쓰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더라도 그저 과일 한 접시를 가져다주며 등을 두드려줄 뿐입니다.
"자소서, 자기가 대신 써줘~ 그 시간에 수능 공부시켜야지~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 애를..."
이렇게 얘기하는 이도 있지만 아이도 저도 내키지 않습니다. 남이 써준 자소서로 무슨 면접을 볼 것이며, 자신의 고등학교 생활을 대학 진로에 맞게 정리하는 시간은 꽤 의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나 몰라라 하며 무관심할 수는 없어서 슬쩍슬쩍 한 마디씩을 던집니다.
"이 문장 다음에 더 자세한 내용이 들어가면 좋겠는데?"
"수업시간에 발표했던 걸 이것과 연결시켜서 쓰면 어때?"
그러면 아이는 속도를 내서 또 한 문장을 쓰기 시작하죠. 그렇게 더딘 하루하루를 보내는 고3의 여름방학입니다.
고등학교 학부모 독서모임은 늘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됩니다. 주로 성토대회죠. 학기말 성적표가 나왔던 지난달 모임은 더 시끄러웠습니다. 성적표를 받고 울었다는 아이, 정신 못 차리고 게임만 한다는 아이, 성적은 그 모양인데 워터파크에 놀라갔다는 아이... 엄마들은 저마다 아이와 겪고 있는 갈등을 이야기했지요. 그러면서 각자만의 갈등 해결 노하우를 풀어놓았습니다. 가장 화제가 되었던 노하우는 '폐인데이'였습니다.
"저는 시험이 끝나면 폐인데이를 줘요. 주말 내내 폐인처럼 살아도 터치하지 않는 거지요. 게임을 하며 밤을 새든 종일 TV를 보든요."
"와~ 너무 좋은데요? 스트레스가 확 풀리겠어요. 이름도 너무 마음에 들어요. 폐인데이. 제목에서부터 인정한다는 느낌이 확 들어요."
제가 풀어놓은 노하우는 "어쩌냐..."입니다.
아이가 학교 숙제가 많다고 툴툴거려도,
"어쩌냐..."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고 우울해해도,
"어쩌냐..."
우리나라의 입시제도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해도,
"어쩌냐..."
이 세상이 다 썩었다며 소파에 널브러져도,
"어쩌냐..."
심드렁하게 기계적으로 "어쩌냐..." 해서는 안됩니다. 설거지하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쩌냐..." 해서도 안돼요. 진심으로 고민하는 표정이어야 하고요, 눈은 아이를 바라보고 있어야 합니다.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방법을 검색해보기라도 해야 하고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아이 마음 속 가득 차올랐던 짜증과 속상함이 조금씩 가라앉더라고요.
"숙제는 너만 하니? 공부는 하고 성적 걱정하는 거니? 바꿀 수 없는 입시제도 탓하지 말고 그 시간에 공부나 해! 공부 열심히 해서 썩은 세상 바꾸는 훌륭한 사람이 되어볼 생각은 안 하고 원. 쯧쯧!" 하시면 안 돼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됩니다. 방문 쾅 닫고 들어가 다시는 입을 열지 않을지도 몰라요.
며칠째 컴퓨터 앞에 앉아 자소서가 써지지 않는다고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종일 패드로 게임을 하는 아이가 보인다면, 쓱 지나가면서 말해보세요.
"잘 안 써져? 어쩌냐... 대학 홈페이지에 가서 선배들이 써놓은 합격 후기랑 자소서를 한 번 보는 건 어때? 전공이 다르니 내용도 다르겠지만 어떤 흐름으로 쓰는지 감은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말하고 조용히 돌아 나와 쿠키를 구워요. 일명 어쩌냐 쿠키...
엄마가 해줄 수 있는 건 쿠키밖에 없지만 늘 뒤에서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어쩌냐 쿠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