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굳이...

by 늘봄유정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돼? 아... 진짜... 싫다."

고3 작은 아이의 이 말이 분명 저를 향한 게 아님을 압니다. 삐뚤어진 입시제도를 향한 분노와 그 안에서 몸부림칠 수밖에 없는 이 땅의 모든 수험생들에 대한 연민이 담긴 말이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굳이', '싫다'에 꽂혀 입이 댓 발 나와버린 엄마입니다.


'굳이'의 발단은 담임선생님과의 수시 원서 상담이었습니다.

개학하자마자 아이와 몇 차례의 상담을 한 선생님은 저와 문자, 전화통화를 주고받으며 신경을 써주셨지요. 며칠 전에는, 8월 31일에 있을 9월 모의고사 전에 학교와 학과, 전형을 정해놓자는 선생님의 말씀에 학교로 향했습니다. 아이, 학부모, 선생님, 이렇게 셋이 모여 아이의 생기부를 보며 적나라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지요.


"OO 이는 수업시간에 손도 안 들어요. 선생님들이 시키면 그제야 발표도 하고 보고서도 내지만 먼저 나서서 뭘 하는 법은 없어요. 그런데도 과목마다 세특을 이렇게 잘 써주신 건 수업태도도 좋고 해야 할 건 열심히 해서 그래요. 수업시간에 졸지 않고 열심히 들으니까요. 그런데 자율 활동이나 진로활동이 조금 부족해요. 그래서 생기부 마감전에 뭐라도 만들고 써서 들고 오라고 했는데, 그걸 안 하네요. 적극적인 여학생들은 요즘에도 매일 뭘 들고 와요. 생기부 마감 전까지 한 줄이라도 더 써달라, 고쳐달라 요구를 하지요. OO 이는 그게 너무 싫다는 거예요. 남자애들 특징이긴 하지요.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은 거요. 그런데 OO아~ 지금은 그 귀찮고 모냥빠지는 일을 굳이 해야 하는 타이밍이야~"

선생님은 정말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이야기하셨고 저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참 감사한 마음뿐이었습니다.


때까지 저는, 미처 아이의 마음은 살피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생기부를 탈탈 털어가며 엄마와 선생님이 나누는 대화가 아이에게 마냥 편안한 대화는 아니었을 겁니다. 홀딱 발가벗겨진 몸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아래위로 훑어보고 당사자가 듣건 말건 품평을 하는 상황에 놓인 아이는 수치스러웠을 겁니다. 부족했던 것, 아쉬웠던 것만 이야기했으니 비난의 화살 수십 개가 꽂히는 기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비약하자면, 노예시장에서 인권이 유린당했던 노예와 같은 심정이 아니었을까...

입시시장에 내몰려 오직 숫자와 타인의 평가로만 얼룩진 생기부를 들고 인간성 따위는 말살당한 수험생.

처참하고 굴욕적이지만 끝내 버텨야 하는 현실.

그럼에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 꿈.

이들을 헤아리지 못한 저는 그날 밤 아이에게 '생기부에 추가하면 좋을만한 아이템' 여러 개를 소개했고, 아이는 말했던 겁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돼? 아... 진짜... 싫다. 이래서 내가 1학년 때 자퇴하고 정시만 준비하려고 했던 건데. 이런 상황이 올 줄 알았는데... 지금이라도 그냥 정시 준비해야겠어."


아이의 생기부에는 아이의 2년 반이 고스란히 녹아있습니다. 투덜거리면서도 열심히 살았지요. 모든 과목마다 세특(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에 "항상 흔들림 없이 바른 자세와 모범적인 태도로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하며"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습니다. 남학생치고는 학교 활동을 열심히 한편이라 내용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과 엄마의 눈에는 2%가 부족했지요. 흔히 말하는 간절함이 없었던 겁니다. 당연했죠. 간절히 원하는 바가 없는데 간절함이 드러날 리가 없었습니다.


얼마만큼을 더 채우고 다듬어야 아이를 '증명'할 수 있을까요.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없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은 선생님과 엄마.

굳이 그렇게까지 해서 없는 것을 증명하고 싶지는 않은 이의 싸움은 어떻게 결말을 내야 할까요.

굳이 [굳이]
1. 단단한 마음으로 굳게.
2. 고집을 부려 구태여.


'어두운 밤 망망대해에 떠 있는 배를 위해 가야 할 곳을 환하게 비춰주는 등대가 되어주고 싶었는데.... 그러나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르는 배에게는 등대도 소용없구나. 굳이 움직이지 않으려는 배에게 등대가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스스로를 등대라 여기던 저는 살짝 심사가 꼬였지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표류하는 배의 심정이란, 어떤 것일까요.

수험생의 엄마는 종일 이 생각만 합니다. 종일 입을 다물고 앉아 애먼 노트북만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말은 아낍니다. 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어떤 말도 소용이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침묵하는 엄마의 눈치를 보던 아이가 식탁에 앉습니다. 종일 노트북 앞에 앉아 자기 일만 하고 있는 척하는 저의 맞은편에 말이죠. 문제집 하나를 펼치더니 공부를 시작합니다. 우연히 엄마와 눈이 마주치니 "나 오늘 학교에서 하루 종일 국어 공부했다?"라며 생뚱맞은 이야기를 던집니다.

그 모습이 참, 서글픕니다.

미안합니다.


굳이 등대가 되어주어야겠습니다.

등대 본연의 역할은, '여긴 위험한 장애물이 있으니 이쪽으로는 오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이라더군요. 그런 등대가 되어야겠습니다. 가고자 하는 길 편하라고 빛을 비춰주는 등대 말고, 이쪽 말고 저쪽으로 가보라는 등대요.


등대 근처에만 머물지 말고 등대 불빛 대신 달빛 보며 조금씩 움직여보세요.

그러면 새 길이 보이고 다른 등대도 보일 거예요.

그 등대 곁에서도 잠시 쉬세요.

그리고 또 길을 나서요.

굳이 그렇게 사는 게 인생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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