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준비한 면접 컨설팅을 다녀온 아들의 표정이 어두웠습니다.
종이를 한 묶음 들고 차에 타는 아이에게 일단 달달한 스트로베리 초코 프라페부터 건넸지요. 그런 비싼 음료를 준비해놓았다는 건,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던 시나리오였다는 얘기입니다.
아들이 쓴 수시 원서는 학교장 추천 교과 전형 두 개, 학교장 추천 학생부 종합전형 한 개, 학생부 종합전형 한 개로 총 네 개입니다. 그중 구술시험에 해당하는 제시문 면접이 두 군데, 생기부 기반 면접이 한 군데지요. 학교에서는 면접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해 외부 전문가 컨설팅을 마련해주었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컨설팅을 통해 도움을 받으려면 미리 준비를 하는 게 필수였죠. 생기부를 꼼꼼히 분석하고 예상 질문을 뽑아 답변까지 준비한다면 더할 나위 없었을 겁니다. 그게 힘들다면 생기부라도 들여다보고 가는 게 좋았죠. 하지만 수능을 40여 일 앞둔 아이에게는 그럴 경황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면접관들의 눈에 아이는 '아무 준비 없이 쭐레쭐레' 온 학생에 지나지 않았죠.
"어땠어?"
조심스레 묻는 고3 학부모에게 까칠한 고3이 대답했습니다.
"준비가 전혀 안 되어있고 의욕이 없고 텐션이 낮대. 뭘 원하는지 모르겠고 솔직히 실망이래. 앞에 두 학생에게는 칭찬을 해줬지만 나한테는 따끔하게 얘기해주겠대. 학교의 얼굴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이것밖에 준비 안 했다는 게 실망이고 그리고..."
"그리고?"
"아... 'ㅅ'자 들어가는 어떤 단어를 말했는데 그게 생각이 안 나네?"
"순수? 하하"
"아니? 긍정적인 단어는 아니었어."
"생각나면 말해줘. 그나저나, 텐션은 어떻게 끌어올려야 할까? 너는 워낙 말도 느리게 하고 목소리에도 힘이 없잖아. 면접장에서는 그러면 안돼. 그날만큼은 평소 선비처럼 행동하는 네 모습을 바꾸어야 한다고. 목소리도 도레미파솔~~ 솔에 맞추고 크고 또렷한 목소리를 내야 해. 누가 봐도 그 학교 그 학과에 가고 싶어 하는 간절함을 드러내야 한다고."
"어떻게 해야 텐션이 올라오냐... 술이라도 마셔봐야 하나? 푸하하하"
"면접 가서 그러려고? 교수님~ 꺽! 제가요~ 꺽! 기분이 너~~ 무 좋아서 한 잔 마셨걸랑요? 꺽!"
준비 부족으로 구체적인 도움은 못 받았지만 아들은 자신에게 지금 무엇이 부족하고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 수 있는 자극을 충분히 받은 듯했습니다. 적극적으로 먼저 나서서 구하는 것을 나대는 것이라 생각하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면 결국은 세상이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하던 본인의 신념이 입시에서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입으로는 자꾸 잔소리가 새어 나갔지요.
"실제 면접 가서는 오버라도 좀 해. 미리미리 생기부 보면서 질문도 만들고 답변 준비도 하고. 진짜 대학을 가고 싶기는 한 거지? 그렇다면 그 마음을 보여야 돼. 아무 말 안 하면 아무도 모른단 말이야."
듣다 못한 아이가 한마디 하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도대체 더 이상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아차 싶었지만 이미 온 집안에 제 잔소리가 둥둥 떠다니고 있더군요. 면접을 통해 자극은 제대로 받았지만 머릿속은 복잡해진 아들을 살피지 못한 제가 못마땅해졌죠. 최저등급을 맞추기 위해 수능 공부에 매진하고 있고 사설 모의고사를 다 풀었다며 새로운 문제집을 주문해달라는 아들에게 엄마는 '이것도, 이것도' 하며 솟구치는 조바심을 투명하게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아들아~ 뭐해? 심난하겠지만 천천히 하나하나 준비하자. 일단 다음 주에 있는 oo대 면접 잘 보고, 그다음 주에 중간고사 끝나면 수능 준비하고, 수능 끝나면 일단 게임을 실컷 한 뒤, 본격적으로 면접 준비를 하면 되지. 어때?"
"그랴..."
분위기를 서둘러 수습한 고3 엄마와 금세 너그러워진 고3 아들입니다.
고3 아들의 자서전을 쓰면서 매일 아이들 어렸을 때 동영상을 봅니다. 초등학교 1학년 운동회 때 신랑각시 춤을 추는 영상이 있는데, 영상 속 아들의 표정이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는 표정이더군요. 지금의 아이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불만스러워하는 제게 영상을 함께 본 동네 친구가 말하기를,
"네 눈엔 아들의 표정만 보이지? 몸을 봐라. 누구보다 절도 있게 제대로 추고 있잖냐. 동작도 하나 안 틀리고 얼마나 열심히 추고 있냐. 표정은 무성의해 보여도 몸은 가장 성실해. 그러니 아들을 믿어."
아들이 면접관에게 들었다던 'ㅅ'이 들어가는 단어는 무성의였습니다.
무성의(無誠意) : 성의가 없다.
성의(誠意) : 정성스러운 뜻
면접관에게는 보이지 않던 아들의 정성이 이제 제게는 보입니다. 간절한 마음도 보입니다. 어떻게 해야 자신의 간절함과 정성스러운 마음이 보일지 구체적인 방법을 모를 뿐입니다. 그 표현법을 알아가는 과정이 입시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성의란, 내 안의 간절함과 정성을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는 상태라고 정의하렵니다. 방법을 찾은 아들이 실제 면접관 앞에서는 성의를 보이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 대문 사진은, 이불을 뒤집어 쓰고 집을 돌아다니며 이상한 소리를 내는 고3 아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