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둘째가 원서를 낸 학교의 구술면접이 있었습니다.
12시부터 12시 30분까지 입실이라 9시에 집을 나섰습니다. 일찍 도착해 밥도 먹고 캠퍼스도 거닐다가 여유롭게 들어가기 위함이었죠. 10시 반에 도착해 밥도 먹고 음료도 마셨는데도 11시 30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면접 장소인 건물 앞에는 면접 대상자의 수험번호와 퇴실 예정시각이 적혀 있었습니다.
"헐. 나 왜 5시 퇴실이야? 하필 왜 제일 마지막 순번이지? 너무하네... 어떻게 다섯 시간을 기다려?"
아이의 면접은 가장 마지막 순번이었습니다.
"기다리기 힘들겠지만, 어쩌겠냐. 학원에서 풀었던 문제라도 보면서 기다려야지. 챙겨 왔지?"
아들은 맨손, 맨몸이었습니다. 점퍼의 왼쪽 주머니에는 신분증을 오른쪽 주머니에는 볼펜 한 자루와 샤프 한 자루를 들고 왔지요.
"가방도 안 메고 온 거야? 그렇게, 그냥 온 거야?"
"그런 게 왜 필요해. 직전에 뭘 본다고 그게 나오는 것도 아닌데. 이런 건 평소 실력으로 푸는 거야."
"아니... 그건 그렇지만.... 다섯 시간 동안 멍 때리고 있을 수는 없잖아. 휴대폰도 수거한다는데..."
"하.... 난감하다..."
우리에게 면접은 이미 걱정거리가 아니었습니다. 입실과 동시에 주어질 다섯 시간의 공백을 무엇으로 채울지가 최대 현안이었죠. 그때, 대기하는 동안 제가 읽으려고 가져온 책 한 권이 떠올랐습니다.
"이거라도 갖고 들어가.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니?"
"월든? 아... 나 이거 초반에 읽다가 포기한 책인데."
아들은 탐탁지 않아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다섯 시간보다야 낫다는 생각에 책을 받아 들었습니다.
드디어 건물의 문이 열리고 면접자들의 입장이 시작됐습니다. 긴 대열의 끝자락에 서서 터덜터덜 들어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는데, 어찌나 웃기던지요. 모두 커다란 배낭 하나씩을 메고 초조하게 들어가는 와중, 가뿐한 몸으로 수험표와 <월든> 책 한 권을 갖고 들어가는 수험생 한 명. 모르는 학생이었다면 '쟤는 뭐지? 저 책은 무슨 책이지?'라고 생각하며 괴짜라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정확히 다섯 시가 되어 면접을 마치고 나온 아이의 표정은 밝았습니다.
"면접 문제가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던데? 우리 반에 84명이 앉았는데 내가 83번째였어. 월든은 4장까지 읽었어. 문장이 좀 어렵긴 하더라..."
아들에게 책을 양보한 저는 카카오 사태로 브런치도 못하고 멍하니 시간을 죽여야 했습니다. 독서 모임 책이었던 <월든>의 완독도 포기해야 했지요. 하지만 면접 마지막 순서로 다섯 시간 동안 무료함을 견뎌야 했을 아들에게 책을 양보한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루 반동 안 브런치가 멈췄습니다. "열려라 참깨"를 아무리 외쳐도 꿈쩍도 않는 브런치 문 앞에서 망연자실 기약 없는 대기를 타야 했습니다. 미처 백업하지 못한 몇 개의 글이 아른거렸고 브런치 창이 아니면 글을 쓰지 못하는 고약한 습관이 원망스러웠습니다. 브런치가 신기루같이 느껴지기까지 했습니다.
종국에 남는 것은 내 손에 쥘 수 있는 책 한 권인 걸까, 종이 냄새를 맡으며 사르락 페이지를 넘길 수 있는 실물의 진가가 이렇게 드러나는 걸까, 난 지금까지 어떤 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
브런치의 고요 앞에서 머릿속이 시끄러웠습니다.
브런치 문이 열리길 기다리면서 책장을 넘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