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쪼아야 제맛

by 늘봄유정

수능이 끝난 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유난히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그동안 김장을 두 번이나 했고 독서모임, 수업, 친정 생일 모임, 아버님 성묘, 친구들 모임 등을 했습니다. 그렇게 바빴던 것 같지는 않은데 이상하게 정신이 없던 며칠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말년 병장 아들은 2주간 휴가를 나왔습니다. 남은 기간 계속 휴가를 나올 거라고 하니 거의 제대한 거나 다름없지요.


휴가 첫날 가족이 모여 점심을 먹는데, 작은 아이가 형에게 고자질을 했습니다.

"형. 말도 마. 수능 전에 엄마가 얼마나 쪼던지... 유튜브 좀 보려고 하면 그만 보라고 하더라고."


쪼다니... 어이가 없었습니다. 살짝 속상하기도 했죠.

"내가 열 번 말할 거 꾹 참았다가 한 번만 말한 거거든? 그리고 너 수능 전 며칠 동안 진짜 유튜브 많이 봤거든? 수능 최저 못 맞출까 봐 엄마가 얼마나 불안했는데... 난 후회 안 하거든? 내가 쪼았으니까 최저를 맞췄다고 생각하거든? 흥! 칫! 뿡!"

이런 말을 하는 게 유치하게 느껴졌지만, 이제는 할 말 좀 해야겠다 싶었죠.

"아후... 맞췄잖아. 내가 맞출 거라고 했잖아. 왜 아들을 못 믿어?"

아들도 속엣말을 뱉어냈습니다. 서운함을 가득 담아서 말이죠.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는 삽시간에 싸해졌습니다. 음식점에서 주문을 하고 기다리던 우리 가족은 서로 애매한 얼굴을 하며 앉아 있었죠. 남편은 "그래그래. 우리 연말에 허심탄회하게 서운한 거 털어놓는 자리 한 번 만들자."며 수습에 나섰습니다. 그때, 올 한 해 우리 가족의 입시 행군에서 빠져 진짜 행군을 하던 병장님이 한 말씀하셨습니다.


"동생아. 그건 네가 엄마를 이해해야 해. 엄마가 형 입시때 트라우마가 생겨서 그래. 형이 3합 15를 못 맞춘 전적이 있잖냐. 그러니 3합 7, 4합 8을 맞춰야 하는 네가 얼마나 불안했겠냐."


수시 전형 중에는 수능 최저등급이라는 게 있습니다. 학교 내신이나 논술시험으로 학생을 뽑지만 수능 점수도 일정 부분 반영하겠다는 것이죠. 3합 7은 세 과목 등급의 합이 7 이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 조합이 나올 수 있지요. 예를 들어 국어 4, 수학 2, 탐구 두 과목 평균 1 이거나 국어 2 수학 2 영어 3, 등등. 어쨌든 학교에서 정한 과목과 등급의 합을 맞춰야 최종 합격되는 제도입니다. 수시 전형으로 입시를 준비한다고 해도 수능 때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큰 아이는, 3과목 15를 맞추지 못해 체대 실기시험에 가지 못했던 슬픈 과거가 있었던 것입니다.(성적이 나오고 보니 3합 14여서 더 안타까웠지요...)


작은 아이는 평소 모의고사에서 최저등급을 맞추고 있긴 했지만 가끔 불안한 성적을 받아올 때가 있었습니다. 재수생이 등장하는 수능에서는 한 등급씩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최악의 경우 최저를 못 맞출 수 있다는 불안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죠. 게다가 둘째 아들이 쓴 네 개의 원서 중 세 개가 최저를 요구하는 전형이었으니, 최저를 못 맞춘다면 네 개 중 한 개의 원서만 살아남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애가 타지 않았겠습니까...

태평해 보여도 속은 얼마나 불안할까 헤아리지 못한 바는 아닙니다만, 게임 영상만 줄곧 보는 수험생을 놔두기가 쉽지 않았지요. (뒤늦은 변명입니다.)


큰아들의 한마디에 분위기는 금세 반전되었습니다. 자신의 실패를 개그의 소재로 승화시켜 가족의 불화를 막았지요. 고등학생 아들과의 불안한 대화에 전직 고등학생이었던 아들의 중재가 빛을 발한 순간이었습니다.


작은 아들의 입시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최저가 없던 학교는 예비 1번을 받아 추가합격을 기대하고 있습니다만 가고 싶어 하는 두 학교의 면접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해결해나가자고 했던 그 하나하나 중, 하나만 남았습니다. 저는 조금만 더... 쫄 예정입니다...


병아리가 알에서 깨어나기 위해서는 어미 닭이 밖에서 쪼고 병아리가 안에서 쪼며 서로 도와야 한다는 줄탁동시 (啐啄同時)라는 사자성어도 있고, 소설 <데미안>에서도 새는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온다고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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