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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Aug 01. 2022

우영우와 민주시민교육 사이...

'민주시민교육'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이 용어를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경기도 민주시민교육 조례에 따르면 “민주시민교육”이란 모든 경기도민이 민주주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가지는 권리와 의무에 기초하여 일상생활의 각 영역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데 필요한 자질과 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하는 모든 형태의 교육을 말합니다.


2014년 서울시에서 [민주시민교육에 관한 조례]가 통과된 이후 최근 몇 년간 지자체와 시도교육청을 중심으로 조례 제정이 활발히 진행됐습니다. 여기저기에서 '민주시민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각종 강연, 교육프로그램이 생겨났지요. 하지만 조례 제정부터 교육에 이르기까지 거센 저항과 비난도 존재합니다. '편향된 정치 이념을 가르칠 수 있다', '동성애를 미화한다'는 주장과, '헌법이 추구하는 인간의 존엄, 자유, 평등의 가치를 교육하기 위함이다', '시민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책임, 권리, 의무를 가르치려는 것이다'라는 주장 간에 갈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정치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다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민주시민교육'이라는 용어만으로도 심한 반감을 일으킨다는 것은 아직도 우리나라 정치가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인 것 같습니다.


저는 다섯 달째 지자체에서 실시하는 '민주시민교육사 양성과정'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시정연구원 민주시민교육센터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지요. 프로그램의 취지와 목적, 내용이 디베이트에서 다루는 이슈, 저의 문제의식과 상당 부분 겹치는 것 같아 시작하게 되었지요. 시민의 역할과 정치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는 열망과도 맞닿았구요. 연말까지 긴 과정이 끝나면 내년부터 학교나 조직, 단체에 나가 강의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강의가 거듭될수록 '과연 무엇을 어떻게...'에 대한 고민이 깊어집니다.


* 무엇을...

12주 동안의 기본교육과정 동안 민주주의의 기본 개념, 지방자치, 인권에 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 자유, 평등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이념과 국민주의, 입헌주의, 권력분립, 인권보장이라는 기본 원리를 중심으로 시민이란 정확히 누구를 말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시민으로서 국가에 무엇을 어떻게 요구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배웠지요.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 내용은 '인권'이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국가에게 인간답게 살 권리를 요구한다"라는 인권 공식에 입각해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이고 이 가치를 널리 알리는 것이 민주시민교육이라고 했지요. 문제는 장애인, 성소수자, 남녀, 세대, 소득, 학력 등 어떤 기준이든 관계없이 누구나 똑같은 권리를 누리는가에 있어 여전히 차별과 격차가 존재한다는 것이죠. 게다가 현상을 인식하고 간극을 줄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극복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 어떻게...

민주시민교육을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토론'입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해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껄끄럽던 문제와 갈등을 수면 위로 끌어놓고 찬반의 입장으로 나누어 이야기해보자는 것이죠. 원래 갖고 있던 소신대로 토론하는 것보다는 임의대로 주어진 입장을 옹호, 변호해보는 경험이 입체적인 사고를 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디베이트 강사인 제가 민주시민교육에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던 이유입니다.

그런데 정작 민주시민교육사 양성과정은 일방적, 주입식 교육으로 이루어졌다는 아쉬움이 큽니다.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답만 하면 돼)'느낌이라 모두들 답답해했지요. 민주시민교육에 관심이 있어 모였다 하더라도 민감한 문제에 대한 각자의 생각은 모두 달랐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공유하고 이해하며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모색해보는 시간이 많았더라면 더 뜻깊은 교육이 되었을 텐데, 아쉬웠습니다. 이렇게 양성된 교육사들이 과연 올바른 교육을 할 수 있을 것인지, 편향되지 않고 생각의 확장을 이끌 수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을지... 앞으로 많은 고민과 준비를 해야 할 부분입니다.


* 현실에선...

민주시민, 인권, 토론... 좋습니다. 불편한 이야기를 평화롭고 편하게 나눌 수 있는 사회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도 가져봅니다. 하지만 현실에선 아직도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다는 것을 느낍니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는 서번트 증후군,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변호사의 이야기와 그를 향한 시선이 나옵니다.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세 가지 기획의도가 나오는데, 흥미롭고 사랑스러운 캐릭터가 보여주는 극복의 드라마, 에피소드 중심의 법정 드라마, '우영우 같은 변호사'를 꿈꾸게 하는 드라마가 그것입니다. 평화로운 기획의도와는 달리 드라마를 보는 세상은 시끌시끌합니다.


드라마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은...

이 드라마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뿐 아니라 장애인에 대한 편견 더 나아가 환상을 심어준다. 장애를 가졌더라도 귀여워야 하고 똑똑해야 하며 착해야 한다는 프레임까지 덧씌우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 속 우영우와 실제 주변에서 만나는 우영우는 반드시 다른데 드라마가 끝난 후 사람들은 자신의 편견을 얼마나 극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장애인이 주인공이지만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기준은 결국 비장애인이 아닐까. 이 드라마가 씁쓸하고 불편한 이유다.

인권 강의에서 여러 강사들이 했던 말씀입니다. 이 드라마를 편히, 고운 시선으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드라마를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불편한 사람들은...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심각하고 진지하게 보지 말자! 오히려 이 드라마를 통해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높아졌으면 된 거다. 이보다 더한 설정의 드라마에는 그저 울고 웃고 하면서 왜 이 드라마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거냐. 장애를 극단적으로 미화시켰다고 드라마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야말로 장애에 대한 편견을 강화시키는 것 아닌가? 장애를 가졌어도 얼마든지 비장애인과 같은 꿈을 꾸고 사회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로 보면 안 되는 건가?

독서모임에서 나왔던 이야기입니다. 드라마가 가진 사회적 영향력을 생각하면 오히려 긍정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죠.


* '우영우'와 '민주시민교육' 사이의 나는...

민주주의는 무엇이고 민주시민은 어떻고 인권, 자유, 평화가 어떻다...

이것은 가르쳐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게 OO이다'라고 가르치는 게 민주시민교육사는 더더욱 아니라고 생각하구요.


드라마를 통해 자연스레 수면 위로 드러난 주제를 객관적인 입장으로 소개해야 합니다.  

주제에서 끄집어낼 수 있는 많은 쟁점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야 합니다.

아무리 훌륭하고 완벽한 논리라도, 아무리 정의로운 생각일지라도 상대의 귀를 열고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표현하는 방식이 예의 바르고 평화로워야 한다는 것도 알려줘야 합니다.

그것이 민주시민교육사가 아닐까...

활동가가 아니라 '교육'하는 사람이라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


'갈등의 해결'이 아니라 '간극을 확인'하는 수준만으로도 세상은 바뀔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드라마 <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는 훌륭한 민주시민교육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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