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은 우리 가족끼리 축하할 일이며 휴일에 사람들 불러 부담스럽게 벌이지 말라는 양가 어른들 말씀에 가족끼리만 식사를 했단다. 형도 그리했으니 서운해 말기를.
그럼에도 둘째 아이의 돌이라는 건, 사진도 기억도 남아있는 게 별로 없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돌 잔칫날 네가 연필을 잡았다는 것이지. 손 닿는 곳에 주황색 장난감 골프채도 있었고 마우스도 있었지만 분명히 넌 연필을 잡았다. 그것도 두 자루나.
거침없이 돈을 잡았던 형과 달리 너는 조심스레 연필 두 자루를 잡았다. 그걸로 인생 길이 정해진다고 믿는 게 참 우스운 일이지만 수능을 90일 앞둔 지금은 그 연필 두 자루에 큰 의미를 두고 싶구나.
원하는 대학과 학과,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다는 뜻인지, 적어도 두 군데는 합격을 한다는 것인지, 차석으로 합격한다는 의미인지, 두말할 것 없이 합격보장!이라는 것인지...
잊지 마라. 넌 돌 때 연필 두 자루를 잡은 사람이다.
D-89 ( 2022.08.20)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온지 열흘 정도 되었을 때였단다. 갯벌에 놀러 갔다가 무엇에 쏘였는지, 자고 일어난 네 발이 땡땡하게 부어올랐지.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는 너를 데리고 동네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아갔단다. 의사는 자못 심각한 얼굴로 파상풍 위험이 있고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른다며 입원을 지시했지. 돌 반된 아이를 앞에 두고 '사망'을 논하는 상황이 기가 막혀 얼마나 울었던지...
2박 3일 입원생활 동안 너는 수액 바늘을 꽂고 자유롭지 못한 움직임에 힘들어했단다. 퇴원 당일, 수액 바늘을 빼자마자 팔을 양옆으로 펼친 채 제자리에서 빙그르르 돌던 네 모습이 선하구나.
네가 퇴원한 그날 밤. 베란다로 나가려던 아빠가 창문에 머리를 그대로 박아버리는 사고가 있었지. 창이 너무 깨끗했던 탓이었을까. 닫혀있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단다. 아빠 이마는 찢어지고 창문은 이마 위치를 중심으로 쫙 갈라졌어. 늦은 밤, 네가 퇴원했던 대학병원 응급실에 또 다녀와야 했단다. 연이은 사고에 외할머니는 집에 마가 꼈다며 팥물을 삶아 이곳저곳 뿌리라고 했지. 이사 온 새집과 우리가 안 맞아서 그런다나. 밑져야 본전이니 시키는 대로 했단다. 이후로 17년째, 우리 가족은 이 집에서 무탈하게 잘 살고 있구나.
무탈하다는 것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생각해.
살다 보면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지.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그 모든 순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지혜롭게 넘기는 것이 무탈하다는 뜻일 거라 믿는다.
우리 올해. 무탈하게 잘 넘기자~
D-88 ( 2022.08.21)
이사온지 두어 달이나 됐을까. 이제 막 돌 지난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 석 달 동안 반장을 하라고 하더구나. 반상회를 처음 시작하면서 아파트 각 동의 라인마다 반장을 지정하는데, 꼭대기층에 사는 엄마부터 반장을 시작하라는 거였지. 사정사정을 했다. '다섯 살, 두 살 된 아이가 있다, 엄마 나이가 어려 세상 물정 모르니 제일 마지막에 하겠다, 1층부터 시작하는 게 어떠냐'는 엄마의 말은 "그렇게 첫 집부터 미루기 시작하면 아무도 안 해요~"라는 말로 묵살됐단다. 어쩔 수 없이 먼저 맞는 매라는 심정으로 반장을 맡았지.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라 할 일도 많고 회의도 많더라. 반상회 불참금을 걷으러 다니는 일도 해야 했지. 너를 등에 업고 한 손에는 네 형 손을 잡고 층마다 돌아다니며 불참금 3천 원을 받으러 다녔어. 고작 석 달뿐이었지만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단다. 어느 날, 너를 업고 회의에 갔는데 갑자기 등이 뜨끈하더라. 네 온몸에서 열이 펄펄 끓고 있었지. 아이가 아파서 집에 가겠다는 엄마를 사람들이 붙잡더라. 정족수를 맞춰야 해서 빠지면 안 된다나... 끙끙 앓는 너를 포대기에 업고 두 시간 가까이 붙잡혀 있는데, 화도 한마디 못 내던 엄마였단다. 그게 아직도 너무 미안하다. 왜 좀 더 이기적이지 못했는지, 왜 좀 더 냉정하지 않았는지...
D-87 ( 2022.08.22)
돌 반이 될 무렵, 열흘 동안 미국 여행을 갔단다. 기억도 안나지?
미국에 계신 고모할머니 환갑을 맞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우리 네 식구가 함께 한 여행이었지. 아직 기저귀도 못 떼었고 유아식을 챙겨 먹어야 하는 널 데리고 가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단다. 특히 열 시간이 넘는 비행은 너와 엄마에게 고역이었지.
갈 때는 그나마 수면 시간과 맞았고 아기 바구니를 쓸 수 있는 자리여서 편했는데, 귀국할 때는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지. 만석이라 여유자리도 없어 엄마가 내내 안고 있어야 했고 계속 칭얼대리는 너를 어쩌지 못해 진땀을 뺐다. 안전벨트 사인이 꺼지면 비행기 뒤쪽 화장실 앞으로 가서 내내 업고 있다가 그것도 시들해져 울기 시작하면 화장실로 가서 엉덩이를 때려주었어. 엉덩이를 때리며 "그만 좀 울어~ 엄마 너무 힘들어~"하면 뭘 알아들었는지 울음을 멈추었지. 그 와중에 형은 비행기에서 비슷한 또래의 여자아이를 사귀어서 비행 내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입시를 준비하는 요즘이 딱 그 비행기 안 너와 나 같구나. 힘겹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너와, 그런 너를 지켜보느라 진땀을 빼는 나. 다행히 이제는 "엄마도 힘들어!" 하며 네 엉덩이를 때리는 엄마가 아니구나. 입시를 치르는 당사자가 훨씬 힘들다는 걸 이제는 알지. 엄마도 자랐구나.
그때 그 비행기 안에서 두 돌도 안된 너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D-86 ( 2022.08.23)
두 살 때 네 사진과 동영상을 보면, 너는 형 따라쟁이더구나. 둘째들의 공통된 성장 배경일 테지. 영아에서 유아가 되는 길에 엄마 아빠만 있었다면 부족했을 정서가 형을 통해 채워졌다고 본다. 다행이지. 네 형, 어렸을 때부터 감수성이 풍부하고 공감능력이 탁월했거든. 엄마가 찍어놓은 영상에는 널 웃게 만들려고 우스꽝스러운 표정과 행동을 하는 형과 그런 형을 보며 숨이 넘어가게 까르르 웃는 네가 가득하더라. 이후로도 줄곧 큰 싸움 없이, 너그러운 형과 애교 많은 동생이었던 형제가 되어주어 감사하다. 형이 네 형이어서 다행이고, 네가 네 형의 동생이어서 다행이다.
20대 후반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던 엄마는,
자신만의 꿈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결혼 출산 육아를 하느라 때로는 서글프고 우울했을 엄마는, 너희들 모습만 찍느라 영상에서 내내 목소리만 나오는 엄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