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금지곡 4. Tell me (원더걸스)

수능 100일 기도 자서전 #4 - 2006년 세 살 때

by 늘봄유정

D-85 ( 2022.08.24)

두 살 때까지는 뽀얀 얼굴, 왕눈이만 한 눈으로 '한 외모'했던 너였는데, 세 살로 넘어가며 피부는 까무잡잡해지고 삐쩍 마르기 시작했지. 그때부터 널 알던 OO이 엄마가 이제 와서야 털어놓는 말이 있단다.

"옛날에 내가 직장 다닐 때, 시어머니가 우리 애들 봐주셔서 자기네 애들을 오며 가며 자주 보셨잖아. 그때는 자기 섭섭할까 봐 말 못 했는데, 우리 시어머니가 맨날 그러셨어. 저 집 큰애는 뽀야니 귀공자처럼 생겼는데 작은애는 까무잡잡하고 삐쩍 말라서 영 볼품없게 생겼다고. 형제가 어찌 저리 다르게 생겼냐고."

그랬지. 돌 전후로는 밥도 잘 먹던 네가 두 돌 무렵부터는 입도 짧아지고 아토피도 생기더니 얼굴은 까칠해지고 핏기도 없어졌단다. 타기는 또 얼마나 잘 타던지. 조금만 놀고 나면 금세 새까매졌어. 그 시절 사진을 들여다보면 영락없는 촌놈이더라.


열아홉이 된 너를 꼼꼼히 들여다본다.

짙은 눈썹에 오똑하고 단단한 콧날.

살아있는 눈빛과 가지런한 치아.

기름기름하고 매끈한 팔다리.

구릿빛 피부에 군살 없는 몸매.

자~~ 알 컸다!



D-84 ( 2022.08.25)

문센.

백화점 문화센터를 일컫는다. 너도 다녔지. 오감 자극 놀이라고 해서 매주 다양한 재료를 갖고 한 시간씩 노는 수업이었던 걸로 기억난다.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건 기본이었고 방안 가득 비닐을 깔고 그 위에서 밀가루나 물감을 풀어 만지고 뒹굴며 집에서 못해볼 것을 경험하게 해 주었어.

형이 유치원에 간 사이 세 살짜리를 데리고 일주일에 두어 개의 수업을 돌아다녔던 시절. 어떤 의무감, 책임감이 엄마를 따라다녔던 걸까.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인정하마. 극성스러운 엄마였다.


엄마보다 더 극성스러운 형 때문에 집에서 편히 쉬지 못하는 날이 많았던 너였다. 여섯 살 때부터 배우고 싶은 게 많았던 형이었지. 수영이 배우고 싶다던 형을 수영장에 들여보내고 너와 나는 지루하게 한 시간을 기다렸지. 노래도 불렀다가, 책도 읽었다가, 그러다 잠도 들었다가... 이후로도 몇 년을 쭉, 형의 학원을 쫓아다니며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시간을 이어갔다. 그 때문이라고 했지. 네가 무엇이든 어디든 배우러 다니는 모든 것이 싫다고 한 게 말이야. 네게 학원이라는 것은 '지루한 기다림만이 가득한 곳'으로 각인되어서 아무것도 배우러 다니고 싶지 않다고 말이야.


가끔 후회한단다. 네 무기력, 무관심의 원인이 그 시절 엄마 때문인 것 같아서.

하지만 믿는다. 인간에게는 무한한 호기심과 앎에 대한 욕구, 열정이 내재되어 있어 언젠가 미친 듯이 뿜어져 나올 것을 말이다.



D-83 ( 2022.08.26)

어디를 다녀오던 길이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날, 그곳에 대한 기억은 선명한 사진처럼 남아있구나. 냄새까지...


10분만 더 가면 집이었는데, 응가를 참을 수 없던 너는 울부짖기 시작했다. 조금만 참으라는 말만 계속하면서 뒷좌석 카시트에 앉은 너를 달래는데 소용이 없더라. 똥이 나오려고 한다고 우는데 엄마도 울고 싶더라. 그래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다가 유턴을 해버렸지. 어디 골목에라도 차를 세워 신문을 깔고 해결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골목에 들어서자마자 네가 더 이상은 못 참겠다고 소리를 질렀을 때, 엄마의 뇌도 정지가 되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색이 된 네 얼굴만 보였어.

차를 멈추고, 트렁크에서 신문과 비닐봉지 등을 꺼내고, 오른쪽 뒷좌석 문을 열고, 카시트에서 분리해낸 네 바지를 벗기고, 신문을 깔고, 널 살포시 안아 함께 쭈그리고, 넌 시원하게 싸고, 행복해하며 날 보고 웃고, 나도 행복하게 웃고, 이제는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던 그때.

우리 차 뒤로 쭉 이어진 차량의 행렬과, 쭈그려 앉아 똥 싸는 폼을 하고 있는 나를 자각하면서 창피함과 미안함이 쓰나미로 몰려왔다. 구부정한 자세로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중얼거리면서도 휴지와 물티슈로 네 뒤를 야무지게 닦아주고 비닐에 신문지와 배설물을 주워 담던 그 시간.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그 시간이 아직도 느린 무성 영화처럼 그려진다.


우리 뒤에 서있던 대여섯 대의 차량 안에 앉아있던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OO동 민폐녀로 회자되고 있는 건 아닐까?

누군가의 삶에서 두고두고 꺼내 이야기할만한, 어이없지만 웃긴 에피소드 하나를 선물해준 거라면 좋겠다.

"있잖아. 내가 얼마나 황당한 장면을 목격했냐면 말이야~~~"



D-82 ( 2022.08.27)

네 세살은, 2006년은 온통 파워레인저였다.

그냥 파워레인저가 되어 살았던 한 해였다. 형과 함께 파워레인저 시리즈 중 <파워레인저 S.P.D>와 <파워레인저 매직포스>에 푹 빠져 종일 노래를 불고 살았지. 파워레인저 변신로봇을 세워놓고 파워레인저 코스튬을 입고 있는 네 모습. 이미 넌 우주전사였다.

파워레인저 뮤지컬을 관람한 후 용사들과 함께 한 기념촬영 사진이 있더라. 그 작은 가슴이 얼마나 떨리고 웅장해졌을까? 그 시절 네게 파워레인저는 전부였을 테니...

파워레인저 주제곡을 검색해 들어보았단다. 시리즈마다 가사가 어쩜 그렇게 주옥같은지.

Go Fight! 파워 파워 파워레인저!
한계를 넘는 거야!
우리는 용기란 마법이 있잖아!
Go Fight! 파워 파워 파워레인저!
미래를 꿈꿔보자!
OK! All right! 내일을 나의 손에!
파워레인저 매직포스
함께 가자!

아들아.

이제 다시 파워레인저가 되어보자.

네게는 용기라는 마법이 있잖니.

미래를 꿈꿔보자. 내일은 네 손에 달려있단다~



D-81 ( 2022.08.28)

그날은 크리스마스이브였단다.

청계천에서 '루체비스타'라는 불빛 축제가 열리고 있어 구경을 갔던 날이지. 추운 날씨에도 넘치는 인파에 엄마 아빠는 너와 형의 손을 꼭 잡고 걸었단다. 형은 아빠 손을, 너는 엄마손을 잡고 걸었지. 어린 네가 힘들어하면 엄마 아빠가 번갈아가며 안아주려 했는데, 너는 유독 엄마만을 고집했지.

평소에도 엄마의 손길만 고집하는 너였는데 그날은 유난히 심했다.

"아빠 싫어! 엄마가! 아빠는 싫다고!"

평소에는 잘 참던 아빠였는데 그날은 유난히 못 참더라.

"나도 너 싫어! 이제 다시는 안 안아줄 거야!"


세 살 아들의 선택과 사랑을 받지 못한 아빠는 자신의 상처가 너무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희대의 명언을 남겼지.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지만, 난 아니야. 난 아픈 손가락 따로 안 아픈 손가락 따로 있어!"

상상이 가니? 서른네 살 성인이 세 살 아이한테 빈정 상하고 토라져서 어색한 공기를 만든 크리스마스이브라니... 지금은 너에게 꾸중 한번 안 하고 한없이 다정한 아빠가 그런 말을 했다니 말이야.

엄마는, 너와 아빠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누구의 마음을 먼저 다독여야 하는지 몰랐단다. 우리는 그렇게 불편하고 어색하게 걷고 또 걸었지.


엄마만 입 다물고 있었다면 묻혔을 기억이지만 그럴 수 없었단다. 엄연히 너의 역사니까.

동시에 엄마 아빠의 역사지. 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을 매일매일 힘겹게 배워가던 네 엄마 아빠의 과거.

우리는 그렇게 같이 성장했단다.


*덧 : 각 챕터의 이름은 수능 금지곡 제목입니다.

수능 전에 들으면 수능 시험날 온종일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곡들이죠.

그 곡들의 제목을 상기시킴으로써, 금기에 과감히 맞서겠다는 엄마의 의지입니다.


Tell me - 원더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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