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금지곡 5. La Song (Rain)

수능 100일 기도 자서전 #5 - #4 - 2007년 네 살 때

by 늘봄유정

D-80 ( 2022.08.29)

4살부터 단지 내에 있는 파랑 몬테소리 어린이집에 다녔다.

일하는 엄마도 아니면서 아이를 어린 나이부터 어린이집에 보내는 것에 죄책감을 느낀 적도 있단다. 특히, 요즘 그런 생각이 더 든다. '그 쪼그만 아이한테 가방 들려서 어딜 보냈나, 조금 더 데리고 있을 걸 그랬나'하는 후회가 들 때도 있지. 그래도 다시 돌아간다면 아마 엄마는, 어린이집에 보낼 거야. 엄마에게도 숨 쉴 시간을 주고 너에게도 너만의 사회가 필요하니까.

그게 파랑 몬테소리 어린이집이라면 더욱 그럴 거야. 가끔 뉴스에서 아이들을 학대한 어린이집이 나올 때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런 일이 있었을까 생각해보지만 적어도 엄마가 기억하는 '파랑'은 꽤 괜찮았던 곳이다. 우리 집 베란다에서 바로 내려다 보이는, 단지 내 중앙광장에 자리 잡았던 어린이집은 넉넉한 풍채와 편안한 인상의 자매가 운영하는 곳이었어. 선생님들이 대부분 지금의 엄마 나이 또래였단다. 수십 명의 아이를 돌보는 게 쉬운 일이었겠냐마는, 그래도 늘 편안하고 푸근하게 대해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계적인 웃음이나 매뉴얼대로 나오는 인사는 분명 아니었어.


얼마 전 분리수거를 하러 엄마랑 함께 나간 너를 부원장님이 발견하시고 반가워하시던 모습, 기억하지?

"어머~ OO이가 이렇게나 컸어요? 벌써 몇 년 전이지? 15년? 세월이 참 빠르네요. OO이랑 같이 주황반이었던 **이, ##이도 가끔 봐요. 다들 저보다 커져서 올려다봐야 해요. 애들 크는 건 참 금방이죠? OO아~ 너 선생님 기억나? 고3이지? 에구... 언제 커서 고3이 다 됐대... 수능 끝나고 친구들이랑 같이 놀러 와~"

그때 함께 다니던 친구들 중 동네에 그대로 남아있는 아이들이 많지. 아직도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들도 많고 말이야. 그 친구들 모두 자신의 진로를 잘 찾는 올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각자의 길을 당당히 가는 파랑의 친구들이 한데 모여 손에 선물 하나씩을 들고 파랑 몬테소리 벨을 누르는 장면을 우리 집에서 내려다본다면, 눈물이 날 것 같구나.

언제 그렇게들 컸는지...


D-79 ( 2022.08.30)

어린이집이 끝나면 집에 바로 들어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비 오는 날을 제외하면 늘 중앙광장에서 두어 시간씩을 놀아야 했지. '디귿'자로 배치된 벤치에 엄마들이 자리를 잡고 아이들은 동그란 광장을 뛰어다니며 놀았단다. 아이들 웃음소리와 엄마들의 수다로 가득 찼던 곳이었지. 아이들 중엔 네 첫사랑이 있었지. 너는 기억도 안 난다고 하지만 엄마 뇌리에는 강하게 각인된 그녀, 그날이다.


가을이었다. 광장에 심어진 나무에서 단풍이 아름답게 떨어지던 계절.

너는 곱디고운 단풍 하나를 집어 그녀에게 건넸다. 수줍게 받아 드는 그녀를 보며 얼굴 가득 웃음이 번지던 너였어. 네 모습이 하도 우습고 귀여웠던 엄마는 장난스러운 마음 반, 질투 반이 더해져, "엄마는? 엄마한테는 단풍잎 선물 안 해줘?"라고 투정을 부렸지. 난감해하던 너는 주변을 대충 훑어보다가 초라하고 볼품없는, 반쯤 썩은 단풍잎 하나를 마지못해 내게 건네었단다.

장난으로 시작한 일에 충격을 받은 엄마는 그날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나는구나. '엄마는 뒤끝이 너무 길다'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기억나는 걸 어쩌니.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때 이후로 이렇다 할 연애사를 쓰지 못하는 것이 내심 안쓰럽기도 하다. 여자 친구도 사귀어보고 실연의 아픔도 경험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형처럼 수능을 2주 앞두고 연애를 시작해서는 안된단다.

단풍이 떨어지는 계절이지만, 올해는 꾹 참기를...


D-78 ( 2022.08.31)

파랑 어린이집 하원 시간, 입구 앞에 쭉 늘어선 보호자를 확인하며 한 명씩 인계가 이루어졌지. 아이들이 반갑게 "엄마~" "아빠~" "할머니~"라고 부르면서 달려오면 네다섯 시간 만의 만남이 무슨 수십 년 떨어져 있던 이산가족 상봉의 시간 같았다.

너는 달랐지. "이호재 엄마~~~"하며 형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왔어.

주변에 있던 엄마들이 재밌다며 웃었지만 엄마의 마음은 불편했단다. '왜 형 엄마라고 부르지, 사랑이 부족했나, 형만 이뻐한다고 생각하나, 어떻게 해줘야 하지?' 고민이 깊어졌지.

그래서 생각해낸 게 <엄마와 단둘이 데이트>였어. 항상 너희 둘을 함께 데리고 다녀야 한다는 생각을 버렸지. 너와 형의 방학 일정이 서로 다를 때, 엄마와 1대 1로 둘만의 데이트를 하러 가는 거였어. 뭐 대단한 걸 하는 게 아니라 둘이 외식하고 둘이 아이스크림 먹으러 가고 하는 정도였다. 온전히 각자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었던 게 이유였단다. 형은 형대로 너는 너대로 결핍이 있을 테니 조금은 채워주고 싶었지.


형이 군대 간 지금, 온전히 너와 너의 입시에만 집중하는 엄마다. 부담스러워도 어쩔 수 없다.

즐겨라.


D-77 ( 2022.09.1)

네 살의 너는 대부분의 네 살이 그러하듯이 춤추고 노래하는 것, 그 모습이 영상에 찍히는 걸 즐겼지. 특히 가수 '비'를 따라 할 때, 이미 너는 '비'였다.

2006년 발표한 < I'm coming >이라는 곡의 안무를 네가 따라한 영상을 한참 돌려 보았다.

당시의 엄마는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비는 복근을, 너는 빵빵한 배에 참외배꼽을 드러내는 것만 다르지 춤은 완전 판박이라고. 어쩜 저렇게 쪼그만 녀석이 비 춤을 똑같이 추느냐고...

15년이 지난 지금 돌려본 영상에서는 가수 비 대신 그냥 네가 보이더라.

눈에 콩깍지가 씌워진 엄마가 신나서 영상을 찍으면 열과 성을 다해 춤을 추는 너.

참외배꼽을 드러내며 비 흉내를 내고 안무를 끝내면 "한번 더~ 한번 더~"를 외치는 엄마를 위해 마지못해 한 번 더 춰주는 너.

그때나 지금이나 너는 엄마를 위한 배려가 넘치는 아이구나.

다시 한번, 춰줄 수 있겠니? ㅎㅎ


D-76 ( 2022.09.2)

엄마의 기억은 온통 사진과 영상으로 복원된다.

아시다시피 기억력이 별로잖니. 네 살 때 영상 중에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영상은 네가 시조를 외우는 영상이란다. 파랑 몬테소리 어린이집에서는 아이들에게 시조를 읊게 했어. 나름의 교육 목표는 있었겠지. '시조를 통해서 선조들의 올곧은 정신과 지혜를 마음속에 새긴다'정도? 무슨 뜻인지도 몰랐으며 외우기까지 무한 반복 연습을 당했을 것을 생각하면 씁쓸하다만, 절로 미소 지어지는 영상 하나 건졌으니 그걸로 됐다.


영상 속 너는 손바닥으로 무릎을 치며 박자를 맞추고 진지하게 읊어댄다.

"태다니 노따하대 하나대 메이도다, 또으고 또으면 모도리 어껀마안, 타하니 데아이오으오 메만더다. 양다언!"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나니
- 양사언

네 살의 네가 열심히 읊던 시조를 계속해서 들어본다.

대학 문턱이 높다 하되 못 오를 리 있겠니. 게다가 열심히 오르고 있는 네가 아니니.



*덧 : 각 챕터의 이름은 수능 금지곡 제목입니다.

수능 전에 들으면 수능 시험날 온종일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곡들이죠.

그 곡들의 제목을 상기시킴으로써, 금기에 과감히 맞서겠다는 엄마의 의지입니다.


La Song - Rain
매거진의 이전글수능 금지곡 4. Tell me (원더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