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금지곡 6. 뱅뱅뱅(빅뱅)

수능 100일 기도 자서전 #6 - 2008년 다섯 살 때

by 늘봄유정

D-75 ( 2022.09.3)

다섯 살, 네 귀염미와 악동미가 넘쳤던 시절이란다. 사진과 영상 내용이 다채롭지.

얼굴을 90도 옆으로 뉘이고 그 옆에 손가락으로 V자를 만들어 붙이면서 입을 최대한 일자로 만들어 귀여운 척하거나, 코를 최대한 찡그려 위로 올리고 입은 씩씩거리면서 정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거나, 업고 가도 모르게 곯아떨어져있거나, 엄지와 검지로 턱을 감싸고 멋진 척하거나, 두 손을 앞발처럼 얼굴 밑에 가지런히 두고 눈을 동그랗게 떠서 장화 신은 고양이 흉내를 내거나... 표정이 수십 가지다.

형 등에 업혀 아기 흉내를 내고, 파워레인저가 되어 비장한 얼굴로 가상의 적과 싸웠으며, 씩씩거리며 화를 내다가 깔깔 거리며 웃어대던....

믿어지니? 한 시도 가만히 안 있고 에너지가 넘치던 너였단다.


감정과 표정의 변화가 거의 없고, 몸에 땀나는 게 싫어 실내 자전거도 5분 타고 내려오며, 먹고 싸는 때를 제외하면 포근한 이불 동글에 칩거하는 지금의 너와는 사뭇 대조적이지. 같은 사람인가 싶을 정도로 변해버렸지만 예나 지금이나 같은 건, 잠이 많다는 거야. 형이 음식으로 에너지를 충전했다면 너는 늘 잠으로 충전했지. 언제 어디서나 에너지를 쏟고 나면 쓰러져 잠이 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울고 웃고 장난치고 노느라 에너지를 쓰지 않는 너는 고등학생이 되어 하루 동안 쏟아낸 에너지를 여덟 시간 이상의 잠으로 보충하더구나. 무슨 고등학생이 저렇게 많이 자나 싶었는데, 고3 심화수학 선생님이 생기부에 써주신 한 문장에서 너의 조용한 열정을 보았다.

"어떠한 상황일지라도 끝까지 수업에 참여하는 마지막 학생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 정도로 교사를 믿고 따르며 신뢰감을 주는 학생임"

옆에서 포탄이 터져도 끝까지 꿋꿋하게 앉아 수업을 들어줄 것만 같은,

가만히 앉아 있지만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그런 너였구나.

그런 너의 잠이구나.

다섯 살 너

D-74 ( 2022.09.4)

5월 2일이었다. 어린이날이 월요일이라 3일 연휴가 시작되는 금요일이었지.

여느 때처럼 아파트 중앙광장에서 형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있었지. 네발 자전거를 타던 네가 코너를 돌다 한쪽으로 기울며 넘어졌다. 뭐, 늘 있는 일이었지. 알다시피 엄마는 자식들의 크고 작은 상처에 호들갑 떠는 사람이 아니었고 너도 그 정도쯤에 울고불고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툭툭 털고 일어나 저녁을 먹으러 집에 들어왔지. 샤워를 하고 밥을 먹으려는데 네 팔이 이상했다. 엉거주춤 기역자로 꺾여있었고 부어올랐으며 그제야 아프다고 했지.

집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는데, 당직의는 네 골절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지. 집으로 돌아와 나흘의 연휴를 쌩으로 아프고 불편한 상태로 보냈단다. 어린이날이라 외출도 많이 했는데, 다시 들여다본 사진마다 불편한 모양새로 팔이 꺾여 있구나. 연휴가 끝난 뒤, 아무래도 이상해 찾아간 다른 정형외과에서 관절 내 골절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6주 동안 깁스를 해야 하는 심각한 상황이었는데 응급실에서는 놓쳤던 것이다. 병원에서는 늘 최악의 상황을 얘기하잖니? 성장판 근처 골절이라 팔이 기형으로 자라거나 다친 쪽 팔만 성장이 멈출 수도 있다고 하더구나. 얼마나 놀라고 화가 나던지... 아빠는 오진했던 대학병원 응급실로 전화해 항의했고 병원은 진료비를 환불해주는 것으로 상황을 매듭지었지. 하지만 그 후로 오랫동안 엄마는 네 팔을 지켜봐야 했다. 팔이 곧게 잘 자라는지, 이상 징후는 없는지...

팔 뿐만 아니라 마음도 곧고 바르게 자라주어 너무 고맙다.



D-73 ( 2022.09.5)

다섯 살 때부터 엄마는 네 손에 칼을 쥐어주었다.

형과 너에게 톱니 칼과 도마 하나씩을 주고 채소를 썰게 했지. 아들 둘 식사를 조금이라도 편하고 조용하게 준비하고자 했던 엄마의 묘책이었단다. 볶음밥이나 카레를 할 때마다 둘에게 제안을 했고, 아동 노동 착취라고는 꿈에도 모른 채 '즐거운 요리 시간'이라고만 여기던 너와 형이구나. 물론, 아이들을 요리에 동참시키는 것이 정서적으로도 좋고 창의력 계발에 도움이 된다는 거창한 목적도 있었다는 걸 기억해주렴.

조물조물 떡, 돌돌 말아 김밥, 미니미 핫도그, 달콤 달콤 쿠키, 야채 듬뿍 카레, 계란 돌돌 오므라이스.


지나고 나니 그 시간이 가장 행복했구나. 무엇에도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웃고 떠들던 시절말이야. 이후로 줄곧 엄마가 후딱후딱 만들어준 밥을 먹고 각자의 스케줄을 소화하러 가느라 함께 식사 준비를 하는 즐거움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 불현듯 생각난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뒤처리 하느라 엄마가 더 힘들어진다는 핑계를 대면서 우리의 '즐거운 요리 시간'을 빼앗았다는 생각도 들고.

이제와 갑자기 "우리 요리하자~"라고 하자니 너무 작위적이어서 망설여지지만,

우리 뭐 해 먹을까?



D-72 ( 2022.09.6)

다섯 살의 너는, 점점 형의 영향을 많이 받던 너는 방송 댄스를 배우는 여덟 살 형의 영향으로 빅뱅의 여러 곡에 맞춰 춤을 추었지. 집에서 맹연습을 하는 형 옆에서 눈치코치 다 동원해 필 충만한 얼굴로 형과 군무를 추던 너. 자연스레 너의 다섯 살, 우리의 2008년은 빅뱅의 음악으로 가득 찼구나.

인생 최초로 노래방을 간 해이기도 하단다. 너희 둘이 평소에 즐겨 부르던 노래를 엄마가 노래방 책에서 열심히 찾아 번호를 찍으면 너희들은 나란히 마이크를 들고 열창을 했어. 동요부터 만화 주제가, 빅뱅의 <붉은 노을> , <거짓말>까지. 한글을 아는 형은 화면을 보고 아직 한글을 못 뗀 너는 형의 입을 보았지. 가사를 몰라도 영혼은 이미 빅뱅이던 너다. 흥이 많고 늘 낙천적이라 그저 음악이 좋고 춤추는 게 좋았던 형과는 달리 넌 뭐랄까... 타고난 필, 감성이란 게 있어 보였단다. 멋을 아는 사람이랄까? 어떻게 하면 멋있는지 아는 사람이랄까? 요즘도 가끔 빅뱅의 음악을 들으면 너의 표정과, 몸짓, 너와 형이 무대 삼아 춤을 추던 베란다, 한참을 추다 지쳐 누워 깔깔거리던 웃음소리, 그걸 놓치지 않고 영상으로 찍고 있던 엄마가 함께 재생된다.

그립다.



D-71 ( 2022.09.7)

초등학교 들어간 형이 부럽다던 너는 한글 공부할 책을 사달라고 보챘지. 다섯 권으로 구성된 <기적의 한글 학습>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당시 엄마는 초등학교 1학년인 형의 받아쓰기 예습을 시켜주느라 네게는 문제집을 거의 던져주는 수준으로 방치했단다. 그런데 이게 웬일... 너는 세 번째 책을 채 끝내기도 전에 한글을 뗐지. 다섯 살이 끝날 무렵 독학으로 한글을 떼다니. 학습지 선생님 한 번도 안 부르고, 엄마가 끼고 가르친 것도 아닌데 말이야.


혹시, 온통 형에게만 쏠리는 엄마의 관심을 조금이라도 붙잡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 건 아니었을까. 의도나 계획을 가졌던 건 아니었지만 본능적으로 말이야. 자라면서는 더욱 그랬을지 모르겠다. 친구 많고 운동 잘하는 형과의 차별화를 꾀하며 형에게는 부족했던 공부로 너의 존재감을 드러낸 것일 수도 있겠다 싶네. 형과는 다른 결로 엄마 아빠의 관심과 사랑을 나눠 받고 싶은 마음으로... 너무 억측이지?


얼마 전 학교 수행평가로 <나의 롤모델은?>이라는 주제의 영어 에세이를 작성한 것을 우연히 보았단다. 첫 문장만 써놓은 상태였는데, 엄마는 심쿵했단다.

"My role model is my older brother, three years older than me."

따로 또 같이, 너희를 사랑한단다.


*덧 : 각 챕터의 이름은 수능 금지곡 제목입니다.

수능 전에 들으면 수능 시험날 온종일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곡들이죠.

그 곡들의 제목을 상기시킴으로써, 금기에 과감히 맞서겠다는 엄마의 의지입니다.


뱅뱅뱅 - 빅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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