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살,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유치원을 다니기 시작한 해란다. 형이 다녔던 곳이고 이 근방에서는 규모가 꽤 큰 곳이었지. 지하에는 실내 놀이시설과 수영장, 뒤뜰에는 체험용 텃밭까지 갖추었고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뿐 아니라 가끔은 원장님과 함께하는 부모교육과정까지 열리곤 했단다. 그곳이 특별히 좋아 그곳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단다. 이곳으로 이사 오기 전, 대로에 있어 바로 눈에 띄었을 뿐이고 신축에 시설까지 좋았다는 이유 말고는 없었단다. 다른 데는 알아보지도 않았지.
여기저기 꼼꼼하게 알아보고 비교하는 성격이 못 되는 엄마는, 너와 형의 유치원부터 학원까지 늘 알던 곳, 익숙한 곳을 고집했구나. 유치원부터 초, 중, 고등학교, 학원에 이르기까지 너희 둘이 같은 곳을 다니는 바람에 공통의 기억을 갖게 됐지. 학교가 같다는 것을 제외하면 둘의 공통 기억이 끊어지기 시작하고 조금씩 그 틈이 벌어진 것은 고등학교 때부터인 것 같다. 체육을 좋아하던 형과 달리 수학을 좋아하는 너. 관심사, 재능의 차이가 진로로 이어지는 시기라서 그렇겠지. 아무튼 그 시작엔 희소유치원이 있었다.
네가 6,7세 때 다녔던 희소유치원이 폐원을 했다. 출산율 저하로 인한 원생 감소가 이유라는구나. 여전히 대로변에 위치한 5층짜리 건물 앞을 지날 때마다 마음 한쪽이 섭섭하다. 두 아들의 기억을 고스란히 담은 곳의 상실을 처음 경험하는 탓이다. 그렇게 하나하나 없어지고 지워지는 것이 많아지겠지. 공간이 없어질 때마다 너희들의 어린 시절을 담은 엄마의 기억도 사라질까 염려되는구나.
D-69 ( 2022.09.9)
형이 2학년이 된 지 얼마 안 됐던 어느 날, 18층에 살던 쌍둥이 엄마가 다급하게 엄마를 불렀지. 기억나지? 너를 친동생, 친아들처럼 너무 예뻐했던 쌍둥이 누나들과 아줌마 말이야.
쌍둥이 아줌마네 들어가니 거실 한가운데 특이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단다. 흰 전지를 깔아놓고 아이 둘을 앉혀놓은 아줌마는 작은 빗을 들고 있었지. 그랬다. 초등학교에 머릿니가 돌고 있었던 거야. 쌍둥이 누나들에게서 머릿니가 발견됐으니 맨날 붙어서 놀던 너와 형에게도 당연히 옮아갔을 거라 생각하신 거지. 아니나 다를까 너희 둘을 비롯 엄마 머리에서도 머릿니가 발견됐지.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당장 약국으로 달려가 참빗과 머릿니 박멸 샴푸를 사 왔어. 셋이 머리를 감고 참빗으로 빗어 흰 종이 위에 떨어지는 머릿니와 서캐를 손톱으로 꾹 눌러 죽였지. 몇 날 며칠을 그렇게 했어. 기억만으로도 머리가 가려워온다...
아빠는? 깨끗했단다. 당시의 아빠는 늘 담배와 술에 절어 머릿니가 살기에 쾌적한 몸상태가 아니었거든. 게다가 이른 출근과 늦은 귀가로 우리와 함께 할 절대적인 시간이 적었단다. 그러니 머릿니가 생기지 않은 것이 당연했고, 그게 좋으면서도 섭섭했겠지.
지금의 아빠는, 네 입시를 준비하며 함께 공부하고 고민을 나누는 사람이 되었구나. 매일 너의 등교와 학원 하원을 도우며 많은 시간을 함께 해주고 있지. 이제 머릿니가 생긴다면 얼마든 공유할 수 있는 아빠가 된 거지.
D-68 ( 2022.09.10)
다섯 살 때 부러졌던 곳에 또 금이갔다. 뭘 하다가 그랬는지는 모르겠다만 반깁스를 해야 했단다. 하필 제주도 여행 직전에 사고가 났지. 말을 탄 사진에도 깁스, 공룡 공원에서도 깁스, 미로공원에서도 깁스... 그러면서도 한시를 가만히 안 있는 몸짓과 짓궂은 표정은 여전했구나. 그런 너에게 엄마는 그랬지.
"아이고~ 조 쪼그만한 머릿속에 도대체 무슨 생각이 들어있는 걸까? 어떻게 저렇게 궁금한 것도 많고 한 시도 가만히 안 있지?"
지금과는 완전 딴판의 너였다. 여섯 살 때 너는, 말도 많고 행동도 빠르고 노래도 잘 부르고 감정 표현도 풍부했어. 호기심이 많고 활발하다 보니 여기저기 부딪히고 깨지기도 자주 했지.
열아홉의 너는, 말도 없고 행동도 느리며 좀처럼 감정의 기복을 드러내지 않는구나. 대체로 조용하고 대체로 가만히 있지. 생각이 많아 보이는 너의 표정과 눈빛을 보며 엄마는 생각한다.
'저 아이의 머릿속에는 대체 무슨 생각이 들어있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너의 마음, 생각을 다 알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우면서도 그게 정상이라 믿는다. 누군가를 다 안다는 것이 가능키나 한 걸까. 예나 지금이나 소파 모서리에 발을 부딪혀 손으로 발을 감싸고 외발로 콩콩 거리다 소파로 자빠지는 너의 한결같은 모습을 보며, '너는 너구나'라고 안심할 뿐이다.
D-67 ( 2022.09.11)
네 살 때, 곱디고운 단풍을 여자 친구에게 선물하던 너는 여섯 살이 되자 여자 친구들을 더 의식했지.
유치원이 끝나고 몇몇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다 들어오는 일이 일상이던 시절이었다. 원복을 입은 채로 가방은 한 군데 모아 두고 두어 시간을 놀다가 헤어졌지. 하루는 우리 집에 들어와 놀게 되었는데 마침 여자 친구들만 오게 되었지. 집에 들어오자마자 너는 네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부끄러워서 숨었나 생각했는데 잠시 뒤 문을 열고 나온 너의 모습에 엄마와 다른 엄마들은 빵 터졌단다.
원복 대신 카라 있는 티셔츠에 청바지로 갈아입은 너는 한껏 멋이 들어간 표정과 몸짓으로 걸어 나왔지. 유치원에 다녀와 씻고 나면 편안한 실내복으로 갈아입는 걸 알았던 엄마는 당황했지. 마음에 드는 친구 앞에서 실내복 따위를 걸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게 웃겼고, 갖고 있는 옷 중에 꽤 괜찮아 보이는 걸 찾아 스스로 입고 나온 게 신기했지. 저러는 건 도대체 어디에서 배운 거냐고 모두가 궁금해하며 웃었다.
어떤 것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아지는 게 있는가 보다. 어린 시절 그렇게 여자 친구들을 의식했던 네가 아직도 모태솔로라는 것이 의아하지만, 언젠가 마음 다해 사랑할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마음을 나누게 되겠지.
D-66 ( 2022.09.12)
안타깝게도, 2009년에 대한 기억이 많지가 않구나. 당시의 사진, 영상을 담아두었던 노트북이 고장 나면서 대부분의 기록이 날아가버렸기 때문이지. 넷이 갔던 푸껫 사진도 없고 유치원에서 보내준 사진, 엄마가 찍어두었던 많은 것들이 사라졌다. 싸이월드에 올려두었던 일부 사진과 기록만으로 그 해의 기억을 겨우 떠올려본다.
그 노트북의 고장 이후로 외부 저장장치 세 군데로 나누어 사진을 담아두었단다. 하나는 네 것, 또 하나는 형 것, 나머지 하나는 엄마 아빠 것. 기록이 없어 기억을 떠올리지 못하는 것보다 두려운 것은 기억이 왜곡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순전히 엄마의 관점에서 엄마의 기억에만 의지해 써 내려가는 과거가 너에게는 다른 기억으로 남아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어. '유난히 기억력이 좋은 너라서'이기도 하고, '유난히 기억력이 안 좋은 나라서' 이기도하지. 엄마의 입장에서 엄마를 미화시키기 위해 조작, 왜곡된 기억을 기록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당시의 다이어리, 메모, 사진을 총동원하고 있는데 2009년만큼은 그럴 수가 없어서 안타깝다. 그럼에도 우리는 2009년을 살았고, 행복했고,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