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100일 기도 자서전 #8 - 2010년 일곱 살 때
7살이 되던 2월, 엄마 아빠 결혼 10주년을 기념하며 오사카 여행을 갔어.
처음으로 일정에 물놀이가 없는 여행이었으며, (친지 방문이 목적이었던 미국을 제외하고) 주로 패키지로 다녔던 해외여행에서 벗어나 지도 하나 펼쳐놓고 다닌 첫 여행이었단다. 그전까지는 어린 너희들을 데리고 자유여행은 엄두를 못 냈는데 오사카 여행은 일정부터 숙소까지 아빠 엄마가 계획하고 예약해서 다녔지. 끼니 상관없이 길거리에서 먹방도 실컷 하고 지하철, 기차를 타며 여유롭지만 부지런히 다녔단다.
숙소 선택에도 과감한 도전을 해보았던 여행이다. 이틀은 오사카 중심가의 저렴한 비즈니스호텔에서 묵고 마지막 날 밤은 교토의 전통 있는 료칸에서 묵기로 했지. 4인 가족 기준 1박에 80만 원짜리 방이었어. 큰 다다미방에서 식사를 대접받고 직원들이 정성스럽게 깔아주는 이부자리 서비스까지 누렸단다. 너는 아동용 유카타를 입고 이불 위를 뒹굴거리며 잔뜩 구입한 포켓몬 피규어를 늘어놓고 즐거워했지. 훌륭한 숙소를 여행 마지막 날 잡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단다. 첫날밤을 료칸에서 보냈다면 좁고 허름한 호텔에서 묵었어야 할 이틀 밤이 여행 전체 만족도를 떨어뜨렸겠지. 이런 이야기를 하며, 사우나를 즐기고 노곤해진 몸으로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던 여행 마지막 밤이 생각나는구나.
오랜 시간 줄을 서도 칭얼거리지 않고 입에 안 맞는 음식도 먹을 줄 알며 하루 종일 걷고 때로는 비를 맞아도 즐겁기만 할 만큼, 너희들은 컸더구나. 없어진 줄 알았던 오사카 사진을 찾아내 한참을 보면서 3박 4일의 여정을 따라갔다. 그때만큼이나, 아니 그때보다 더 행복하더라.
며칠 전 아빠가 그러더구나. 너의 입시가 끝나고 형이 제대하면 우리도 어디든 또 떠나보자고. 스물이 넘은 자녀들과 떠나는 여행은 또 어떤 추억을 남길까? 벌써 설렌다...
우리 가족 처음이자 마지막 캠핑을 다녀왔단다.
순전히 호기심과 도전정신만으로 기획, 계획, 실행한 여행이었지. 텐트의 T도 모르는 사람들의 좌충우돌 여행이었다. 바람 한 점 안 불고 끈끈한 살에 모래가 덕지덕지 붙는 한여름, 작디작은 텐트만 떨렁 쳐놓고 모기에 살 뜯겨가며 꼴딱 샜던 흑역사이자 두고두고 꺼내 이야기하는 추억이지. 새벽 5시에 일출을 보고 새벽 수영을 즐긴 것은 힘들었던 밤의 보상이 될 정도로 아름다웠단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무식해서 용감하다는 말은 예상치 못한 선물을 곳곳에 숨겨두고 찾는 보물 찾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고생과 보상이 1+1으로 묶여서 전해지지만 그럼에도 즐거운 보상에 기쁨만 가득하던 무식함이 그립다. 지금은 여름휴가를 가지 말아야 할 수십 가지 이유를 알아버렸다. 사람이 많아서, 더워서, 공부해야 해서, 할 일이 많아서, 바다는 찝찝해서, 산에는 모기가 많아서... 올해도 우리는 이렇게 시원한데 어딜 가냐, 수능이 코앞인데 어딜가냐며 에어컨을 끌어안고 여름을 보냈구나. 덥고 찝찝했던 12년 전의 여름 기억을 끄집어내면서 말이다...
대한민국의 일곱 살, 특히 남자아이라면 누구나 응당 배우러 다녔던 태권도. 너도 했다. 4단을 딴 형만큼은 아니었지만 너도 2단까지는 땄지. 도복을 입고 눈에 힘을 팍 준채 품새 동작을 할 때면, 표정만큼은 영락없는 태권소년이었다. 남자아이들에게 태권도란, 기초체력을 키우는 것 외에 '단체'라는 개념을 배우고 약간의 애국심 + 조상의 얼을 막연하게 그려보는 작업이다. 멋진 포즈 잡는 법, 초등학생 필수 종목 줄넘기 연마는 덤이지.
크리스마스에 가족 초대 행사가 있었는데, 그때 아빠와 함께 2인 줄넘기를 하는 영상이 있더라. 5팀 중 어느 팀이 가장 많이 줄을 넘는지 겨루는데, 너와 아빠가 2번 시도 합산 23회로 1등을 했지. 영상에는 1등을 놓칠까 봐 조마조마해하는 네 표정과 그런 너를 바라보는 아빠, 1등을 했을 때 너무 기뻐 아빠한테 폴짝 안기는 너와 그런 너를 꼭 안아주는 아빠가 담겨있었어. 둘이 얼마나 애틋하던지 몇 번을 돌려봤단다. 그러면서 기도했다.
그날의 영광이 올해 재현되기를... 숨죽이며 기다리던 입시 결과가 발표되는 순간, 둘이 얼싸안고 기뻐하는 모습을 영상에 담을 수 있기를...
음... 이걸 기록으로 남겨야 하나... 고민하다가 적는다.
워낙 강렬하게 기억에 남은 너의 역사라서...
네가 태권도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흰 도복을 입고 태권도 셔틀 승합차에서 내려 사범님을 향해 큰 소리로 인사를 하고 씩씩하게 집으로 향하던 평소와 달랐지. 얼굴은 굳어있고 인사에는 힘이 없었으며 걸음걸이는 어색했단다. 무슨 일 있냐는 엄마의 물음에 너는 아무 일도 없다고 했지.
네 뒤로 한 발짝 떨어져서 걷던 엄마의 눈에 이상한 무언가가 들어왔다. 흰 도복 바지를 갈색으로 물들인 그것이었지. 엉덩이 부위 가득 물든 그것은, 틀림없이 그것이었다. 가까이 다가가 냄새를 맡아보고 확신했지.
"호진아. 혹시... 응가했어?"라는 엄마의 물음에 너는 정색을 하며 "아니?"라고 대답했단다. 집으로 향하는 걸음걸이가 이상한데도 너는 시치미를 뗐지. 엘리베이터에 타니 냄새가 진동을 했고 함께 탔던 아주머니의 얼굴이 찡그러졌다. 엄마는 너에게 들리지 않게 입모양으로만 아주머니에게 상황을 전했지. 눈치를 챈 네가 엄마를 올려다보더구나. 어색한 침묵이 흘렀지.
집 현관으로 들어온 네게 엄마가 다시 물었어.
"호진아. 이제 집이야. 말해도 돼. 응가했어?"
"아니라니까!"
워낙 자존심이 셌던 너는 그때까지도 엄마에게 털어놓지 못했다. 하지만 신발 안으로까지 흘러내린 그것 때문에 집안에 들어서지 못하고 서있던 너는 그제야 도움을 요청했지.
화장실에 가서 옷을 벗기고 상황을 수습한 엄마는 언제 응가를 했는지 물었어. 태권도장에서 그랬다더구나. 태권도 관장님께 전화를 걸어 상황 설명을 하고 네가 앉았던 셔틀 의자를 닦으시라고 말씀드렸지. 그러고 나니 당황하고 힘들었을 네가 얼마나 딱하던지. 어린 네가 급똥에 대처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지. 그것도 성가신 도복을 입고 말이야. 선생님에게 상황설명을 하는 건 더욱 힘들었을 테고. 참 안타깝고 속상했단다.
요즘도 네 장은 가끔씩 말썽이지. 아침에 학교 가려다가 화장실로 선회하는 네게 문밖에 선 엄마가 서두르라고 잔소리하는 날이 더러 있지. 수능날, 집중력 잃지 않고 문제 잘 푸는 것보다도 더 신경 쓰이는 것 역시 장 상태란다. 갑자기 급하게 신호가 오면 어쩌나 걱정이다. 수능 며칠 전부터 수능 도시락으로 쌀 음식을 똑같이 먹이기로 결심한 이유다. 늘 먹던 것, 익숙한 것, 장을 편하게 하는 것으로 준비해야겠다. 놀라지 않게, 탈 나지 않게, 널 흔들지 않게, 안타깝지 않게...
네 7살 10월에 엄마 아빠가 치킨장사를 시작했다.
장사를 해본 적 없는 엄마 아빠였고 너희들은 너무 어렸지. 학교와 유치원, 학원 스케줄에 맞춰 엄마는 하루에 세 번씩 집과 가게를 오갔단다. 여기저기 엄마의 빈자리가 구멍으로 드러날까 봐 노심초사하며 이것저것 챙겼지만 결국은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생겼지. 엄마가 데리고 가야 다닐 수 있던 학원들을 그만두어야 했고 유치원이 끝나면 친구네 집에 엄마들과 함께 놀러 가는 것을 할 수 없었지. 엄마 없이 밖으로 돌아다니지 말라고 했으니 늘 형과 둘이 집에 있어야 했으며 가끔은 엄마 없이 잠에 들어야 하는 날도 있었다. 너무 어렸는데, 미안하다.
장사를 시작하고 처음 맞는 학교, 유치원 방학 때였다. 치킨 장사의 생리를 잘 모르던 엄마 아빠가 10시부터 치킨집 문을 열던 때였지. 장사는 해야겠는데 너희들을 맡길 데는 없고 해서 영어캠프와 스키캠프를 보냈단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어. 유치원 방학이 끝나고도 한동안은 영어캠프와 스키캠프를 가야 해서 한 달가량 유치원을 쉬어야 했거든. 그런데 유치원에서는 졸업을 하려면 오지 않는 한 달에 대한 원비도 내라고 하더구나. 고민에 빠졌지. 50만 원을 내고 졸업식에 참석을 할 것인가, 미련 없이 유치원을 그만둘 것인가... 50만 원은 너무 컸단다. 그래서 유치원 졸업을 목전에 두고 그만두기로 했지. 다행히 담임 선생님께서 졸업 사진도 챙겨주시고 졸업장도 만들어주셨지만 2년 다닌 유치원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컸단다. 아직도 그게 마음에 걸리지.
1월이면 고등학교 졸업이다. 3년 동안 한 번의 결석도 없고, 남들 다 쓰는 가정학습도 쓰지 않으며 성실히 학교 생활을 했구나. 대상포진 때문에 작년 여름 질병 조퇴했던 걸 두고두고 아쉬워하고, 3년 개근상을 못 받게 되었다며 씁쓸해하는 너를 보니 미완의 유치원이 더 미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