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금지곡 9. Dumb Dumb (레드벨벳)

수능 100일 기도 자서전 #9 - 2011년 여덟 살 때

by 늘봄유정

D-60 ( 2022.09.18)

초등학교 1학년이 된 너는 성실히 1학년의 삶을 살았다. 주 1회 받아쓰기, 학예발표회, 운동회 때 꼬마신랑 춤, 남들 하는 것 다 하면서 지냈지. 사진에 다 남아있다. 그런데 말이다. 늘 즐거워 보이지는 않더구나. 특히 운동회 때 신랑 각시로 나누어 춤을 추는 장면이나 학부모 참관 수업 때 폴카를 출 때의 네 얼굴에는 '마지못해 합니다. 하라니까 합니다.'라고 쓰여 있더라. 그랬다. 너는 제도권 교육의 억지스러움을 그때부터 싫어했지. 아마 고등학생이 되어서 네가 입에 달고 살던 "굳이"라는 말을 너는 그 어린 시절부터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굳이 이렇게 여자 친구와 짝꿍이 되어 신랑 각시 춤을 추어야 하나, 굳이 우스꽝스러운 모자와 복장을 하고 폴카춤을 추어야 하나...

그럼에도 지금까지 튕겨나가지 않은 너구나. 제도권 교육의 최고봉이자 마지막 관문, 대학 입시까지 왔구나. 씁쓸하면서도 대견하다.


D-59 ( 2022.09.19)

초등학교 1학년 담임선생님은 형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셨지. 정년을 앞둔 선생님의 마지막 제자들이 너희였단다. 인자하고 포근했던 분으로 기억한다.

1학년 때 같은 반 친구들과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거의 매년 여행을 다녔지. 열명이 넘는 친구들과 엄마들이 강원도 정선, 가평 등지로 가을마다 1박 2일 여행을 다녔다. 그중 마음이 맞는 여섯 집이 '덩어리'라는 이름으로 뭉쳤고 아직까지 친하게 지내고 있지. 어느 순간부터는 더 이상 너희들의 모임이 아니었다. 아이들을 매개로 11년째 우정을 이어오고 있는 엄마들의 모임이 되었지. 선생님을 비롯해 친구들까지, 귀한 인연을 많이 만난 한 해였다. 너에게서 비롯된 인연이니 너의 역사이지만, 나의 역사도 되었구나.


D-58 ( 2022.09.20)

세 번째 깁스를 했다. 학예 발표회를 앞둔 때였지. 우쿨렐레 연주를 준비했는데 깁스를 하지 않은 손가락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연주였다. 기타를 가르치는 이모부에게 가서 주 1회 레슨을 받기 시작했는데 겨우 한 곡을 배워 연주를 했지. 계속 배웠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30분 거리에 있는 이모부의 교습소에 가는 일이 번거롭기도 했고, 그걸 극복할 만큼 좋아하지 않았다는 이유가 크다.


인생 첫 파마를 했다. 아들을 키우며 꼭 해보고 싶던 엄마의 바람 때문이었지. 파마가 잘 어울리는 머릿결을 타고난 너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침마다 폭탄머리가 되는 형은 매직 파마를 해주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철사 같은 형 머릿결은 파마약도 스며들지 못했나 보다. 그때 다니던 미용실을 아직도 고집하고 있는 너구나. 다른 곳에 가는 것이 어색하다고 십수 년째 같은 미용실, 같은 실장님에게 머리를 맡기고 있지. 두 살 때부터 너를 봐온 20대의 실장님은 우리와 함께 나이 들었다. 너와 엄마의 모든 것을 알고 편한 대화를 나누는 사이지. 네가 가면 묻지도 않고 알아서 머리를 다듬어주시지. 그게 좋아 또 계속 다니는 너고.

반면 형은 도장깨기 하듯 온 동네 미용실을 두루 다니며 길렀다가, 파마했다가, 투 블록을 했다가, 난리다. 머릿결만큼이나 다른 너희다.


D-57 ( 2022.09.21)

1학년이 되던 그 해에 엄마 아빠가 치킨집을 했다. 동네에서 할까 하다가 일부러 멀리 떨어진 곳에 차렸지. 너희들이 학교 다니는 동네에서 장사를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말에는 가끔씩 가게에 데리고 갔지. 그러면 둘이 서로 문을 열겠다며 열쇠를 달라고 졸랐다. 언젠가 4학년인 형이 물었지. 치킨집을 어느 아들에게 물려줄 거냐고. 우스갯소리로, 공부 잘하는 놈에게 물려줄 거라고 말했던 거 기억나니?


형은 늘 말했지. 자신은 공부에 취미가 없으니 공부는 동생에게 기대하라고 말이야. 그러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체육학과로 진학했고 가고 싶어 하던 특수부대로 입대했다. 하고 싶은 게 없어서 공부를 한다던 너는 늘 형을 동경했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명확한 형을 말이다. 하지만 말이다. 너도 꽤 잘하고 있다. 형이 말했던 '기대'라는 것을 엄마 아빠가 하게 만들었지.

지금까지 치킨집을 하고 있었다면 너에게 물려준다고 했겠구나. 다행이다. 장사를 빨리 접어서 말이다.


D-56 ( 2022.09.22)

Q. '꿀벌은'을 소리가 나는 대로 쓰시오.
A. 윙윙윙

기가 막힌 답안에 온 가족이 뒤집어졌던 문제, 기억나니? 원래 답은 '꿀버른'인데 너는 윙윙윙이라며 꿀벌이 내는 소리를 적었지. 형은? '붕붕붕'이라고 답했단다. 그 형에 그 아우...

Q. 큰 삼각형 안에는 작은 삼각형이 몇 개 있습니까?
A. 네

큰 삼각형 안에 작은 삼각형이 몇 개 들어가 있는지를 묻는 문제에 너는 단정하고 성실하게 "네"라고 답했다. "네, 있습니다."라니... How many라고 묻는 질문을 Are there로 받아들인 거지.

창의적인 너의 답안에 틀렸다고 작대기를 날려야 했던 것이 조금 아쉽다.


4차원 같은 답을 날리던 초등 1학년의 너는 자라서 약간은 4차원 같은 고등학생이 되었지. 가끔 허공을 향해 눈알을 굴릴 때 뭐하냐고 물으면 머릿속으로 수학 문제를 풀고 있다고 말하는데, 그럴 때마다 저 문제들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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