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년이 되었지만 1학년 때 친구들과 더 자주 어울려 놀았고 나들이도 많이 다닌 한 해였단다. 특히 남자애들과는 축구클럽을 함께 했으니 더 돈독했지. 경기도 어린이 박물관, 송암 스페이스 센터, 용문산 계곡, 정선 등 산으로 들로 열심히 놀러 다녔다.
정선 여행은 아홉 명의 친구들과 아홉 명의 엄마, 두 명의 형과 두 명의 동생까지 총 스물두 명이 함께 했지. 13명의 아이들이 복작대느라 시끄럽고 정신없었으며 몇 끼니를 해 먹이느라 진이 빠졌지만, 그 모든 게 오로지 즐겁기만 했던 시절의 일이다. 특히 레일 바이크를 탈 때 펼쳐졌던 장관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어디를 다녀도 그 정도의 인원이 움직였다. 돌이켜보니, 참 극성맞은 패거리들이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하지만 덕분에 좋은 추억이 쌓였고, 아직도 친하게 지내는 12년 지기 친구들이 남았다.
D-54 ( 2022.09.24)
파자마 파티에 진심이었던 형의 영향으로 너 역시 친구들과 파자마를 자주 하게 되었다. 적게는 한 명부터 많게는 축구팀 전원까지.
각자의 일과를 모두 마치고 샤워까지 한 아이들이 밤 아홉 시쯤 하나 둘 모여들었다. 잠옷으로 갈아입고 치킨, 피자 등으로 야식을 먹고 나서 마루 한가득 이불을 펴놓으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파티가 시작되지. 조명이 반짝이고 음악이 쿵쿵대는 파티가 아니라 잠옷 입고 이불 위에서 뒹굴거리며 빈둥대는 파티였다. 일부는 한데 모여 각자 들고 온 게임기를 하고, 일부는 체스를 두고 일부는 TV를 보았다. 어떤 아이들은 졸음을 못 이겨 일찍 잠들어버리고 어떤 아이들은 새벽까지 버티기 시합을 했지. 친구들이 잠들고 분위기가 정돈되면 어김없이 진실게임이 시작됐다. 좋아하는 애가 있냐, 누구냐. 없다. 있지만 말할 수 없다. 뻔한 질문과 뻔한 답이 오가는 소리를 들으며 안방에서 귀를 쫑긋 기울이던 엄마였단다.
지나고 보니, 이불 위였다고 해도 아이들의 발자국 소리가 시끄러웠을 테고 재잘대는 소리에 신경 쓰였을 텐데 한 번도 싫은 내색 안 하셨던 아랫집이 참 감사하구나. 가정불화로 가족 간 싸우는 소리가 위로 올라와 우리 가족이 힘들어한다는 것을 짐작하셨기 때문이었을 테지. 우리 집은 이제 절간처럼 조용해졌는데 아랫집은 요즘도 종종 싸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래도 그 시절 소란스럽던 파자마를 참아주었던 감사함 때문에 침묵하고 있는 우리구나.
D-53 ( 2022.09.25)
경험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엄마 아빠가 해줄 수 있는 것도, 남겨줄 수 있는 것도... 그래서 치킨집을 하는 와중에도 최대한 짬을 내어 돌아다녔다. 일종의 면피용이었다. 장사를 하지 않았다면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더 친밀한 관계 형성을 했을 것이라는 아쉬움과 죄책감을 털기 위한 것이었지. 하지만 그 덕분에 오히려 아빠가 회사 다니던 시절보다, 엄마가 집에만 머물었던 때보다 더 많이 다녔다는 생각이 든다.
키자니아는 여러 번 갔다. 다양한 직업을 경험해보면 꿈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지. 형이랑 둘이 갔을 때, 세스코 직원 복장을 하고 씩씩하게 걸어가며 "우리는! 용감한! 세스코 맨!"이라고 외치던 때, 둘은 쑥스러워하고 엄마는 박장대소했지.
어렸던 너만큼이나 어렸던 나는, 키자니아에서 직업 간접 체험을 해본다면, 엄마 아빠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쌓는다면 미래에 대한 꿈을 꾸고 장래희망을 정하는 게 수월할 줄 알았단다.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몰라 고등학교 시절 내내 방황하며 결국 성적에 맞춰 아무 전공이나 선택하는 날이 올 줄을, 그때는 몰랐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길며 앞으로 너를 바꾸어 놓을 인생의 포인트는 많으며, 그러려면 가만히 있기보다는 바지런히 움직이고 경험해야 한다는 것을 믿는다.
D-52 ( 2022.09.26)
괌 여행을 다녀왔다. 거의 매년 해외여행을 다니다가 치킨집을 하면서 가지 못했는데, 직원들의 배려로 떠나게 됐지. 3박 4일의 일정으로 온통 휴식에만 집중했던 여행, 너희들은 내내 물놀이를 했다.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단골 아저씨 한분이 그러더라.
"괌 다녀왔다면서요? 장사 잘 되더니 이제 가게 맡기고 여행도 다니네? 그거 알아요? 그 여행 내가 보내준 거야. 내가 엄청 많이 팔아줬잖아."
그게 그렇게 야속하고 미웠다. 3년 가까이 고생한 우리에게 우리 스스로가 준 선물을 자신의 공으로 가로채는 사람이라며 속으로 욕했지. 어차피 카드 긁어 빚내서 가는 여행인데 누가 보내주고 말고를 따지지 않았지.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분 말씀이 맞더라. 우리의 여행은 단골손님들이, 정 많고 성실한 직원들이 보내준 것이었지. 그때는 그걸 몰랐다.
우리의 삶 전체가 마찬가지 아닐까. 절대 나 혼자 잘나서 이루는 결과는 없단다. 순간의 모든 행복에는 그 순간을 있게 한 많은 이의 배려와 관심이 있지. 우리의 지금도 그러하다. 입시 결과에 상관없이, 50일 남은 시점에도 네가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는 데는 학교 선생님, 학원 선생님부터 시작해 가족, 친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의 관심이 있기 때문이겠지. 그런 너를 바라보며 마음 편히 기도를 하는 내가 있는 것도 그러하고 말이다.
D-51 ( 2022.09.27)
너희 2학년, 아홉 살은 참 똥꼬 발랄하더라.
개그콘서트 코너를 따라 하거나 강남스타일에 맞춰 춤을 추고 눈밭에 누워 손발을 크게 흔들며 나비를 만들었지. 언덕 위에서 몸을 일자로 눕히고 떼굴떼굴 굴러 내려오고 한창 유행이던 셔플댄스를 길거리에서 추었단다. 하이텐션이 늘 유지되던 시절이다. 지금의 너와는 영 반대지.
방문 앞에는 A4 용지에 '천재 이호진의 방'이라고 붙여놨다. 평균 95점 이상이라는 목표까지 써놓았지. 담임선생님이 학구열에 불타는 분이셔서였을까? 초등학교 2학년에 불과한 너희들이었는데, 1등부터 10등까지 일으켜서 칭찬해주었다는 이야기에 기함을 토했지.
아무튼 천재 이호진의 방문을 열면 늘 잠자고 있는 네가 있었다. 그건 지금도 다르지 않지. 늘 누워있는 네가 보이지. 누워서 공부하고 누워서 게임하고 누워서 영상 보는 너. 하지만 그곳은 여전히 천재의 방이라고 생각하련다. 천재의 50일을 응원 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