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금지곡 11. 문을 여시오 (임창정)

수능 100일 기도 자서전 #11. 2013년 열 살 때

by 늘봄유정

D-50 ( 2022.09.28)

네가 안경을 끼기 시작한 해다.

칠판이 안 보인다고 해서 시력검사를 하니 0.4 정도 된다고 했던 것 같다. 안경을 써야 더 나빠지는 것을 막는다고 해서 지체할 것도 없이 안경을 맞췄지. 잘생긴 얼굴에 안경이라니, 너무 속상했다. 어려서부터 눈이 나빴던 엄마 유전자를 물려준 것 같아 죄책감도 일었지.

엄마는 여섯 살에 안경을 꼈단다. 외할머니는 엄마를 부둥켜안고 울었다고 했다지. 엄마는 널 안고 울지는 않았지만 속상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몇 달 전, 대학 가면 합격 선물로 라식 수술을 해달라고 네가 말했지. 표현은 안 했지만 꽤 불편했구나 싶어 다시금 미안해졌다. 암. 해줘야지. '대학 가면'이 아니라 '고등학교 졸업하면' 해주마.


D-49 ( 2022.09.29)

덩어리 모임(너의 친구 모임이자 엄마의 화투 모임)의 OO이 엄마가 영어를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헤드헌터로 일하고 있는 와중에도 짬을 내어 여섯 명을 가르쳤지. 그렇게 3년을 해주었다. 영어만 가르친 게 아니었지. 수업 중에 너희들 먹을 간식 챙겨, 수업 끝나도 집에 갈 줄 모르는 녀석들 저녁 해 먹여, 엄마들까지 불러 커피 끓여, 많은 걸 나누었던 분이다. 최소한의 간식비만 받고 재능기부를 해준 OO 엄마 덕에 학원 한번 안 다니고 고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성적이 잘 나왔을 때 고등학교 입학하면서부터 다닌 학원 덕분이라고 생각하다가 문득 어렸을 때 기본기를 탄탄히 잡아준 OO이 엄마의 덕분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이웃이, 마을이 너를 키웠구나.


D-48 ( 2022.09.30)

자신 아이의 말만 들은 학부모 한 분이 너와 몇 명의 아이들을 학폭 가해자로 몰았던 일이 있었지. 사건의 진상을 알아야 사과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아 그 학부모에게 연락을 했지만, 그분은 엄마의 전화를 피하기만 했다. 겨우 연락이 닿았지만 굉장히 친한 척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고 정작 학폭 사안에 대해서는 얼버무리기만 했지. 담임 선생님의 조사로 결국 근거 없이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결론은 났지만 네가 받은 상처는 꽤 컸다. 혹시 네가 진짜 친구를 때렸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고 추궁하는 엄마에게 너는 서럽게 울면서 항의했지.

"아들 말을 안 믿고 왜 남의 말을 믿는데~~"

가족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편들어주기보다는 때로는 냉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어린 너에게는 큰 상처였지. 순하고 착한 너라는 걸 그때는 왜 확신하지 못했을까. 지금은 믿는다. 100%.


D-47 ( 2022.10.1)

여수, 순천, 경주, 스키장, 화담숲, 대천, 독립기념관, 소래포구, 홍콩.

2013년 한 해도 열심히 다녔다. 여러 곳을 함께 여행 다니며 친하게 지낸 가족이 있지. 형 친구들 가족 모임이었다. 국내 여행의 대부분은 그들과 함께 했던 한 해였다. 아이들도 싸우는 일 없이 친하게 잘 지냈고 어른들도 즐겁게 잘 지내던 사이였다. 특히 너보다 두 살 어린 여동생이 있었는데 너와 형을 참 잘 따랐지. 남매라고 불러도 될 정도였다. 너와는 아동복 쇼핑몰 모델을 한 추억도 있구나.


어떤 인연은 서서히 끝을 맞이하기도 한단다. 그들과 우리의 인연도 그랬지. 특별히 싸운 적은 없지만 작은 섭섭함이 쌓이고 불편함이 잦아지다 보면 인연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노력도 소용없어지는 순간이 찾아오거든. 다시 만나기는 힘들겠지만 그래도 한때 즐거웠던 추억을 공유하는 그런 인연이구나.


새로운 인연 만들기에 회의적인 데다가 코로나로 학교 생활의 즐거움을 잘 모르던 네가 요즘 들어 학교 생활을 즐기더구나. 300여 명의 고3 재학생 중 4,50여 명밖에 등교하지 않는 요즘, 너는 가정학습 한번 내지 않고 성실히 등교를 하고 있지. 오늘은 배드민턴을 쳤는데 내기에서 져서 과자를 사가야 한다, 누구누구는 원서 쓰다가 아버지랑 대판 싸웠다더라, 1, 2학년 체육대회라 웬만하면 고3들은 등교하지 말라는데 가정학습 보고서 쓰기 귀찮으니 갈 거다, 조잘조잘 이야기가 많아졌지. 몇 달 후 졸업을 하면 새로운 인연들을 만나고 과거의 인연들과 자연스럽게 멀어지겠지. 인연의 소중함과 더불어 자연스러움에도 길들여졌으면 좋겠다.


D-46 ( 2022.10.2)

학예발표회 때 사회를 맡게 되었다. 흰 셔츠에 나비넥타이를 매고 대본을 적은 큐시트까지 준비했지. 발표회 당일, 큐시트 내용을 모두 외워 대본 없이 진행을 하던 너였다. 어려서부터 늘 '멋', 속된 말로 가오를 중시하던 너였기에 뭔가를 들고 보면서 읽는 게 멋지지 않다고 생각한 거지. 참관하던 학부모들이 "오~ 다 외웠나 봐."라고 말했을 때, 너의 미세한 우쭐함이 엄마 눈에는 보였단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네게 그 '멋'이란 게 또 발동 중이지. 네가 생각하는 '멋'진 학교, 폼나는 그 이름을 향한 너의 열망. 그 크기를 알기에 오늘도 간절히 기도하게 된다. 너의 멋이 폭발하기를...



*덧 : 각 챕터의 이름은 수능 금지곡 제목입니다.

수능 전에 들으면 수능 시험날 온종일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곡들이죠.

그 곡들의 제목을 상기시킴으로써, 금기에 과감히 맞서겠다는 엄마의 의지입니다.


문을 여시오 - 임창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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