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100일 기도 자서전 #12. 2014년 열한 살 때
너의 역사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만, 2014년이 시작되자마자 엄마 아빠가 하던 치킨 장사를 그만두었단다. 2년만 하고 좋은 값에 넘기려던 계획은 실패했지만 3년 만에 손해보지는 않고 마무리했지. 장사 마지막 날,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했던 모든 직원을 불러 회식을 했다. 그 자리에는 너와 형도 초대했지. 3년 장사에 가장 큰 일등공신이자 최대 피해자는 너희들이라 생각했거든. 수시로 집을 비우는 엄마를 조용히 기다려주고 각자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준 너희들에게 고맙고 미안했단다. 네 유치원 졸업식을 포기해가며 벌렸던 치킨집을 네가 4학년이 되던 해에 접었다. 남들 쉴 때 쉬지 못하던 무수한 날과 잠든 너희들만 두고 나가야 했던 숱한 밤을 회상하며 후련하게 마무리했다. 어떤 이는 아이들 곁에 엄마가 꼭 붙어있어야 하는 건 아니라고 말하고 어떤 이는 그래도 아들내미들은 엄마가 집에 있어주어야 한다고 말했지. 엄마는 후자를 택했다. 하교할 때 늘 친구들을 주렁주렁 달고 오는 네 형을 위해서, 종일 있었던 이야기를 종알종알 이야기하던 너를 위해서... 우중충한 얼굴로 하교하는 너희들의 마음을 알고 싶어서, 집에는 언제든 기대거나 쏟아낼 수 있는 존재가 든든히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서...
힘든 수험생의 시기, 너에게 엄마가 또 다른 고민거리나 부담이 아니라 그저 안식처이자 비빌 곳이기를 바란단다. 한없이 투덜대도 괜찮은 사람, 마구 쏟아내도 흘려보내는 사람.
그거 아니? 다른 사람들이 그러면 내가 감정 쓰레기통이 된 것 같아 뿔이 나지만, 너와 형이 그럴 때면 '나라서 다행이다...'싶단다.
뮤지컬을 보러 가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했어. 당했다는 표현이 딱 맞게, 정차해 있는 우리 차를 뒤차가 와서 박아버렸다. 뒷좌석에 안전벨트도 안 하고 있던 너희들은 몸이 앞으로 붕 떴다 고꾸라졌고, 백미러로 뒤차가 빠른 속력으로 다가오는 것을 그대로 주시하던 엄마는 경직된 몸 때문에 더 충격을 받았지. 뒷 범퍼와 트렁크 문은 박살이 났고 엄마는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뒷목을 잡으며 차에서 내려야 했어. 사고 수습에는 문제가 없었다. 뒤차 100프로 과실이었으니 사고 처리부터 보상까지 문제없이 끝났지.
아직도 신기한 것은, 엄마는 몇 주 동안 치료를 받을 정도로 몸이 안 좋았는데 너희들은 아픈 데가 하나도 없었다는 거야.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한의원이라도 다니자고 했지만 너희들은 아픈 곳이 없는데 왜 병원을 가냐고 했지. 가끔은 그때 억지로라도 병원을 데리고 다녔어야 했나 후회가 될 때도 있다. 네가 "잠을 잘못 잤나?" 하면서 목이 아프다고 할 때나 의자에 앉으면 허리가 아프다고 할 때. '그때가 언제 적이냐, 잘못된 자세가 문제다' 생각하면서도 엄마는 다 내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단다.
그런 강박에서, 죄의식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아직도 너의 부족함, 너의 잘못은 엄마의 부족 때문이라는 생각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너는 자랐는데 엄마는 아직도 자라지 못했나 보다. 너는 혼자서도 우뚝 설 수 있는데 엄마는 아직도 자식들에게 매달려 있나 보다.
4학년에 올라가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하던 날,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OO이가 3학년 때 어떤 아이를 때렸다고 학폭에 올라왔던 적이 있어서 OO 이를 그런 아이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지내보니 전혀 아니더라고요. 제가 선입견을 갖고 있었네요. 성실하고 착한 아이인데 왜 그런 사건에 휘말렸을까요?"
그때 엄마는 적잖이 놀랐어. 선생님들이 서류상으로 만나는 아이들과 직접 겪어보는 아이들에는 큰 차이가 있을 텐데 학교라는 공간에서 아이들의 면면이 드러나는 것은 결국 기록이라는 사실에 말이야. 그래서였을까. 너도 4학년 때 담임선생님에 대한 반응이 좋지 않았다. 얼마 전 물어봤을 때도 별로였다고 기억했지. 자신에게 차갑고 냉정한 선생님을 영문도 모르고 견뎌내야 했을 학기초의 너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더라.
세상은 내내 그렇다. 종이 한 장이다.
대학에서는 생기부 하나로 너의 고등학교 3년을 평가하지. 너의 성실함, 학업 의지, 인성, 열정.
자소서 한 장으로 너라는 사람을 파악하고 10분간의 면접으로 너를 알아보지.
너를 제대로 알리려면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너의 진면목을 알아보는데 걸렸던 만큼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세상은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는구나. 어쩌면 그나마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12년이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는 유일한 시간, 공간이 아니었을까...
지나고 나니 너를 결국은 알아봐 준 4학년 담임선생님이 감사하다.
네게는 다섯 살, 여덟 살 차이의 사촌동생이 있지. 이모의 딸, 아들인 그들에게 너는 참 자상한 오빠, 형이 되어주었단다. 동생들이 태어나던 때부터 지금까지 시종일관 그랬지. 2014년에 여섯 살, 세 살이던 동생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오면 넌 귀찮은 내색 한 번 없이 온 시간을 내어주었단다. 함께 블록 놀이를 하고 책을 읽어주고 놀이터에 가주었지. 이모네 집에 가도 똑같았단다. 물론, 친동생이 아니었기에 가능한 친절, 자상함이었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엄마는 그게 참 좋더라. 무뚝뚝하고 관심 없는 것보다야 훨씬 낫잖아?
그 동생들도 자라 중1, 초4가 되었지. 어제 외할머니와 통화하는데 중1 된 동생이 너를 롤모델이자 경쟁상대로 삼고 열공중이라고 하더라. 자기가 성공하려면 오빠가 입시에 성공해야 한대. 그래야 목표가 확실해진다나? 그 소리에 한참을 웃었다. 자상한 오빠에서 멋지지만 넘어서고 싶은 오빠가 되었구나. 둘 다 멋지다.
4학년 여름방학 때, 두 달 동안 하와이 고모네 집에 다녀오게 되었지. 너 혼자.
갈 때는 할머니 손잡고 갔지만 할머니는 2주 만에 혼자 귀국하셨고 너는 YMCA 캠프에 참가하며 두 달을 더 보냈다. 아들을 처음 떨어뜨려보는 엄마 아빠는 어쩔 줄 몰랐고 정작 너는 덤덤했지. 매일 통화하자며 패드를 사주었는데 통화는 쉽지 않았다. 너는 우리의 연락을 잘 받지 않았고, 대체로 먼저 연락하지 않았지. 매정한 놈이라고 욕하다가, 얼마나 외롭고 그리우면 연락도 안 할까 했지. 고모가 전해주는 소식과 고모가 보내주는 사진으로 안심해야 했단다.
두 달간의 짧은 어학연수(?)를 끝내고 혼자 비행기를 타고 오는 너를 마중 나갔을 때, 하와이 원주민보다 더 까맣고 머리는 덥수룩한 너를 만났지. 두 달 만에 '누구냐 넌!'이라고 물을 만큼 낯선 사람이 되어있었단다. 엄마 아빠를 보고도 쭈뼛쭈뼛. 100m 밖에서부터 뛰어와 와락 안기는 공항 재회씬을 기대했던 엄마는 실망했지. 엄마 껌딱지였던 네가 변한 게 그때였을까? 아무튼 그 이후로 독립적인 성격을 갖게 된 것은 맞는 것 같다.
영어 성적이 괜찮게 나왔을 때 공부법을 물으면 넌 답하지.
"나, 하와이 어학연수 다녀온 사람이야~"
꼴랑 두 달 캠프 다녀온 게 다지만 네 인생에 큰 사건이긴 했나 보더라. 그때의 영상을 돌려보니 외국 친구들과 뭐라고 대화하며 웃고 있다. 어려서의 작은 경험이 한 사람의 인생에 큰 자극이 될 수 있음을 너를 통해 본다. 특히 자신이 선택한 길일 땐 더더욱.
올해의 모든 행보도 결국 너의 선택이자 너의 길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그게 어떤 결과를 낳든 모든 길이 곧 경험이고 너의 다음을 위한 자극제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