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100일 기도 자서전 #13. 2015년 열두 살 때
초등학교 5학년이 된 너는 전교 부회장 선거에 출마했다. 다섯 명의 후보 중 기호 4번이었지. 네가 적극적으로 나가고 싶어 했던 기억이 없다. 아마도 적극적이었던 형의 전철을 밟았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권유가 작용했겠지. '나가볼래? 나가볼까? 나가보자~'로 이어진 권유가 있었을 테다. 아마 너는 거절하지 못하고 마지못해 나갔을 것 같구나. 결국 떨어지고 말았지만 엄마는 좋은 경험이었다며 너를 위로했을 테고 말이야.
'뭐든 경험하는 게 중요하다'는 엄마에게 너는 말하곤 했다. 제발 경험 좀 그만하고 싶다고. 욕심과 열정이 가득했던 형이 경험했던 것을 너에게도 똑같이 해주고 싶었는데 너는 형과 다르다고 했지. 형이 했던 대부분의 것들을 거부했단다. 친구들과 함께하던 축구, 야구나 숲 체험 등을 제외하고 "형도 했으니까 너도 해보자!"라고 하는 것들은 모두 싫다고 했단다. 엄마는 아쉬워했고 너는 강하게 거부했지.
서서히 엄마도 인정해야 했다. 너는 형과 다르다는 것과 공평하게 키운다는 게 공평한 경험을 하게 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걸 말이야.
형과 달리 네가 적극적으로 열심히 했던 것은 '영재학급'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방과 후 과학 실험과 수학 연구를 하던 영재학급을 너는 꽤 재미있어했지. 산출물 발표 대회를 준비한다며 일반 생수로 밥을 짓는 것과 탄산수로 밥을 짓는 것의 차이점을 실험했던 일이 떠오르는구나. 형은 운동장에서 땀 흘리며 축구를 할 때 너는 친구들과 책상에 앉아 만들기를 하고 실험을 했다. 어쩌면 5학년 때부터가 너와 형의 관심사가 확연히 달라지던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수학에 남다른 재능을 처음 보인 것도 이 시기였다. 학원 진도를 잘 따라가다 보니 학원에서는 욕심을 냈지. 경시대회 준비반에 들어가고 중학교 수학 선행도 같이 하는 게 어떠냐고 했다. 엄마는 싫더라. 이제 5학년인 너에게 중학교 선행이라니. 바로 학원을 그만두고 6학년 말까지 수학학원을 쉬었지. 그때는 그게 잘 한 결정인가 싶어서 불안했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것만큼 잘한 결정도 없구나. 그 당시에 선행을 열심히 하던 아이들이 중학교, 고등학교 가서 번아웃되던 걸 보면 말이야.
친한 친구들과 심한 갈등을 겪었던 적이 있지. 자주 어울려 놀다 보니 생긴 일이었던 것 같다. 독립적이고 자존심이 센 성격인 네가 친구들과 갈등을 겪을 때마다 "네가 참아라. 네가 이해해라."라고 했던 엄마의 말이 갈등을 심화시켰다. 어쩌면 너는 친구들에게 화가 나기보다는 늘 네 편이 아닌 친구들 편을 드는 엄마에게 화가 났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어느 날인가 엄마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친구들과 더는 놀고 싶지 않다며 화를 내는 너에게 엄마는 단호히 말했다. 이제 다시는 그 친구들과 놀지 말라고. 엄마도 더 이상은 너를 힘들게 하는 친구들과 놀라고 하고 싶지 않다고 말이지. 이후로 며칠 동안 친구들과 단절된 채 홀로 놀던 너는 결국 다시 친구들을 불렀다. 심심함이 컸을 수도 있고 화가 가라앉았기 때문이겠지만 엄마는 엄마가 네 마음을 알아주고 다독여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엄마는 내편'이라는 믿음을 조금은 주었기 때문이라고 말이야.
입시를 치르는 동안, 엄마에게만큼은 지치고 힘든 내색을 하던 네가 고마웠단다. 엄마가 네 편이라는 믿음을 가져주어서, 그게 참 고마웠다.
할머니, 고모와 함께 홍콩 여행을 갔지. 우리 가족끼리만 여행 가는 걸 늘 마음에 걸려하던 아빠의 계획이었단다. 홍콩 여행 중 마카오로 넘어가 마카오 타워 61층에서 너와 형이 스카이워크를 체험했던 게 기억난다. 튼튼하다고는 해도 외줄 하나에 몸을 맡긴 채 건물 외벽을 따라 걷는 익스트림 스포츠였어. 게다가 그날은 비가 왔지. 중2였던 형에게 찰싹 붙어 의지하면서도 씩씩하고 용감하게 한발 한발 떼던 너였다. 네게서 보였던 건, 자존심이나 허세보다는 의연함이었지. 호들갑 떨거나 안절부절, 전전긍긍하지 않고 침착하게 나아가는 너.
입시를 치르는 지금의 너도 늘 그렇다. 의연하지. 힘들고 지쳐 보이기는 해도 불안과 초조는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얼마만큼 할 수 있는지를 은근히 즐기고 기대하는 것 같지. 그래서 좋은 결과가 있기를 더욱 간절히 기도하게 된단다. 즐기고 기대한 만큼 즐겁고 행복한 시간으로 기억되었으면 하기 때문이란다. 61층 높이에서 외줄에 의지해 투명한 바닥 위를 걸었던 그때의 짜릿했던 기억만큼이나 올해가 짜릿하고 즐거운 경험이기를...
우리 가족이 처음 제대로 가족사진을 찍었다. 어느 집에나 하나씩은 걸려있는, 온 가족이 흰 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찍는 가족사진을 우리도 찍었지. 중2병이 제대로 든 형과 수염이 거뭇거뭇 나기 시작하는 너와 함께 온갖 어색한 포즈와 표정을 지어가며 수십 장을 찍었다.
불과 7년 전인데, 사진 속 엄마 아빠는 젊고 너와 형은 어리고 여리구나. 지난여름 사촌 형 결혼식 때 찍었던 가족사진과 비교해보니, 그새 엄마 아빠는 나이 들었고 너와 형은 생기, 활기가 넘쳐 보인다. 강물이 흘러가듯 우리네 삶도 쉼 없이 흘러간다는 것을 실감하는 것은 결국 사진을 통해서라는 생각이 든다. 지나온 시간들을 기억이 아닌 사진 기록으로 확인하는 것, 나의 나이 듦이 너와 형의 자람이라고 생각하면 그저 기쁘다. 그래서 엄마는 수시로 너와 형의 사진을 찍어둔단다. 싫다고 기겁을 하지만 먹을 때, 잘 때, 웃을 때, 멍 때릴 때. 모든 것을 남겨둔다. 나중에 또 기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