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금지곡 14. 진진자라 (태진아)

수능 100일 기도 자서전 #14. 2016년 열세 살 때

by 늘봄유정

D-35 ( 2022.10.13)

3월 13일에 너는 1학기 버킷 리스트라며 총 10개의 다짐을 썼더구나.

1. 1학기 때 기말고사 중에 사회 90점을 넘어보고 싶다.

2. 영어 단어 시험에서 다른 애들을 제쳐서 1등이나 100점을 맞아보고 싶다.

3. 이번 학기에는 아이패트를 떨어뜨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계속 깨진다.

4. 내 생일 파티를 최고의 생일파티로 만들고 싶다.

5. 친구들과 밖에서 노는 시간도 늘리고 싶다.

6. 친구들과 부모님과 여행 한 번 갔으면 한다.

7. 영어 숙제를 꾸준히 해보고 싶다.

8. 게임을 형과 함께 많이 해보고 싶다.

9. 방 정리도 한 번 하고 싶다.

10. 이런 숙제도 꾸준히 하고 싶다.


이 리스트를 작성할 때 어떤 마음이었을지 궁금하더구나. 뒤로 갈수록 꾸역꾸역 쓰는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놀고 싶다거나 시험을 잘 보고 싶다는 욕심은 진심이었겠지. 이 중 얼마나 실천을 하고 어느 정도의 성취를 했을까.

네 올해 버킷리스트는 엄마도 잘 알고 있지. 원서를 넣은 대학 중 가장 원하는 대학에 꼭 합격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자주 이야기하니까. 대학에 합격하면 운전면허를 따고 싶다 했고 라식 수술도 하고 싶다고 했지. 엄마는, 그런 것들은 대학 합격 여부와 상관없이 할 수 있는 것들이라 했고. 무엇이든 소망한다는 것, 꿈을 꾼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소중하지만 너의 진심 어린 욕심은 꼭 이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년에는 새로운 꿈, 버킷리스트를 꾸었으면 해.


D-34 ( 2022.10.14)

생일파티를 최고의 생일 파티로 만들고 싶다던 소원을 들어주었다. 절친 여섯 명을 초대했지. 치킨을 잔뜩 시키고 과일, 과자, 케이크까지 구색을 갖추었다. 생일파티의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었다. 바로 게임파티. 너와 친구들은 좁은 컴퓨터 방 곳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지. 우리 집 컴퓨터 두대와 친구들이 가져온 노트북을 펼치면 우리 집은 순식간에 PC방이 됐다. 고성과 환호가 들리기도 했지만 작전을 지시하거나 책망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아! 거기로 가지 말라고! 제발 내 말 좀 들으라고! 그러다 우리 다 죽는다고!"

"나 이제 다시는 너랑 게임 안 해!"

이런 대화가 들릴 때면 엄만 마음을 졸였다. 생일 파티가 파국으로 치달을까 염려됐지. 그런데 남자아이들은 그 판이 끝나면 서로를 향해 퍼부었던 악담도 다 리셋되는가 보더라. 언제 싸웠냐는 듯 다음 판을 이어갔지. 누군가 하드 캐리를 하면 박수를 쳐주기도 하고 말이야.

사실, 생일에만 그런 진풍경이 펼쳐진 건 아니었어. 우리 집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었지. 생일은 그냥 공식적인 이유가 되었을 뿐. 좁은 방안에 온 집안의 의자를 끌어 모아놓고 앉아 시끌벅적하게 게임을 하면 엄마는 부엌에서 간식을 만드느라 바빴던 시절이다.


요즘 네가 가장 많이 하는 말.

"빨리 수능 끝나고 게임 실컷 하고 싶다..."

독한 녀석... 고등학교 입학과 동시에 그 좋아하던 게임을 명절과 방학에만 하고 고3이 되어서는 그마저도 끊어버렸지. 좋아하는 게임을 참아가며 자신을 하드 캐리 한 너를 존경한다. 수능이 끝난 날, 홀가분한 마음으로 게임하며 실컷 환호하렴.


D-33 ( 2022.10.15)

네가 처음으로 디베이트를 배웠던 해구나.

경기도 교육청의 '꿈의 학교'가 생긴 첫해였지. 2015년, 동아리 지원 사업으로 시범 운영되었던 것이 꿈의 학교로 자리 잡았다. 시범운영 때는 형이 참여해 디베이트를 배웠는데,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지. 너는 친한 친구들과 함께 참여했고 엄마도 이때 처음으로 디베이트를 접하고 배워 자격증까지 따게 되었다.


어쩌면 너는 이때 디베이트를 배우게 된 걸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이후로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디베이트와 관련된 활동을 자의 반 타의 반 지속적으로 해야 했으니 말이다. 생기부 한구석을 채운 디베이트 봉사활동과 동아리 활동이 고입과 대입에 얼마나 도움이 됐을지 모르겠지만 6학년 때 꿈의 학교와 중학교 3년간 엄마에게 배웠던 디베이트를 너는 썩 좋아하지는 않았지. 하지만 말이다. 엄마는 스티브 잡스가 말했던 'connecting the dots'를 신뢰한다. 네가 좋아하건 좋아하지 않건 경험했던 모든 순간들이 모여 오늘의 너를 일궜다고 믿지. 너는 동의하지 않겠지만 오늘의 너를 만든 것 중 상당 부분 디베이트의 힘이라고 믿는단다. 믿거나 말거나...


D-32 ( 2022.10.16)

영재학교 산출물 대회에서 1등 한 네가 학교 대표로 용인시 대회에 나갔다.

2등을 한 친구와 2인 1조가 되어 함께 나갔어. 그때부터 너는 이런 걸 참 귀찮아했지. 뭔가를 한참 동안 연구하고 준비해서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활동을 말이야. 그러면서 또 꾸역꾸역 했고 심지어 잘했어. 잘 못하면 권하지도 않고 기대도 안 할 텐데 말이다.

용인시산업진흥원과 추진하던 '사물인터넷 미래인재학교', '사물인터넷 방학캠프'등에 참여했던 해다. 아직 코딩 교육이 활성화되기 전, 지인의 소개로 접하게 된 프로그램이었지. 거기서도 넌 불평 한마디 없이 해야 할 것들을 잘 해냈다. 극성스러운 엄마 탓에 너는 귀차니즘을 누릴 시간도 없었지만 엄마 눈에는 너도 조금은 즐기는 것처럼 보였어.


우리나라 입시제도, 특히 수시가 학생들을 못살게 군다, 정말 지긋지긋하다고 하면서도 넌 고등학교 3년을 묵묵히 그러나 열심히 살더구나. 대부분의 과목에서 수행 만점을 받아왔던 너였지. 남학생들은 꼼꼼한 여학생들에 비해 수행을 챙기기 힘들다는 학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너란 녀석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지. 학교는 싫지만 지각, 결석 한번 없고 그 흔한 가정학습도 쓰지 않은 채 열심히 다니는 학생. 학교가 학생들을 가만히 안 둔다고 투덜대면서도 누구보다 열심히 가만히 안 있는 학생.

그런 너이니, 어려서부터 그런 너였으니 엄마가 극성을 떨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조금은 나를 이해해주길 바란다.


D-31 ( 2022.10.17)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너는 꽤 좋아했단다. 존경했지.

30대 중후반의 남자 선생님이셨는데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경험을 주기 위해 애쓰셨던 분으로 기억한다. 네가 했던 영재학급과 사물 인터넷 미래인재 학교를 담당했던 분이기도 했지. 네가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해 준 분이었다. 성실하고 밝고 유머감각도 풍부한 분이셨으며 실력과 인성을 갖춘 분이었지.

졸업식날, 학부모들과 학생들에게 마지막으로 해주신 말씀을 엄마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단다. 마치 엄마의 담임선생님이라도 된 것처럼 감동받고 존경하게 됐지.

"너희들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힘든 일이 많을 거야. 이유 없이 코피 터지게 맞는 날도 있을 거다. 울고 싶으면 울고! 코피 나면 쓱 닦고!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면 되는 거다."

힘들 땐 참으라든지, 더 힘을 내라든지 등의 조언보다 훨씬 강렬하게 위로가 되는 말씀이었다.


올해가 어쩌면 네 인생에서 가장 큰 변곡점이 될지도 모르겠다. 성공을 기원하지만 실패를 맛볼 수도 있겠지. 그렇더라도, 실컷 울고 나서 툭툭 털고 일어나자. 긴 인생, 그렇게 살자.


*덧 : 각 챕터의 이름은 수능 금지곡 제목입니다.

수능 전에 들으면 수능 시험날 온종일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곡들이죠.

그 곡들의 제목을 상기시킴으로써, 금기에 과감히 맞서겠다는 엄마의 의지입니다.


진진자라 - 태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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