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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Sep 03. 2022

흰머리가 뭐!

백 열여섯 번째 시시콜콜

운전석 선바이저를 내리다가 확인하게 되는 거울 속 제 얼굴은 나날이 늙어갑니다. 서글픔에 불을 지르는 것이 있으니 드문드문 솟아오르는 흰머리입니다. 희한하게도 운전석에만 앉으면 흰머리가 잘 보이더라구요. 신호등 빨간불 앞에 잠깐 섰을 때만 뽑아도 대여섯 가닥은 우습지요. 귀 뒷머리를 살짝 들어 올리면 흰머리 노다지 밭이 펼쳐집니다. 눈을 질끈 감고 머리를 슬쩍 내려야 합니다. 


흰머리는 뽑지 말라고 하더군요. 모낭에서 나오는 머리카락의 개수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억지로 뽑다 보면 모낭이 손상되고 모발 생성 주기에 영향을 주어 더 이상 모발이 자라나지 않을 수 있다고 말이죠. 그렇다고 염색을 하자니 건강에 안 좋을까 염려가 됩니다. 인위적인 처치를 하는 것이 탐탁지 않기도 하지요. 늙어가는 '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문제는, '염색을 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사회의 편견과 차별'입니다. 

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은 '자기 관리 안 하며 고집스러운 꼰대'로 비칠지 모릅니다. 백발로 고르게 쇤 머리라면 모를까 흰머리가 무질서하게 섞인 머리는 정갈해 보이지도 않지요. 

'염색을 하지 않은 사람'이 나이 든 여성이고 앵커라면 편견과 차별은 극대화될지 모릅니다. 나이 든 남성 앵커의 백발을 대하는 것과는 분명, 다르리라 생각합니다. 실제 그런 일이 최근에 일어났지요.


캐나다의 CTV 간판 앵커였던 리사 라프람(Lisa LaFlamme)은 자신의 SNS에,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를 받았으며 "내 선택이 아닌 방식 때문"이라고 올렸습니다. 해고사유가 '염색하지 않은 흰머리'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파장은 컸습니다. 패스트푸드 업체인 웬디스 캐나다는 회색 머리로 변신한 웬디 그림을 트위터에 게재했습니다. '스타는 머리색에 상관없이 스타다'라며 리사 라플람을 해시태그로 달았지요. 도브 캐나다도 로고인 비둘기를 회색으로 바꾸고 "나이 듦은 아름답다"는 광고를 올렸습니다. 도브는 "나이 든 여성들이 직장에서 배제되고 있다"며 "여성들이 그들 자신의 방식대로 아름답게 나이들 수 있도록 우리 함께 응원하자"라고 했습니다. 30년 넘게 뉴스를 진행했던 여성 앵커의 갑작스러운 해고는, 그녀의 백발, 나이, 성별과 함께 논란이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Removing the longtime anchor reflects massive changes to traditional broadcasting in Canada." (오랜 기간 함께한 앵커를 해고하는 것은 캐나다에서 전통적인 방송에 엄청난 변화가 일고 있음을 반영한다.)

CTV의 모회사, Bell Media CEO의 위와 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각계각층의 비난이 이어졌습니다. 

후임 앵커인 오마 사체디나(Omar Sachedina)도 공격의 대상이 되었지요. '영광이다, 기쁘다'라고 올린 그의 트위터에 '부끄러운 줄 알아라', '아직 자리도 안 식었다!' 등의 댓글이 달렸죠. 벨 미디어의 처신은 무슬님 남성이 캐나다 최대 방송사의 앵커가 되는 영광스러운 순간까지 빼앗았다는 비난도 꽤 인상적이었습니다. 백발, 여성, 나이에 가려진 것이 '능력'이나 '가능성'이 아니라 '종교'임을 부각하는 것도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았거든요.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킨 앵커를 해고하는 것은 마음 아프지만 급변하는 미디어 시장에 부응하고 다양성의 가치를 실현시켜줄 앵커로의 교체가 불가피하다'는 인상을 벨 미디어가 주었다면 조금은 아름다운 마무리와 환영받는 시작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아쉽습니다. 동시에, 성별, 나이, 인종, 종교를 비롯한 다양성은 여전히 극복하기 힘든 이슈라는 것도 답답하고요. 

흰머리를 보며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한, 

흰머리 앞에서 당당하지 못한 저도, 답답합니다~


오늘의 시시콜콜 디베이트 Topic은...

< 리사 라프람을 해고한 벨 미디어의 결정은 정당하다. >

< 흰머리는 그대로 두어야 한다. >

여러분은 찬성가요, 반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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