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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Jun 24. 2022

가로수를 대신했던 해바라기

백 열다섯 번째 시시콜콜

동네 사거리 신호등 앞에 서 있는데 제 옆에 저보다 키가 큰 낯선 아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원래 이 자리에 있던 애가 누구지? 뭔가 이상한데?'라고 생각하며 주변을 살폈지요. 인도 가장자리를 따라 쭉 늘어선 벚나무 사이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낸 녀석은.... 해바라기였습니다.


그제야 생각났습니다. 얼마 전 같은 자리에 무릎 높이 정도의 풀이 자라고 있었던 것을 봤었지요. 가로수가 뽑힌 자리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식물이 자라고 있고 정성스레 울타리까지 쳐 있었습니다. <만지지 마시오>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는 걸로 봐서 집사가 있는 게 분명했지요.

'빈 땅 증후군이 여기까지 손을 뻗었을 줄이야... 어떻게 가로수 뽑힌 자리에까지 뭘 심을 생각을 다했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이지 대단해... 근데 저건 정체가 대체 뭘까?'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신호가 바뀌어 잊고 지낸 터였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훌쩍 자라 제 키를 넘는 해바라기가 되어 있었던 거죠. 밭 한가운데도 아니고 뉘 집 담벼락도 아닌 곳에 옹기종기 모여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해바라기. 그 모습이 하도 신통방통해 사진을 찍었습니다.


가로수를 다 뽑아버리고 인도를 따라 해바라기를 쭉 심는다면 '해바라기 마을'로 불리며 관광명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엉뚱한 상상도 잠시 했지요. 남편지인들에게 사진을 보냈습니다. 이 생경한 풍경이 지루한 일상에 작은 생기를 불러일으키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해바라기가 자진 철거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민원이 접수되었고 공무원의 전화를 받은 해바라기 집사(이발소 사장님으로 밝혀짐)가 뽑아냈다고 했죠.

'해바라기를 보면 괜스레 미소가 지어졌었는데 너무 아쉽다, 뭘 그런 걸로 민원을 넣냐, 그래 봐야 한 철 보고 즐기는 식물 아니냐, 그 자리는 원래 가로수가 죽어나가는 자리였는데 해바라기가 잘 자라주어서 얼마나 보기 좋았는지 모른다, 해바라기씨를 수확해서 팔겠다는 것도 아닌데 너무하다, 시민정신 투철한 사람이 너무 많다...'

여기저기 아쉬운 마음이 넘쳤습니다.


신고가 들어갔다는 말은 씁쓸했지만, 한편 이해 못 할 바는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도로 환경, 도시 미관 측면에서 보면 병충해 문제도 있을 테고 머지않아 시들어 흉물스러워진다는 문제도 있을 겁니다. 공공시설이 사유물처럼 관리, 훼손된다는 문제도 간과할 수 없지요. 그러니 민원인은 시민으로서의 할 도리를 한 셈입니다.


제 갈길 바쁜 사람들만 넘쳐나던 사거리 한편에 가로수를 대신하는 해바라기가 있었습니다.

신호가 바뀌는 것에도 아랑곳 않고 사진을 찍는 사람들, 마스크로 가려졌지만 입가의 미소가 가히 짐작되는 얼굴들. 정겨운 풍경이었습니다.

아직 남아있었다면 장맛비를 흠뻑 맞고 훌쩍 자란 해바라기를 구경할 수 있었을 텐데, 잠깐의 해프닝으로 끝나버린 것이 아쉽습니다.


1년 만에 찾아온 오늘의 시시콜콜 디베이트 Topic은...

< 가로수 자리에 심어졌던 해바라기, 철거가 마땅하다. >

여러분은 찬성가요, 반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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