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백일은...

전역까지 D-100

by 늘봄유정

오늘로 백일이 남았구나.

2021년 7월 19일. 짧은 머리를 수줍게 비비며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던 네가 벌써 제대라니.

입대 첫날, 전역까지 548일 OO시간 OO분 OO초 남았다고 알려주던 <더캠프> 앱에 오래간만에 들어가 보았다.

< 전역까지 99일 8시간 31분 30초 남았습니다.>

갑자기 심장이 콩닥콩닥 뛴다. 지나온 시간에 비하면 백일은 얼마나 짧은가. 448일이 지났는데 그깟 백일이 대수겠니. 네 동생의 수능 백일을 세기 시작한 게 엊그젠데 벌써 3분의 2가 지났다. 그러니 너를 기다리는 백일쯤이야...


더디 가던 초반 백일까지를 돌아본다.

네가 훈련소에 있을 때, 연락도 안되고 소식도 알길 없던 그 막막했던 일주일. 훈련병 사진이 더캠프에 올라왔을 때, 네가 처음으로 전화를 했을 때가 기억난다. 기억은 희미한데 감정은 살아있어 울컥, 올라온다. 이제는 무뎌져 네 전화 한 통, 네 문자 하나에 반응하지 않던 울컥인데 말이야.

자대 배치받고 일과 후에 네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을 때, 네가 20분이 넘도록 이야기를 풀어놓았을 때. 감동적이었다. 캄캄한 주방에 앉아 불도 키러 못 가고 너와 대화를 했지. 너도 알다시피 우리 집이 어느 위치에서는 전화가 먹통이 되잖아. 혹시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네 한마디를 놓칠까 봐 20여 분 동안 식탁의자에 내 몸을 꽁꽁 묶어놓았지.

입대 백일이 되던 때, 네가 해외 직구한 물건이 집으로 날아왔다. 전화만 자유로운 게 아니라 폰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가능한 세상에 살고 있는 너는, 부대에서 해외 쇼핑까지 즐기는 여유를 누리고 있었지.


입대 이백일쯤엔 부대에 새로 온 군의관에게 사랑니를 뽑았다며 자랑을 했고, 삼백일쯤엔 네 생일을 맞아 면회를 간 엄마 아빠에게 듬직한 모습으로 부대 주변 구경을 시켜줬지. 사백일쯤엔 전역하는 선임들과 함께한 사진을 보내왔으며 부산으로 동기, 선임과 외박 나간다며 즐거워했다. '300 워리어' 본선 진출을 앞두고 열심히 훈련 중이라고 했으며 집으로 배송될 군사경찰대 단체복을 다시 택배로 보내달라는 부탁을 했지. 군에서 보내는 마지막 명절, 추석이 지나자 '300 워리어' 출전을 무사히 마쳤고 포상 외박까지 다녀왔고, 그리고는 통 소식이 없더라.

이후 소식은 간부님들이 올려주시는 밴드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전역하는 선임과 함께 찍은 사진, 동원훈련이 끝난 후 진행된 음악회에서 걸그룹에 열광하는 사진, 식당 외 급식이라며 유가네닭갈비 볶음밥을 즐겁게 먹고 있는 사진. 건강하고 밝은 얼굴로 생활하고 있는 네 모습에 안심을 했지.


앞으로 남은 백일.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할 시기라는 아빠의 말대로, 제 날짜에 건강하게 제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자. 이제 엄마가 할 기도는 그것뿐이다. 군에 잘 적응하기를 바라던 기도는 모두 이루어졌으니 이제는 무사히 완주하기를 기도하마.

희미해져 가던, 너무 무덤덤해져 가던 너를 향한 그리움이 다시 고개를 쳐든다. 잘 있는 거 알았으니 보고 싶은 마음도 사라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곧 만난다고 생각하니 더 보고 싶다. 얼마 안 남았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더 급해진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하루하루 정성껏 세어가며 차분히 기다리마. 그렇게 우리, 백일 후에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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