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고무신 일기 번외편 #1.
"다음 주 월요일, 다들 시간 어때? 나 자격증 시험 합격한 거 축하할 겸 저녁을 살까 하는데? 우리 가족들 도움이 컸으니 대접을 하고 싶어."
"다음 주? 둘째 중간고사 기간인데..."
"어차피 저녁은 먹어야 하잖아. 맛있는 돼지갈비 먹으러 가자."
"주말에 먹으면 안 돼?"
"주말 이틀 동안 출근을 해야 해. 월요일에 먹자."
남편의 갑작스러운 외식 제안에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고 보니 케이크에 초 켜고 축하파티도 못해줬네...'
자격증 시험 합격을 제대로 축하해주지 못했다는 사실에 미안함이 올라왔다.
"그럽시다~"
"맛있~~ 는 김치 먹고 싶다. 새김치 없어?"
"갑자기 웬 새김치 타령?"
"묵은 김치밖에 없는 것 같아서. 당신이 만든 맛있는 김치 먹고 싶어서."
"요즘 배추가 얼마나 비싼 줄 알아? 절임배추는 더 비싸고, 그나마 파는 곳도 별로 없어."
"에잉... 그래도 새김치 만들어주라."
"너무 바빠서 김치 만들 시간도 없어. 수능 끝날 때까지 그냥 묵은 김치 먹자. 조금 있으면 김장철이라 배추도 싸질 거야."
"피... 새김치 먹고 싶은데..."
"나도 새김치 좋아해. 그래도 지금은 아니다. 좀 참어."
남편의 김치 투정이 당황스러웠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먹던 남편이 갑자기 김치 타령을 시작한 것이다. 그것도 하필 몸도 마음도 바쁜 이 시기에 말이다.
'온 정신이 둘째 입시에 쏠려있는 아내의 관심을 받고 싶은 건가? 왜 저리 김치 갖고 난리지? 알다가도 모르겠네 진짜.'
"당신이 만든 매운 파김치 다 먹었나?"
"다 먹었지."
"나 그거 먹고 싶은데? 또 만들어주면 안 돼?"
"파김치? 어제는 배추김치 타령이더니 오늘은 파김치야?"
"파김치도 먹고 싶고 양념 게장도 먹고 싶어. 하얀 쌀밥에 얹어서 먹고 싶다고."
"아니 진짜 뭘 잘못 먹었나. 요즘 왜 그래? 안 하던 김치 타령을 왜 그렇게 하는 거야?"
"나 그런 사람 아닌 거 알잖아. 김치 투정하는 사람도 아니고 양념게장 사달라는 사람도 아니잖아."
"그러니까. 안 그러던 사람이 왜 그러냐고."
"먹고 싶어~"
점점 심해지는 남편의 투정에 짜증이 올라왔지만 결국 이른 아침 배송으로 배추김치 4kg을 주문했다.
'저렇게 먹고 싶다는데 사서라도 주자. 사람일 내일 모른다는데, 혹시라도 잘못되면 내가 얼마나 후회하겠냐. 그 먹고 싶다던 김치 하나 안 해줬다고 스스로를 얼마나 원망할 거야. 김치 그게 뭐라고...'
"이 김치 산거야?"
"응. 새김치 먹고 싶다며."
"으.... 맛없어. 당신이 만든 새김치 맛이 아니야."
"으으윽!!! 엄마들이 맛있다고 추천해 준 거란 말이야. 맛있는데 왜!"
"파김치는? 파는 내가 다듬어줄 테니까 파김치 담가줘."
"저 사람이 진짜 왜 저럴까? 내일도 출근한다면서 언제 파를 다듬어 준다는 거야? 맨날 말로만 그러더라?"
"파김치 먹고 싶은데... 게장도..."
남편의 투정으로 나의 인내심에 한계가 왔지만 결국 쪽파 두 단과 양념게장을 주문했다.
"오~~ 진짜 쪽파 김치 담그는 거야?"
"담가달라며! 하도 성화길래 담그는겨~ 수업 준비하고 반찬 좀 만들어두느라 바쁜 마누라한테 꼭 파김치 노래를 불러야겠어? 나 지금 엄청 피곤하다고. 파김치 만들기 전에 내가 파김치가 되겠어..."
"벌써 밤 열 시인데, 언제 담그려고?"
"찹쌀풀 쑤어서 양념도 만들었고 쪽파도 다듬었으니 버무리기만 하면 돼. 좋냐?!!!!"
"맛있게 담가줘~~"
"으이구... 알았어!"
온갖 구박을 들으면서도 저렇게 꿋꿋하게 파김치를 주문하는 남편이 야속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파김치가 되어 들어온 남편이 안쓰러웠다.
'그래... 얼마나 먹고 싶으면 저렇게 투정을 부리겠냐. 얼마나 아내의 관심을 받고 싶으면 저러겠냐...'
그런데도 남편을 향해 내뱉는 말에는 계속 날이 섰고 마음은 뾰족해졌다.
'그래도 그렇지 둘째 입시로 정신없는 와중에 꼭 이래야 해? 나 참...'
"오늘, 우리 가족 저녁 먹기로 한 거 잊지 않았지? 당신 수업 끝나고 오면 몇 시야? 4시 30분? 나도 그쯤 맞춰서 집에 올게."
아침부터 남편은 들떠 있었다. 월요일부터, 그것도 그렇게 이른 시간에 퇴근을 할 정도로 합격 턱을 쏘고 싶어 하는 사람인데 그 마음을 못 챙겨줬다니, 미안했다.
이후로도 남편은 수시로 문자를 보내왔다.
"어디야? 몇 시에 끝나?"
"끝났어?"
"벌써 집에 가는 중?."
시험 합격을 축하하는 저녁 식사이니만큼 카페에 들러 조각 케이크 몇 개를 샀다. 초에 불 붙이며 한껏 오버해서 축하해줘야겠다 마음먹었다. 귀가해서 케이크를 준비하는데 남편에게서 문자가 왔다.
"나도 이제 집 갑니다. 당신이 기뻐할 만한 선물과 함께~~"
짧은 문장에서 묘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설렘? 기대? 들뜸? 정체는 모르겠지만 감지되는 그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 박제해두어야 했다. 일이 벌어지고 난 후에 "내 그럴 줄 알았지~ 촉이 왔지."라고 해봐야 사후확신편향이라고 보일 게 뻔하기 때문이다.
"OO아. 엄마 생각에 말이야. 아빠가 어딘지 모르게 이상해. 로또가 됐거나 크고 좋은 일이 생긴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는 설명이 안 돼. 며칠 전부터 너무 당당하게 김치 타령을 하지 않나 선물을 사들고 집에 온다고 예고를 하지 않나. 굳이 오늘 밥을 산다고 하질 않나. 왠지 오늘 아빠가 우리한테 폭탄선언할 게 있을 것 같아. 두고 봐~ "
둘째 아이는 '정말 그런 게 있을까?'라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잠시 후 남편이 "나 왔어요~"라고 큰소리로 말하며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부엌에서 서프라이즈 케이크를 준비하던 나는 "어서 와요~"라며 남편을 기다렸다.
"여보. 이리 나와봐. 내가 당신 줄 선물을 가져왔는데 혼자 들기 너무 무거워. 이리로 와서 같이 들고 들어가자."
'대체 무슨 꿍꿍이야? 어떤 대단한 걸 준비했길래 저러는 거지? 내 속아준다 속아줘. 어디 한 번 보자!'라는 마음의 소리를 숨기지도 못하고, "어휴. 진짜 도대체 뭐길래 또 귀찮게 하는 거야? 뭔데? 어떤 엄청난 선물이길래 그래? 뭐 명품백이라도 사온 거야?"라고 투덜대며 현관을 지나 중문을 열고 전실로 나갔다.
그곳에는, 그야말로 엄청난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