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금지곡 18. Dolphin(오마이걸)

수능 100일 기도 자서전 #18. 2020년 열일곱 살 때

by 늘봄유정

D-15 ( 2022.11.2)

고등학교 생활이 시작, 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제때에 시작되지 못했지. '전대미문, 미증유'의 사건이라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고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 코로나 때문이었다.

1월 중순, 형의 입시가 끝난 후 강원도 인제, 속초, 고성을 다녀오자마자 심상치 않은 조짐이 보였고 결국 2월 말 대구를 중심으로 급격히 확산되었다. 당시만 해도 코로나19에 대한 공포가 극심했고 딱히 나갈 일이 없는 너와 엄마는 24시간 집콕 생활을 이어갔다. 그때는 일상을 회복하기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 걸릴 것을 예상할 수 없었고 웬만한 사람은 다 걸릴 정도로 확산될 것도 몰랐지. 학교, 학원은 모두 '정지'상태였고 마스크를 구하기도 어려웠으며 외출 자체가 공포였다.


3월 입학은 미루고 미뤄지다 4월로 연기되었고 그마저도 원격수업으로 진행됐다. 5월 중순 이후부터 등교가 시작됐지만 원격수업과 등교 수업이 일주일씩 번갈아가며 이뤄져서 정신없고 붕 뜬 생활이 이어졌다. 대학 새내기가 제일 불쌍하다, 아니다 초등학교 1학년이 제일 불쌍하다, 말들이 많았지만 고등학생 자녀를 둔 엄마 입장에서는 고1도 만만치 않게 안쓰러웠다. 등교를 하지 않는데 시험은 어떻게 칠 것이며 입시에 대한 로드맵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막막했지. '제대로 된 시작'이라는 게 무엇인지, 그런 게 있기나 한 건지 혼란스러웠던 고1이었다.



D-14 ( 2022.11.3)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온라인 클래스를 듣던 네가 까탈을 부렸다. 더 이상 '학교'라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냐는 것이었다. 그해 내내 사흘이 멀다 하고 네게 발병하던 병이 있었으니 검정고시병이 그것이었다.

엄마가 주장하는 사회성이니 교우관계니 하는 것들도 학교를 갔을 때 이야기이지 지금으로서는 그마저도 구현할 수 없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그렇다 치자 그렇다면 내년에는 끝날 것 같으냐. 가지도 않는 학교에서 내주는 무의미한 수행평가에 쏟는 시간과 노력이 아깝다. 그 시간에 차라리 수능 공부에 집중한다면 효율적이지 않겠는가. 예전과 상황이 변했는데 학교는 반드시 다녀야 한다는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논리가 이해되지 않는다.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고리타분한 엄마는 제도권 교육의 끈을 놓는다는 것에 용기를 내지 못했지. 네 말을 들어는 주지만, '생각해보자'라는 무책임한 말만 돌려줄 뿐이었다. 도대체 언제까지 생각만 해야 하는지 답답해하던 너에게 뚜렷한 답을 주지 못했지. 끝이 안보이던 코로나 종식만큼이나 결론이 나지 않던 너의 진로였다.


고3 생활을 마무리하는 지금, 그때를 돌아본다. 그때 자퇴를 했더라면, 그래서 2학년 초에 검정고시를 보고 2학년 말에 수능을 봤더라면.... 네가 제안한 대로 했더라면 지금의 너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코로나로 자퇴생이 매년 급증하고, 연간 57일까지 확대된 가정학습을 신청해 등교를 하지 않는 학생들이 부지기수인 학교. 계속 다닌 것이 맞는 선택이었을까 아니었을까. 다시 돌아간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결국은 입시 결과에 따라 자퇴를 하지 않은 그때 선택의 옳고 그름이 판정되는 걸까?



D-13 ( 2022.11.4)

8월 중순, 네가 다니는 고등학교와 이웃 학교 1학년에서 확진자가 나왔다. 한 학교에서 여러 명의 확진자가 나온 것이 처음이라 신문에 대대적으로 학교 이름이 실렸지.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탄 것은 물론 밀접접촉자를 비롯해 능동감시대상까지 2주 격리에 들어갔다. 한 동네 두 학교의 1학년 전체가 자가격리를 하는 상황이었지. 기사에 달린 댓글에서 이미 두 학교는 공공의 적이 되어있었다. 그런 시기였지. 코로나 확진이 주홍글씨가 되던 때.


누구나 그랬지만 그 시절 학생들의 삶은 참혹했다.

등교하면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아크릴 칸막이 안에서 수업을 들었다. 밥도 혼자 먹고 삼삼오오 모여 수다 떠는 것도 금지되거나 하더라도 편치 않았지. 학원을 그만두는 경우도 많았고 노래방, 피시방에 못 간지도 오래였으며 나가봐야 딱히 갈 곳도 없었다. 원격수업이 있는 날은 하루 종일 집에 갇혀 수업을 듣고 과제를 했다. 친구들과는 톡이나 게임으로만 만날 수 있었고 말이야. 나름 바쁜 하루를 보내는데 부모 눈에는 빈둥대는 것으로 보이니 잔소리가 이어졌다.


그 시기를 다 견뎌낸 너희다. 그 답답함과 억울함, 짜증을 다 참아낸 너다.



D-12 ( 2022.11.5)

너와 내가 본격적인 '회 친구'가 되었던 해다.

회사를 다녀야 했던 아빠, 재수를 하던 형은 엄중한 코로나 시국에도 아침에 나가 밤에 들어왔지만 원격수업을 하는 너와 일이 모두 막혀버린 엄마는 종일 집에 얼굴 맞대고 있었지. 어렸을 때처럼 삼시세끼 함께 밥을 먹는 사이가 되었고, 아빠와 형은 별로 안 좋아하는 회를 둘이서만 먹는 날이 잦아졌다. 급기야 '우리는 회 친구'라고 말하게 됐다.


어렸을 때 너는 엄마와 살 떨어지는 걸 유난히 싫어했다. 밥 먹느라 두 손이 묶여있으면 엄마 다리 위에 자기 다리 한쪽이라도 걸쳐놔야 맘 편해하던 녀석. 귀찮지만 엄마니까 참고 넘겼다. 어느 순간 컸다고 살 비비는 걸 멈추길래 섭섭도 하고 편하기도 했지. 미처 몰랐다. 다른 방식으로 치대고 있다는 걸. 질문도 많고 투정도 많이 부리는 고딩이 된 거지.


"뭐해?"

"왜 그래?"

"무슨 반찬해?"

"무슨 글 써?"

엄마의 사소한 일상에 대한 질문부터,

"시험은 왜 5일씩이나 보지?"

"공부는 왜 할까?"

"왜 성적으로 사람을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어떻게 하면 입시로 줄 세우는 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걸까?"

세상에 대한 온갖 불평불만까지 늘어놓았다.


식탁에 앉아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내 앞에 네가 쓰윽 나타나 앞에 앉으면 마음의 준비를 해야 했다. 하던 일을 멈추고 진지하게 들어주기 위해 엄마는 너 몰래 심호흡을 해야 했지.

"공부는 왜 할까?"

"왜 하는 것 같아?"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안 할 수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네~ 넌 뭘 안 하고 싶은데?"

"내 몸과 마음이 힘든 거."

"그걸 선택할 수 있으려면 공부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러니깐, 왜 그러기 위해 공부가 필요하다는 건지 이해가 안 간다고..."


유치원 다니던 시절, 너와의 대화를 적어놓았던 "마주이야기"가 떠올랐고 < 고등학생 아들과의 마주이야기 > 매거진을 코로나 덕에 쓰게 됐다.



D-11 ( 2022.11.6)

2020년 10월쯤이었다.

학교 생활에 대한 피로와 회의감, 진로에 대한 고민이 극에 달한 네가 어깨를 들썩이며 엉엉 운 것이 말이야. 단순히 검정고시병이 도진 정도가 아니었기에 조금만 더 참아보라거나 힘내라는 말 따위로는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지. 그때 마침 재수학원에서 귀가한 형이 너를 보았고 '네가 좀 도와줘~'라는 엄마의 눈짓을 해석하고는 형다운 위로를 건네었다.

"형도 고등학교 때 고민이 많았거든? 공부에는 영 소질이 없는 것 같고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었어. 음악 하는 친구를 보면서 나도 해볼까 생각했는데 그것도 쉽지 않더라. 네가 보기엔 형이 맨날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노는 것 같이 보였겠지만 다 인생에 대해 고민하던 거였어. 그러다가 3학년이 됐는데, 도저히 형 성적으로는 대학 가기 힘들겠더라고. 그러다가, 형이 좋아하는 운동으로 대학을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러니까 너도 많이 고민해봐. 친구들이랑도 이야기 많이 해보고. 일단, 당분간 공부하지 말고 나가서 친구들 만나 좀 놀아."


엄마도 너의 자퇴를 진지하게 고민했고 너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 자퇴 후 6개월이 지나야 검정고시에 응시할 수 있기 때문에 11월 말에는 자퇴 여부를 결정해야 했지. 11월 말까지 고민한 너는 학교에 남기로 결정했다. 이유는, 자퇴하기에는 성적이 너무 아깝다는 거였어. 생각보다 성적이 너무 잘 나온 거야. 이대로만 간다면 상위권 대학 진학이 가능하다는 꿈을 꾸게 된 거지. 그렇게 고민과 방황이 가득했던 1학년을 마무리했다.


3학년 1학기가 끝나고 완성된 네 고등학교 내신을 보며 우리 둘은 1학년 때 성적이 참 아쉽다고 했다. 그때의 방황이 조금 더 빨리 끝났더라면, 아니 없었다면 조금은 더 만족스러운 내신을 받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야. 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그때의 방황과 치열한 고민이 있었기에 2학년 3학년 때 꾸준한 상승곡선 내신을 가질 수 있었다고 본다. 헛된 방황은, 없다.


*덧 : 각 챕터의 이름은 수능 금지곡 제목입니다.

수능 전에 들으면 수능 시험날 온종일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곡들이죠.

그 곡들의 제목을 상기시킴으로써, 금기에 과감히 맞서겠다는 엄마의 의지입니다.


Dolphin - 오마이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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