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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Jan 11. 2023

학부모 이후 부모

[보글보글 매거진] 글놀이 "졸업"

"어머니... 어머니께서 한 번 말씀해 보시면 어떨까요? 교사들 의견은 더 이상 듣지 않겠다고 하셔서요..."

졸업을 일주일 앞두고 열린 학교운영위원회의에서 옆에 앉아 계시던 3학년 부장선생님은 제게 부탁을 하셨습니다. 코로나와 함께 고등학교를 입학한 2004년생들에게는 학교와 관련된 추억이 거의 전무한 실정이니 졸업식만이라도 즐겁게, 코로나 전과 같은 강당졸업식을 했으면 좋겠다는 선생님들의 요구를 교장선생님께서 완강히 거부하셨다는 상황설명과 함께 말이죠. 졸업생 학부모인 저로서도 섭섭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회의가 끝난 후, "위원님들 더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라는 위원장님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저는 조심스럽게 운을 뗐습니다.


"교장 선생님~ 졸업식을 학생들만 교실에서 진행하시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일까요? 뭐가 가장 염려되셔요?"

"아시다시피 코로나가 다시 확산 조짐을 보이고 있는 이 시점에 대면으로 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입니다."

"정부에서는 실내 마스크 해제를 검토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졸업식과 종업식이 끝나면 학생들이 더 이상 등교를 하지 않으니 교내 확산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지 않을까요?"

"이미 결정이 끝난 사안입니다!"

"저희 3학년, 입학도 5월에 했고 1학년은 내내 비대면으로 수업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선물 주신다 생각하시고 강당 졸업식 진행해 주시면 어떨까요?"

"더 이상 하실 말씀들 없으시면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른 3학년 학부모와 위원님들까지 가세했지만 교장선생님의 철옹성을 뚫기에는 어림없었습니다. 교장선생님이 나가 버린 회의실에는 아쉬운 적막감이 돌았지요. 3학년 부장선생님께서는, 학부모들의 건물 진입이 통제된다고 안내문이 나갈 것이니 학교운동장에라도 많이 참석하실 것을 홍보 부탁한다며 미안해하셨습니다.


결국 졸업식은 예정대로 학생들만 각 반 교실에 모여 진행됐습니다. 운동장까지는 갈 수 있다는 소식을 들은 일부 학부모들만 밖에서 추운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렸고, 졸업식이 끝난 후에는 조심스럽게 교실로 올라가 사진을 찍었습니다. 참 밋밋하고 아쉬운 마무리였습니다.

반면 주변 학교들은 모두 강당 졸업식을 거행했습니다. 어떤 학교는 학생은 강당에서 졸업식을 하고 학부모는 각 반 교실에서 그 모습을 시청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이웃 학교 학부모인 제 친구 순자는 며칠 동안 이 사안을 두고 저를 약 올렸습니다.

"자기는 졸업식 못 갔지~ 못 갔지~~ 우리는 강당에 모두 모여서 했다~~ 졸업생 중에 데뷔한 가수가 있어서 축하 공연도 하고 2학년 남학생 셋이서 가수 싸이처럼 공연도 했다~ 열광의 도가니였다~~ 인생 네 컷 사진 부스도 마련해서 완전 축제 분위기였다~~~"

부러움이 가득했지만, 이로써 어찌 됐든 저는 학부모를 완! 전! 졸업했습니다.



예로부터 저는 졸업식이 슬펐습니다. 저의 유치원 졸업식 때, 밤새 울었던 기억이 나네요. 선생님과 헤어진다는 게 참 슬펐습니다. 초, 중, 고 졸업식은 친구들과 떨어져야 한다는 것 때문에 그랬을 겁니다. 예외도 있었습니다. 지금의 남편과 함께 졸업했던 날이었네요. 양가 가족들이 모두 모인 김에 갑자기 상견례를 겸한 식사를 하게 되었지요. 긴장되고 정신없어서 슬플 새도 없었을 테지만, '작별'이라는 말과는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여서 슬플 이유가 없었습니다.


둘이 가정을 꾸리고 첫 아이가 유치원을 졸업했을 때, 아이가 3일 밤낮을 슬퍼하는 통에 저까지 울적해졌습니다. 이후로 아이들의 졸업식 때마다 울컥했는데, 엄마를 앞에 세워두고 편지를 읽어주거나 학교 생활 영상을 볼 때가 그랬습니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그 쪼그맣던 녀석들이 졸업이라니... 하는 마음에 눈물이 또르르...

내빈으로 다른 학년의 졸업식에 참석할 때도 저는 주책맞게 눈물이 났습니다. 짠하대요... 남의 자식이어도 찡했습니다. 특히 고등학교 졸업식은 이 아이들이 사회로 나간다는 생각에 연신 손수건으로 눈을 찍어댔습니다.


그런데 올해, 둘째의 고등학교 졸업식에서는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고 울컥하는 마음조차 생기지 않더군요. 후련함, 시원 섭섭 같은 감정도 일지 않았습니다. 교장선생님에게 삐진 마음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학부모로서의 19년을 마감하며 다시 부모로 돌아가는 날, 저는 꽤 단단해져 있었습니다.


아이들에게 늘 말해왔습니다. 자신이 속한 조직, 사회에 적극 참여하고 맡은 바 소임을 다할 때 얻을 수 있는 것이 많고 성장할 수 있다고 말이죠. 저 역시 때로는 희생하고, 때로는 극성맞게, 때로는 침묵을 택하며  학부모로서의 역할을 열심히 수행했습니다. 여한이 없도록 말이죠. 그래서 졸업식이 슬프지 않았나 봅니다. 미련도 없고 아쉬움도 없고 슬프지도 않은, 그저 부모라는 자리로 돌아가면 그뿐인 날.  


큰 아들의 유치원 졸업식, 뭐가 그리 서러웠을까요...
큰 아들의 고등학교 졸업식, 파 한다발을 선물 받았습니다~
강당 졸업식을 거부하신 교장선생님이지만 평화롭게 마무리...

* 매거진의 이전 글, 김장훈 작가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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