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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배 Jan 11. 2023

서운함과 불안함이 교차한 나의 첫 졸업식

이제 곧 졸업시즌이 다가온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꽤 많은 졸업을 경험했다. 학생이 규정에 따라 소정의 교육 과정을 마친다는 졸업의 사전적 의미처럼 정규 교육제도 틀에 벗어나지 않았던 나는 취업 전까지 계속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직장에 들어왔기에  일이 없는 한 언젠가 또 한 번의 졸업과 마주하리라.


대부분의 졸업은 특별히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그 과정을 마쳤다는 뿌듯함과 새로운 곳에 관한 설렘과 두려움 정도랄까. 그런데 그중에서도 초등학교 졸업은 지금까지도 기억 속에 남아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 이유는 서운함 때문이었다. 그때만 해도 졸업식에는 선생님께서 직접 상을 수여했다. 부모님들이 뒤에서 지켜보는 상황에 무언가를 받는다는 것은 어린 마음에도 기대되는 점이었다. 개근상과 모범상 두 가지가 있었다. 개근상은 알다시피 학교에 빠지지 않으면 누구나 받을 수 있었고, 모범상은 성적이 좋은 학생에게만 수여했다.


학교 성적이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은 어중간한 상황이었기에 모범상은 기대하지 않았었다. 문제는 개근상이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학교는 가야 한다는 어머니의 엄한 교육 철학 덕분에 6년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집을 나섰다. 하지만 초등학교 4학년 때 신장염으로 인하여 일주일간 병원에 입원을 했었다. 아파서 빠진 것이기에 개근상은 당연히 주겠지 했지만 끝끝내 내 이름을 불리지 않았다. 반에서 거의 다 받는 개근상도 나를 비껴갔을 때 얼마나 서운하던지.


부모님은 괜찮다고 했지만 속상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별 일 아닌데 그때는 어린 마음에 표정 관리가 되지 않았다. 그 한을 나중에 중학교 때 개근상으로 풀었지만. 그게 뭐라고 참나. 학교 빠지는 일이 그리 특별하지 않은 요즘 아이들을 보면 더욱 그랬다.


또 하나의 이유는 두려움이었다. 신체 발육이 조기에 진행되는 가족력 탓에 초등학교 시절 덩치가 제법 컸었다. 아쉽게도 그게 끝이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정글 같은 교실에서 힘으론 크게 밀리지 않았다. 쉽게 주먹을 내지는 않았지만 걸어온 싸움은 피하지 않았다.


졸업을 얼마 앞두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날도 학교 끝나고 집에서 쉬고 있는데 '쨍그렁'하는 소리가 밖에서 들렸다. 그리고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급히 나가보았더니 내 또래의 학생 대여섯 명이 집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똘이(집에서 키우던 진돗개)는 세차게 짖어댔고, 나는 옆에 있던 야구 방망이를 들고 뛰쳐나갔다. 놀란 그 무리는 줄행랑을 쳤다. 누군가 하는 의구심 계속 뇌리에 남았다.


다음날 학교에 가보니 반에서 짱이었던 친구 영철이가 심각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는데 길거너편 B초등학교의 3캡(싸움으로 세 번째)을 본인과 내가 때렸다는 소문이 돌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억울했다. B초등학교에 간 적도 없고, 더구나 3캡은 누군지도 몰랐다. 영철이도 마찬가지였다. 무언가 오해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문제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면 C중학교에 입학하는데 그 학교는 내가 다닌 A초등학교와 B초등학교 졸업생이 반반정도 구성되었다. 어제 집에서 만났던 그 무리는 분명 학교에서 힘 좀 쓴다는 친구들이 분명했다. 중학교에서 마주치면 심각한 상황이 일어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부모님께 말씀드리기도 그렇고, 졸업식이 다가올수록 불안한 마음이 눈덩이처럼 불어났었다.


흐르는 시간은 피할 수 없기에 졸업은 나를 스쳐 지나갔고 결국 중학교 입학식 첫날부터 거친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었다. 졸업식 이야기이기에 여기까지만. 안타깝게도 반짝 전성기를 지나 중학교부터는 몹시 심약한 학생으로 돌아가 조용히 지냈다. 오해도 나중에 잘 풀리긴 했다.


아무튼 초등학교 졸업은 그렇게 나의 뇌리 속에 그다지 좋은 기억으로 남지 못했다. 다행히 이어지는 경험은 평범했지만 말이다. 사실 큰 일도 지나고 보면 아무 일도 아님을 종종 깨닫는다.


이제  학교 주변은 졸업식으로 시끌 법석할 것이다. 예전의 틀에 박인 모습이 아닌 개성 넘치고 다양한 졸업식을 마주하곤 살짝 부럽기도 하다. 특별한 추억으로 남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이제는 졸업도 추억 속 흐릿한 단어가 되어버렸네.





보글보글 매거진 1월 2주 글감 주제 '졸업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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