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보글보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영경 Jan 14. 2023

승무원 졸업하기

보글보글 글놀이 1월 2주 "졸업"



나는 보통 그러하듯 8세에 학교에 입학해 대학졸업까지 대략 16년 동안 학생의 옷을 입고 살았다. 그리고 꼬박꼬박 그 공동체에 소속되었다가 나올 때마다 졸업식이라는 것을 해왔다. 졸업식이 끝나면 감옥에서 형기를 마친듯한 해방감을 느꼈고 신나게 책을 버렸다. 가족과 외식을 했을 때도 있었고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축제를 즐긴 때도 있었다. 비록 조용히 그동안을 돌아보는 진지한 의식을 치르지 않았더라 해도 졸업식에 참석했다면 딴생각만 했더라도 그 의식을 치른 것이었다.


의식이라는 것은 사실 아주 번거롭다. 일부러 어딘가에 모아놓고 같은 옷을 입혀두고 한 명씩 인사를 하며 졸업장을 받는 일은 지루한 기다림의 연속이다. 게다가 '축사'는 대체로 결혼식 주례사가 끝나고 빨리 밥을 먹고 싶어 하는 하객들의 마음처럼 콩밭에 가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의식 -리추얼이라고 요즘 흔히들 쓰는 이 말은 정신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특히 ‘졸업식’이라는 의식은 자신이 집중해 왔던 것의 마무리이자 다시 새로운 것의 시작을 기대하는 시간이다. 자신을 위해 마음껏 스스로 축하도 하고, 주변의 축하도 받는 의식을 충분히 치러야 한다. 또 무엇보다 그 시간만큼은 자기 자신과 충분히 연결되어 그동안의 경험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회사도 졸업식을 한다면?

그런데 학교만 공동체가 아니다. 회사도 공동체이기에 그 조직 속에 자신이 녹아들어 회사의 유니폼이 내 피부가 되는 경우도 흔하다. 직업의 특성이 자신의 성격이 되는 경우는 오래 일할 수록 심해진다.

학생이 졸업식을 한 후 ‘너는 이제 더 이상 학생이 아니야 ~’ 하며 졸업식을 통해 교복을 벗듯, 소속된 공동체의 옷을 벗는 것처럼, 어쩌면 퇴사도 소속된 회사의 옷을 벗으려면 졸업식이 필요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년퇴임이면 몰라도 그저 한 회사에서 사직서를 쓰고 나가거나 어떤 이유로 퇴사를 하는 경우에는 그런 의식이라는 것이 아주 간소하거나 없을 수도 있다. 일상적으로 하던 인사 ‘수고하셨습니다’에 ‘그동안’이라는 글자 하나 더 붙은 정도로는 그 의식을 대신하지 못한다.


나의 경우는 두 아이의 임신 휴직이 이어지다 복직교육을 받는 도중 갑작스러운 사직을 하게 되었다. 회사에서는 퇴사자를 위한 감사패를 만들어주셨지만 제작기간 때문에 집으로 배송해 준다고 하셨다.

어쩌다 보니 나는 졸업식, 나를 위한 의식을 잘 치르지 못했다. 사실 퇴사 후 혼자서 그동안을 돌아보거나 할 물리적인 시간은 있었지만 엄마로서 임무를 곧바로 잘 이어가야 한다는 스스로의 압박 때문이었는지 나 자신과 내면의 연결이 자꾸만 끊겼던 것 같다.


퇴사를 할 때 뭔가 상징적인 졸업식이 없었기에 뭔가 미련이 남은 걸까? 나는 곧잘 헷갈려했다.

이제 와서 비행을 하고 싶고 일하고 싶다는 것이 아니었다. 이전 동료들과의 관계 속에 여전히 끼어있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그 생각들이 나 자신을 고통스럽게 했다. 아직 바쁘게 일하고 있는 동기들에게 나 살기 바빠 연락 한번 제대로 못하면서도 여전히 가깝게 느꼈다. 일하면서 만났다 헤어지는 그냥 회사 동료가 아니라 함께 살기도 했던 오랜 친구들이었기에 멀어지는 것 같은 마음이 안타까웠다. 그들 옆에 함께 있을 수도 없는 현실임에도 그저 아쉬웠다.


하지만 나는 현재로도 벅차다. 가족의 일과 엄마로서의 일, 그리고 글친구들과 글방에서 매일 글, 브런치 주 1회 보글보글, 몇개의 독서모임들과 그 외 배우고 있는 수업 등 사직 후 더 몰두하고 있는 읽고 쓰는 새로운 일들로 내가 포화상태다. 다정한 글친구들과의 깊은 교류와 동네 이웃과 지리적으로도 가깝게 마음을 나누는 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거의 나를 만들었던 청춘시절 그들과의 연결에 마무리를 못한 듯 그 어딘가를 헤맨다. 졸업하고도 선생님과 친구들이 그리워 다시 운동장을 서성이는 아이처럼, 언젠가 다시 입어야지 하고 놔두었던 짧은 치마를 매번 입지도 않으면서 버리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전관계의 졸업을 하기 위해 나만의 졸업식을 조용히 치르는 것은 어떻겠냐는 말을 친한 선생님으로부터 들었다. 관계를 끊어버리는 졸업식이 아니다. 졸업을 해도 친구와의 1대 1 관계는 물론 여전히 이어진다. 하지만 동기_같은 반이라는 흩어져 버리기 쉬운, 어쩌면 남들은 큰 의미 없이 생각되는 관계, 그 작은 공동체에 큰 애착을 가지는 나는 그런식의 작은 공동체가 바뀔 때마다 졸업식이 필요해 보인다.

혼자만의 작은 졸업식, 조촐히 나만의 축사를 중얼거리는 조용한 리추얼을 해본다.


“축하해.

너의 글이 너를 위로해 줄 거야.

그리고 또 다른 이에게도 다가가 힘이 되어줄 글을 써나가는 일

용기를 갖고 오래 천천히 하렴~

과거에 경험했던 너의 시간은 졸업해도 언제나 네 추억 속에 그대로 있을 거야

졸업은 마무리이자 시작이듯

지금의 너는 너의 과거이자 미래야.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축하하면 되는 거겠지?

축하해!

네가 마무리하고 새로 시작할 무엇이든

내가 진심으로 축하해!"

25년 전 훈련원 수료식 때 훈련생 대표로 소감 낭독 중. 그때의 나는 무엇을 축하했을까?

*매거진의 이전 글, 청산별곡 작가님

*6명의 고정 작가와 객원 작가의 참여로 보석 같고 보배로운 글을 써 내려갈 '보글보글'은 함께 쓰는 매거진입니다.

다양한 글을 각각의 색으로 매일 한 편씩 발행됩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작가님들은 매주 일요일 주제가 나간 이후, 댓글로 [제안] 해 주시면 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운함과 불안함이 교차한 나의 첫 졸업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