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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Aug 07. 2023

박하지 효자 설화

한 겨울 홍시가 먹고 싶다는 어머니를 위해 눈 덮인 산을 하염없이 헤매던 아들. 효심에 감동한 하늘의 뜻으로 우연히 들어간 산골 마을 집에서 홍시를 얻었다는 이야기.

또 한 겨울. 잉어가 먹고 싶다는 어머니를 위해 강물을 찾았으나 꽁꽁 언 강물 앞에서 대책이 없어 울고 있는 아들. 이 모습에 감동한 잉어가 스스로 튀어 올랐다는 이야기.

병약해진 아버지를 위해 지극정성 백일기도를 드린 딸. 그 마음이 하늘에 닿아 한 노인이 일러준 샘에 가서 병을 낫게 하는 약수를 얻었다는 이야기.


구전되는 이야기 속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효자는 현존인물이었습니다.

얼마 전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한 후로 입맛을 잃어 나날이 수척해 가는 어머니를 보는 것이 마음이 아팠던 아들은 짭짤한 것만 있으면 두어 술 뜰 수 있다는 어머니의 말씀에 짭짤한 것, 입맛 도는 것, 어머님이 좋아하는 음식을 찾아다가 어머니 밥상에 올렸습니다.

말린 우럭포나 보리굴비를 찜기에 쪄서 먹기 좋게 손으로 찢어 놓은 것.

겨울에 담가놓았던 무짠지를 채 썰어 물에 우려낸 것.

채 썬 우뭇가사리에 채 썬 오이를 넣고 새콤달콤한 육수를 부은 우무냉국.

가끔 지나가며 하는 "OO이 먹고 싶구나~"라는 어머니의 말씀도 아들은 놓치지 않았습니다.

바짝 구운 불고기.

짭짤 매콤한 게장.

입이 심심할 때 드실 누룽지과자.


그럴 때마다 아들은 하늘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효도는 셀프'라고 주장하며 주말마다 혼자 어머니를 찾아갔지만 그 손에 바리바리 들고 갈 음식 아내에게 해달라는 아들이었습니다. 그의 눈빛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던 아내는 어머님이 드시고 싶다던 음식과 원기가 회복될만한 전복갈비탕, 낙지삼계탕등의 음식까지 더해 한 보따리 챙겨놓았습니다. 어머니는 그때마다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어 '잘 먹었다, 덕분에 입맛이 돌았다, 박물관에 갈 며느리다'라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셨습니다. 그 말에 아내 역시 마음이 놓이곤 했습니다.


러던 어느 날, 어머니를 뵙고 돌아온 남편이 아내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어머니가 박하지 게장이 드시고 싶다네. 그거 드시면 밥 한 술 뜰 수 있을 것 같다고..."

서해안이 고향인 어머니는 입맛이 떨어지자 당신 어렸을 때 드셨던 음식을 떠올던 것입니다. 흔히 돌게라고도 불리는 중간 사이즈의 게인 박하지. 그걸로 만든 게장을 찾는 어머니를 위해 아들은 아내에게 또 부탁을 했습니다. 맨입으로 주문하기가 송구스러워 커피쿠폰 보내는 정성도 잊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알고 있는 박하지는 아들이 요구한 그것과 달랐습니다. 아내는 바닷가에서 꼼지락거리며 기어 다니는 아주 작은 게를 떠올렸습니다. 어렸을 때 몇 번 친정어머니가 박하지 게장이라며 해준 것은 그 작은 게로 담근 것이었죠. 구하기 쉽지 않은 재료였지만 아내는 깨끗이 손질된 냉동제품사다가 짭짤하게 게장을 담갔습니다.


"이 박하지 아니야. 박하지는 이것보다 더 큰 게라고!"

아들은 오답을 제출한 아내를 구박했습니다. 아내는 다시 폭풍 검색을 해 남편이 말한 박하지로 담근 게장을 얼른 주문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그렇게 순하고 고분고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박하지는 10월이 제철이래. 그렇게 드리고 싶으면 당신이 직접 바닷가 가서 해루질로 잡아오든가. 그리고 어머님 건강 그렇게 챙기는 냥반이 어째서 그렇게 짠 것만 갖다 드린대? 나이 많고 환자일수록 저염식으로 드셔야 하는 거 몰라? 그러다가 혈압 때문에 건강 안 좋아지시겠다! 그놈의 박하지 박하지!!"


서로를 할퀴고 냉랭해진 부부. 하지만 어머님을 찾아뵙는 아들의 손에는 박하지 게장, 작은 게로 담근 게장, 우럭포, 황태포무침, 총각무 지짐등이 양손 가득 들려있었습니다. 옛날 옛 효자 효녀의 마음은 하늘에 닿았지만 오늘날 효자의 마음은 아내에게까지만 닿고 말았습니다...



아내가 박하지인줄 알았던 작은 게의 이름은 똘쨍이었습니다. 반찬을 받은 시어머니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며느리에게 전화를 걸어 한참을 이야기했습니다.

"어떻게 그 게로 게장을 담글 생각을 했어? 그 게 이름은 똘쨍이야 똘쨍이. 그걸 어디서 샀? 그거 하나랑 해서 밥 반그릇이나 먹었다. 간장물에 밥 비벼 먹었어. 내가 게 이름 잘 안다. 네가 산 건 똘쨍이, 그것보다 더 까맣고 갸름한 건 능쟁이, 능쟁이보다 쪼끔 큰데 발이 뻘건 건 황발이, 그것보다 쪼금 더 큰 건 박하지, 꽃게보다 쪼금 작은 건 사시랭이지. 능쟁이는 뻘속에 사는데 오염돼서 많이 안 먹는다. 우리 어렸을 때 그거 잡으려고 뛰어가면 구멍으로 쪼르르 들어가고 그랬지. 암튼, 잘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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