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라? 우리 집에 이렇게 생긴 숟가락이 있었나?'
식기 세척기에서 수저를 꺼내 정리하다가 낯선 숟가락 하나를 발견했다. 원래 집에 있던 숟가락 중 하나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훨씬 얇고 가볍고, 낡았다.
나무손잡이가 있는데 식기세척기에 넣어서 이렇게 변한 걸까?
나머지는 아무렇지 않은데 얘만?
지난 추석 양가에서 반찬을 챙겨 올 때 딸려 들어왔나?
양가에도 이렇게 생긴 숟가락은 없는데?
배달음식 시킬 때 온 건가?
어느 업체가 이런 쇠숟가락을 그냥 주지?
작은 아들에게 보여주며 숟가락의 출처에 대해 물었다.
"난 모르지~ 근데... 너무 찝찝한데? 엄마, 그거 쓰려고? 쓰지 말자. 어디서 온 건지도 모르는데..."
작은 아들은 태생도 모르는 숟가락을 식구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남편에게 보여주며 물었다.
"숟가락이 갑자기 어디서 나타나? 또 동수짓이구만. 한동안 잠잠하더니..."
남편은 이십 년 가까이 우리와 동거 중인 것으로 예상되는 가공의 인물 '동수'의 짓으로 결론 내렸다.
출처를 모르는 의문의 숟가락은 내내 주방 한쪽에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볼 때마다 출처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이제 큰 아들에게만 물어보면 되는데, 도통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이른 아침 등교를 하고, 학교 수업을 마치면 체대 입시 학원 아르바이트를 한 뒤 PC방이나 술집에 들러 귀가하는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해 내는 23살의 하숙생. 어쩌다 아르바이트를 마치자마자 귀가하는 경우엔 "집에 고기 있나요?"라며 반드시 사전 고지를 한다. 숟가락이 나타난 지 수일만에 고기를 찾으며 일찍 귀가한 큰아들을 만났다. 한참 고기를 먹고 있는 아들에게 숟가락 사연을 소개했다.
"그거? 내가 갖고 온 건데? 술집 야외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다가 의자가 걸리면서 넘어졌거든? 정신없어서 주머니에 숟가락을 넣었었나 봐. 집에 와보니 바지 주머니에 있길래 식기세척기에 넣었지. 같이 술 마시던 형들한테 얘기했더니 기왕 그렇게 된 거 그 일대 술집 숟가락을 모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더라고. 하하하하하"
태연한 아들의 얘기에 김이 빠졌다. 우리 집을 찾은 숟가락에게는 뭔가 그럴듯하거나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신기한 사연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낯선 침입자인 줄 알고 경계했는데 취객에게 납치당해 집 떠나온 불쌍한 숟가락이었다.
"다시 갖다 줘~"
"에이... 어떻게 그래. 어느 술집인지도 몰라."
수를 헤아릴 수도 없는 사람들의 입을 드나들며 바쁘게 살던 숟가락이 우리 집에 와서 천덕꾸러기가 됐다. 어쩌면 고생스러웠던 팔자, 이제 좀 편해졌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누구의 입에 들어갔던 건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쓰냐는 작은 아들 때문에 나 역시 쓰기가 찝찝해졌다. 버리지도 못하겠어서 싱크대 서랍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는데, 그래도 자꾸 생각이 난다.
'조금만 기다려. 너희 오빠 오늘 또 술 먹고 들어온대. 곧, 친구가 생길지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