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기분은 처음이었습니다. 낯선 공간에 낯선 사람들이 모여 오로지 '글'에 대해 떠들고 웃는 시간. 비현실적이며 몽환적이기까지 했습니다. 글로 오랫동안 만난 사이라 서로를 한눈에 알아보지만 선뜻 먼저 다가가서 말 붙이지는 못하는... 철저히 브런치에서만, 글을 통해야만 E인 사람들의 모임 같기도 했습니다. 그 어색한 침묵이 나쁘지 않았습니다. 침묵마저도 귀하게 즐기는 분위기였지요. '십이월愛'라는 이름의 라라크루 송년 모임의 이야기입니다. 지난 주말 저녁, 16명의 라라크루 멤버들이 모였습니다. 국경, 인종까지는 아니지만 나이, 성별, 지역, 기수를 초월하는 장이었습니다.
지난해 저는 브런치에서 '보글보글'이라는 글모임을 하면서 함께 쓰는 즐거움을 알게 됐습니다. 물리적인 거리 때문에 만나지는 못했지만 브런치 찐친이 생겼습니다. 한창 불타올랐던 글의욕이 보글보글의 종료와 함께 시들어갔습니다. 브런치에서 오래오래 쓰겠다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면서 그냥 쓰고 있던 저는, 즐거운 글쓰기, 함께 쓰는 재미를 다시 되찾고자 '라라크루'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자유로운 글놀이를 지향하는 것, 서로를 응원하는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깜짝 송년 파티를 연다고 했을 때, 주저할 이유가 없었던 이유입니다.
수호 작가님과 안희정 작가님의 꼼꼼한 행사 준비, 편안한 진행으로 침묵은 기분 좋은 소란스러움에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필명을 OOO이라고 정한 이유, 필명을 안 쓰는 이유, 글을 계속 쓰는 이유, 글을 못쓰는 이유, 라라크루에 들어온 이유, 그럼에도 글을 못쓰는 이유, 글을 못쓰는데도 라라크루를 못 나가는 이유... 모든 사연의 중심에 '글'과 '라라크루'가 있는 모임. 어디에서도 편하게 나눌 수 없는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얼마든지 나눌 수 있었기에 모두 상기된 얼굴이었나 봅니다.
글쓰기는 내내 즐거운 것으로 남기고 싶다는 작가님.
글 쓰는 것이 힘겨운 작업이라는 작가님.
교훈을 주고 계몽을 하는 글은 쓰고 싶지 않다는 작가님.
이런 글쓰기 모음이 처음이라 너무 행복하다는 작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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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크루가 모두 같은 라라크루가 아니요, 브런쳐가 모두 같은 브런쳐가 아니었습니다. '글쓰기'라는 같은 행위를 하고 있고 글쓰기가 좋아서 모인 사람들이지만 글을 바라보는 시선, 글을 대하는 태도와 마음가짐이 16인 16색이었다. 그 다름을 인정하고 응원할 수 있는 이유는 글을 씀으로써 얻게 되는 일상의 발견과 그로 인한 변화, 성장에 공감하기 때문이리라...
팍팍한 삶에서 잠시 해방되는 기쁨.
고단한 삶에서 의미를 발견해 또 하루를 살아내는 감사함.
행복한 삶이 더 행복해지는 만족감.
경험하고 느낀 걸 쓰고 공유했는데 또 새로운 걸 경험하고 느끼게 되는 신기함.
그 모든 감정의 시작에 '글'이 있었고 제 모든 글의 시작에 브런치가 있었습니다. 글 쓰는 길에 만난 크루들 덕분에 즐거운 글쓰기, 가벼운 글쓰기가 계속될 예정입니다.
브런치에 오래 살고 볼 일입니다.
참!!!
국민학교 때 백일장 이후 처음입니다. 글로 상을 받은 것!
부상으로 365가지의 질문이 적힌 일력을 받았습니다. 쓸까 말까, 뭘 쓸까 고민할 시간에 계속 질문하며 쓰라는 깊은 뜻이 있는 선물입니다. (맞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