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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Jan 30. 2024

면보다 중한 것

< 라라크루 화요 갑분글감 >

방학이 되면 한 끼는 무조건 면이었다. 아이들의 끼니를 챙기는 사람에게 학교 급식 한 끼가 주는 해방감은 실로 큰 것이어서 방학 때 떠맡게 되는 점심 한 끼에 대한 부담감은 컸다. 3끼 중 한 끼가 늘었을 뿐이지만 부담감은 3분의 1만큼만 늘어나는 게 아니었다. 그래서 한 끼는 간단하게 끓일 수 있는 면 요리로 준비하곤 했다.


라면의 종류도 다양하지만, 우동, 쌀국수, 냉면, 메밀면, 잔치국수 등 면의 세계 자체가 다채롭다. 짜장라면에 구운 소고기, 우동에 돈가스, 쌀국수에 짜조, 냉면에 불고기, 메밀면에 찐만두, 잔치국수에 육전 등 곁들임 음식과 함께라면 면을 차려줬다는 쓸데없는 죄책감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끼니를 챙겨줘야 할 아이들이 없는 지금도 각종 라면, 우동, 냉면이 늘 준비되어 있는 걸 보면 나는 그냥 면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나 보다. 요즘도 이삼일에 한 끼는 면이다.


며칠 전, 짜장라면을 끓였다. 소고기도 구웠다. 짜파게티 위에 얹을 달걀 프라이도 부쳤다. 파김치가 있으면 좋았겠지만, 시원하게 잘 익은 총각김치가 있어 자르지 않고 통째로 준비했다. 짜장라면을 아들과 내 그릇에 사이좋게 나누어 담고 소고기를 가장자리에 얹었다. 노른자가 살짝 익은 달걀프라이로 꼭대기를 살포시 덮어주었다. 노른자를 톡 터트려 잘 버무린 라면으로 소고기를 감싸 들어 올려 입안 가득 넣었다. 짭조름하면서 고소한 맛이 쫀득하게 퍼졌다. 총각김치 하나를 집어 들고 머리부터 한입 베어 물었다. 짜장라면을 먹을 때 총각김치는 우아하게 먹으면 맛이 살지 않는다. 우악스럽게 먹어야 한다. 여기까지가 짜장라면 먹기 한 세트다. 마지막 한 입에도 소고기가 피처링할 수 있게 소고기의 수와 짜장라면의 양을 잘 맞추어 먹는 치밀함을 발휘한다. 마지막 젓가락질과 마지막 총각김치 한입을 맞추는 조화로운 식사를 마치고 나면 배만 부른 게 아니라 심리적인 포만감까지 더해져 행복이 별거냐는 말이 절로 나온다.


다 먹은 그릇을 들고 싱크대로 돌아오면, 여태 내가 먹은 것은 무엇이며 지금 내가 느끼는 행복은 다 뭐냐는 감정이 "으이구... 내가 못 산다 증말. 난 왜 맨날 이 모양이냐?"라는 말로 뿜어져 나온다. 자기 순서를 기다리다 바로 앞에서 입구컷 당한 조미유 두 봉이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젠 화도 안 내고 슬퍼하지도 않는 녀석들이다. 처음엔 "어떻게 날 빼먹을 수가 있니?" 하며 화내던 조미유들이 반복되는 누락에 "어떻게 매번 넌 우리를.. 흑흑...." 하며 슬퍼하다가 이제는 무표정, 무반응이다. '내 그럴 줄 알았다, 어떻게 하나 지켜봤는데 역시!'라는 듯이 말이다.


습관적으로 빼먹는 녀석들은 짜장라면의 조미유만이 아니다. 우동에 들어있는 가쓰오부시, 참깨라면에 들어있는 유성스프등 마지막에 첨가하면 맛이 더 좋아진다는 것들을 꼭 잊어버린다. 싱크대 서랍 한구석에는 그들만 모아놓은 통이 하나 있을 정도다. 때를 놓친 추가 스프들은 한데 모였다가 주기적으로 버려진다. 면 제조업체에서 심혈을 기울여 연구한 끝에, 소비자에게 번거로운 일인 줄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을 높이는 데 꼭 필요하니까 끼워 넣었을 텐데... 난 그 노력과 수고를 간단하게 무시하는 오만한 소비자인 셈이다.


사실, 면 요리에서 메인은 면과 스프다. 조미유가 아니더라도 짜장라면 맛은 충분히 난다. 우동에 가쓰오부시를 뿌리지 않아도 오그라드는 시각적 재미와 미식가만 아는 가쓰오부시의 풍미가 느껴지지 않을 뿐, 우동이 아닌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지막에 톡 하고 떨어뜨리는 조미유 한 방울로 감칠맛은 더해진다.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들듯이 그 한 방울의 힘이 1% 맛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난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1%를 간과했을까. 대세에 지장 없다며 우습게 무시해 버린 작은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까짓 거 대~~ 충'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대충 살다가는 언젠가 큰코다치는 멍충이가 되지 않을까.


마지막에 넣어야 하는 조미유의 다른 이름은 '정성'이다. 끝까지 마음을 거두지 않고 성실히 지켜보는 자세 말이다. 정성을 다한 삶은 배신하지 않는다. 당장 보기에는 인생의 굵직한 가지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같지만 누락된 1%의 잔가지가 언젠가는 중심 가지의 방향과 굵기에도 영향을 미치리라 생각한다. 면이 없다면 조미유도 한낱 기름 한 방울에 지나지 않겠지만 때로는 면보다 중한 것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라라크루

#라이트라이팅

#화요갑분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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