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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Feb 25. 2024

선을 지켜야 하는 주인의식

오랜 시간 교자봉 업무를 맡았던 담당자가 타 교육지원청으로 떠난 후 두 달이 지났다. 잔뜩 겁먹었고 긴장했던 나를 비롯한 봉사자들은 두 달 만에 너덜너덜해졌다. 담당자가 맡았던 일이 우리에게 쏟아져 들어와서가 아니었다. 생각보다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아서도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제발 나서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듯한 무언의 메시지 때문이었다. 


교육자원봉사업무를 맡고 있는 교육지원청 담당자들과 봉사자들의 관계가 이전과 달라졌음을 느낀 것은 1월 초, 갑작스럽게 결정된 교육자원봉사센터 냉난방기 교체 공사가 시작되면서였다. 공사 시작 하루 전날 공사 관계자라는 분이 와서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교체 공사를 하게 되면 집기에 공사 분진이 내려앉을 테니 철물점에서 비닐 한 두루마리를 사다가 보양 작업을 해놓아야 한다는 당부였다. 업무 담당자는 교육지원청의 남은 예산이 없다 하지, 공사 관계자는 한시가 급하다 하지, 고민할 틈이 없어 사비를 털어 롤 비닐을 사다 힘겹게 작업을 해놓았다. 


사실을 전해 들은 담당자들이 교육청에서 차로 5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센터까지 달려왔다. 아주 당혹스러우면서도 마땅찮다는 표정이었다. 왜 사비를 썼는지, 왜 직접 보양 작업을 했는지, 왜 그냥 두지 않았는지를 따져 물었다. 말의 내용은 걱정이고 미안함이었다. 공공기관의 일에 개인이 돈과 노동력을 썼다는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의 비언어적 메시지는 달랐다. 혼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함께 보양작업을 한 우리는, 잔뜩 주눅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고 서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때부터 사소한 갈등이 쌓이기 시작했다.

센터를 사용하지 못하면 1학기 봉사 준비에 차질이 생기는데, 담당자는 그게 그렇게 시급한 문제냐고 반문했다. 냉난방기를 교체하려면 빔프로젝터를 불가피하게 떼어야 한다는 공사담당자에게 그러시라 한 나의 결정은 성급한 월권이 되었다. 반드시 교육지원청에 물었어야 할 사안이었다며 담당자는 나 때문에 당혹스럽다고 했다. 봉사자들이 오며 가며 센터에 들러 공사 진행 상황을 확인하고 내게 알려주곤 했지만 애물단지처럼 버려진 듯한 우리 공간이 내내 신경 쓰였다. 


드디어 공사가 완료되어 봉사단 대표들과 함께 기쁜 마음으로 대청소 계획을 세웠다. 이에 담당자는 친절하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그게 왜 봉사자들 공간이에요. 교육지원청 공간이죠. 하지 마세요. 직원들이 알아서 할게요."


머리를 한대 얻어맞았다는 건 이런 거였다. 여태 우리가 주인이라고 생각했던 공간이, 주인의식을 갖고 사용해야 한다고 여겼던 곳이 우리 것이 아니라 관의 공간이라는 것, 물리적으로 틀린 말이 아니었다. 나와 봉사자들에게는 그 공간에 대한 어떤 법적 권리도 없다. 교육자원봉사를 원활히 할 수 있도록 관에서 잠시 내어준 공간이었던 것이다. 교육자원봉사센터라는 간판을 내걸고는 있지만 교육자원봉사자들의 것은 아니다. 정서적으로 점유할 수는 있지만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된다. 그저 조용히 주어진 교육자원봉사만 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과연 주인의식 없이 교육자원봉사를 오래 할 수 있을까. 시민이 주인이라는 마음의 능동적인 발로가 자원봉사인데 자꾸 차단당하는 기분이 든다면 즐거운 마음으로 활동할 수 있을까. 업무 담당자에게 당신의 업무는 이것이라는 것을 자꾸 어렵사리 납득시켜야 하는 게 교육자원봉사라면, 내가 하는 일이 정당한 일이기는 한 걸까. 내가 해도 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의 경계는 어디일까. 그 선은 누가 어떻게 정해주는 걸까. 심지어 청소도 하지 말라고 하니, 교육자원봉사센터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활용해 볼까 하던 우리의 포부는 헛된 것이 아닌가.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으로 자기 검열을 하다가 자괴감에 빠지면서 보낸 것이 두 달이다. 교육자원봉사센터와 관련된 갈등의 중심에 내가 있는 것 같아 자존감이 계속 떨어졌다. 보다 못한 남편은 봉사가 그러면서까지 할 일이냐고 했다. 


선을 지키는 주인의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은 어디에 있을까.

여전히 답을 못 찾은 나는, 우리는,

교자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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