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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Feb 28. 2024

CCM이지만 괜찮아

라라크루 갑분글감 - 음악

난 무교(無敎)다.

불교였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중학교 때 포교원을 다녔던 기억, 이후로도 절에 가면 마음이 평온해졌던 기억은 있지만 지금은 아니다. 덕분에 주변에는 길 잃은 어린양 같은 나를 전도하려는 분들이 많았다. 내 손을 잡고 울면서 기도해 주었던 OO 언니, 일요일마다 교회에 가자고 설득하던 앞집 어른들, 나에게 딱 하나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는데 기독교인이 아닌 점이라고 했던 이, 새 가족 소개 주간인데 딱 한 번만 와달라고 했던 돌아가신 이모님, 모두 기독교인이었다. 천주교로 개종한 친정어머니나 불교에 헌신적인 고모는 전도에 관심이 없었다. '내 마음이 편해지는 수단'이라는 종교의 기능적인 측면만 믿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세상에는,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고 인간의 의식이나 언어 수준으로는 형언할 수 없는 존재나 세계가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 그런 존재가 종교나 절대자는 아니다.

힘들고 지쳤을 때 위로받고자 종교를 이용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내가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나 자신도 풀지 못하는 나의 숙제를 실체도 없는 무엇에 의지한다면 그나마 낮은 자존감을 높일 명분이 없을 것 같아서다.

내가 지른 과오와 잘못을 용서받기 위해 종교를 갖고 싶은 마음도 없다. 큰 죄를 지었다면 법이나 사회의 심판을 받던가 나 자신, 혹은 나로 인해 상처받은 당사자에게 직접 용서를 구하고 싶지 상관도 없는 곳에서 회계하고 '끝'을 외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위해 기도해 주겠다는 사람, 내 손을 잡고 울어주는 사람에게는 감사하다. 좋은 것을 알려주고 싶고 나누고픈 마음이 나쁜 건 아니니까 말이다. 시댁 가족 모임에서 기도할 때는 나도 두 눈을 꼭 감고 두 손을 모아 기도한다. 기도 자체는 숭고하고 의미 있는 행위니까.


18년째 다니고 있는 헤어숍에서 내내 틀어주는 음악이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이지만 괜찮다. 귀에 거슬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마음이 평온해지기 때문이다. 가끔은 영화 <위대한 쇼맨>의 "This Is Me" 느낌의 노래가 들리기도 하는데, 그럴 땐 괜스레 마음이 웅장해진다.


처음엔 CCM인지도 몰랐다. 팝 그룹 '웨스트 라이프'의 곡인가 했다. 노래 중간중간 'Jejus'가 들리지 않았다면 헤어숍 원장님이 웨스트 라이프 한국 팬클럽 회장일지 모른다고 추측했을 것이다. CCM인 걸 알았어도 불편하거나 거부감이 일지 않았다. 어차피 영어 가사라 들리지도 않지만, 뭐 나쁜 내용이겠는가. 무한한 사랑, 감사에 대한 노래겠지.


여전히 난 무교다.

하지만 CCM은 좋다.

날 위해 기도해 주는 이들에게도 감사하다.

때로는 기도도 한다.


검색해 보니 이들의 음악이었다.



#라라크루

#라이트라이팅

#갑분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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