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이어 모 중학교 1학년 학생들 전체를 대상으로 주제선택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올해는 디베이트에서 확장해 글쓰기 지도까지 부탁받았고 수업 시간도 8차시에서 14차시로 늘어났습니다. 급하게 쓴 입안문으로 형식에 맞춰 토론하기에 급급했던 것이 내내 아쉬웠는데, 올해는 글쓰기와 디베이트의 필요성,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글쓰기의 재미와 의미를 설명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 신나게 첫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첫 시간, 학생들에게 글쓰기 경험을 물으니 꽤 다양한 답이 나왔습니다.
"전 소설을 써요. 휴대폰 메모장에 틈틈이 쓰고 있어요."
"수행평가할 때 글쓰기를 많이 해요."
"일기를 매일 쓰고 있어요."
"로블록스 채팅창이요. 채팅창에 쓰는 것도 글 쓰는 거라고 할 수 있죠?"
"전 초등학교 때 반성문을 여러 번 썼어요."
"친구에게 보내는 문자, 부모님께 쓰는 편지, SNS에 올리는 이야기, 댓글들도 넓은 의미에서 보면 글쓰기에 해당하며 우리는 말을 하는 만큼이나 글로도 자신을 많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나의 생각과 마음이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써야 하고, 타인을 비난하거나 많은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글보다는 함께 고민하고 더 나은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힘이 되는 글을 써야 합니다."
학생들에게 해 준 이 말은 제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었습니다. 글이 가진 위험성과 영향력을 알면서도 일상이 된 브런치 글쓰기에 안일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반성문을 썼다는 학생의 이야기가 흥미로운 사례가 될 듯해 얼른 낚아챘습니다. 어떤 식으로 썼는지 기억나느냐고 물으니 자세하게 답해주더군요.
"일단, 죄송합니다로 시작을 해요. 내가 어떠어떠한 일을 했는데 그게 이런 면에서 잘못이었던 것 같습니다, 억울한 부분이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래도 잘못했습니다, 앞으로 그러지 않기 위해 이런저런 방법으로 노력하겠습니다, 이렇게 쓰지요."
생각보다 짜임새 있는 반성문을 썼지요? 어쩌면 반성문이 학생의 글쓰기 실력을 높여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학생들에게 기승전결, 서론 본론 결론이 있는 글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학교에 다니면서 자주 쓰게 될 글이 바로 그렇게 형식을 갖춘 글이 될 것이며, 7주간의 수업을 통해 조금씩 연습해 보자고 말해주었습니다.
글쓰기에 대한 다양한 정의를 보여주며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무엇과 무엇을 연결한다고 생각하는지, 물음표와 느낌표의 이어달리기라는 표현은 무슨 뜻일지 학생들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늘 정답이 있는 질문을 받곤 했던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그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자신만의 정의를 해보겠냐는 질문에 몇몇 아이들이 손을 들었습니다. 그중 한 학생의 답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글쓰기는 라면이라고 생각합니다. 라면을 처음 끓이려고 했을 때 면을 먼저 넣어야 하는지 스프는 언제 넣는지 얼마동안 끓여야 하는지 잘 몰라서 당황했는데 글도 막상 쓰려고 하면 당황스럽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라면을 몇 번 끓여보면 익숙해지고 점점 더 맛있게 끓일 수 있게 되잖아요? 글쓰기도 그런 것 같아요."
라면을 끓이는 일이 두려우십니까? 라면을 끓이면 끓일수록 맛이 없어지나요? 아니지요? 더 맛있어지죠? 글쓰기도 두려워하지 맙시다. 쓰면 쓸수록 잘 쓰게 될 겁니다.
이렇게 말해주는 것 같은 학생의 말에 제가 괜히 힘이 나는 건 왜였을까요? 그 학생은 어떻게 그런 찰떡같은 비유를 해냈을까요? 학생들과 함께 하는 글쓰기 토론수업을 통해 제가 되려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것이라는 기대가 큰 이유입니다.